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17>

야신도 실패하다

by 김일주

2016시즌 한화는 주축 투수들의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며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쳤지만 66승 3무 75패 (승률 0.468)로 최종 순위 7위를 기록하며 또 다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5위와 3게임차에 불과할 만큼 한화는 아쉽게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독수리 군단의 2017시즌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시즌 전 알렉시 오간도,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를 영입하며 특급 외인 원투펀치를 구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밝은 전망을 기대했지만 한화는 개막 첫 한 달간 10승 16패(승률 0.385)로 리그 9위에 그쳤다. 5월에도 패배하는 날이 더 많았고 5월 3주차에는 넥센과 삼성을 상대로 1승 5패에 그쳤다. 특히 당시 리그 최하위를 달리는 삼성과의 주말 3연전을 전패한 한화는 18승 25패(승률 0.419)로 9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2017년 5월 23일 한화는 김성근 감독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야신의 몰락과 시대의 변화

2014년 10월 한화의 제10대 감독으로 화려하게 현장에 복귀한 ‘야신’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 체제의 한화는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대표적 인기팀으로 자리했다. 한 경기도 포기하지 않는 감독의 게임 운영, 선수단의 투혼 등 팬들에게 많은 인상적인 장면들을 남겼지만 투수 혹사, 부상 등 부정적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화는 감독이 팀의 전권을 쥐며 감독의 강력한 영향력 안에서 움직였다. 선수기용 방식, 게임 운영, 선수단 훈련 등 모든 것이 김성근 감독 주도하에 움직였지만 성적은 기대이하였다. 10개 구단 중 팀 연봉 전체 1위에 오르는 등 구단도 FA선수들을 많이 데려왔지만 성과가 나질 않았다. 또한 주축선수 대부분이 베테랑으로 이루어진 한화 선수단에게 여전히 리빌딩이라는 과제가 남겨져 있었다.

김성근 감독 부임 당시 성적과 리빌딩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김 감독은 당장의 성적 욕심에 베테랑들 위주로 게임 운영을 했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은 출전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고 베테랑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몸상태 속에서도 매경기 출전을 감행하다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주축투수 대부분이 김 감독 재임기간 동안 상대팀이 아닌 부상과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팀의 1승을 위해 모든 힘을 쥐어짜낸 투수들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지쳤고 팀을 이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팀이 목표로 하던 가을야구 진출은 현실이 될 수 없었고 주요 선수들의 부상과 더딘 세대교체 등 한화의 암흑기는 계속 되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2017년 5월 23일 부진한 성적과 함께 프런트와의 갈등 문제로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떠나게 된 것이다.

한화 팬들이 기대했던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팬들에게 상당한 여운을 남겼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1승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은 재임 기간 한화선수단 분위기를 크게 바꿨다. 오랫동안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선수들은 김 감독을 만나고 나서 이기는 맛을 알게 되었고 승리를 향한 열정과 투혼을 불태우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무기력하게 지는 일이 줄어들었고 짜릿한 역전승, 9회까지 가슴 졸이는 명승부 등을 연출해내며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했다. 2009년 이후 거의 매 시즌 최하위에 위치하며 무기력한 선수들의 모습에 많은 실망감을 가졌을 팬들은 김성근 감독이 지휘한 시절만큼은 많은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상위권 팀과의 대결에서도 대등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선수들의 투지는 그 당시 한화팬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1승을 향한 열정 속에는 투수혹사논란과 주전선수들의 부상이라는 대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팬들은 팀의 승리만큼이나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건강한 활약을 원했지만 계속되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 팬들은 하나둘 김성근 감독의 경기 운영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야신의 위상은 떨어졌다. 급기야 선수단 훈련 문제 등을 놓고 프런트와의 갈등을 일으켰고 김 감독은 경질됐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주관이 뚜렷한 ‘야신’ 김성근 감독은 또 한 번 소속팀에서 경질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간은 지나고 시대는 변하고 기술도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세상 속에, 야구의 흐름도 변하고 있었다.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받던 ‘야신’은 자신만의 야구를 추구했지만 변화하는 야구의 흐름 안에서 끝내 실패했다. 재임기간 가을야구 진출 실패. 선수보호와 프런트와의 소통에서도 문제를 드러내며 현대야구가 추구하는 흐름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 야신. 더 이상 야신의 야구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3년의 시간. 한화팬들은 야신이 보여준 열정에는 박수를 보냈지만 선수부상관리와 프런트와의 협력 부분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야신의 몰락 속에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도 꿈에만 그치게 됐다. 그 꿈은 과연 언제가 현실이 될지 한화 팬들은 또 한 번의 기다림 속에 2017년을 보내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 한화 재임시 통산 성적

152승 3무 176패(승률 0.463)


이글스 고무팔 이상군과 ‘건강한 야구’

한화는 2017년 5월 23일 이후 야신이 떠난 자리 그리고 그가 남긴 흔적들을 지우는데 시간을 보냈다. 정식 감독 선임 대신 팀 내 1군 투수코치를 맡고 있던 이상군 투수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1986년 빙그레 이글스 창단 멤버이자 충청북도 괴산 출신으로서 학창시절(청주우암초-청주중-북일고)을 모두 충청도에서 보낸 진짜 충청도 사나이였다.

이글스 창단 초기 에이스 이상군은 1986년 3경기 연속 완봉승, 48.1이닝 연속 무사사구, 19완투(1위), 243.1이닝, 1987년에는 24완투(1위), 246.2이닝(1위) 기록을 세우는 등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제구력과 이닝소화력을 자랑한 투수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2년간 총 68경기(57선발)에 등판해 490이닝을 던지며 43완투를 기록한 이상군의 선발등판 경기와 완투는 리그 1위, 이닝은 2위였다. 1988년에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규정이닝을 채우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글스 팬들에게는 ‘고무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이글스 창단 초기 맹활약했다. 이상군은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이글스에서만 활약하며 통산 100승을 기록한 대투수로 이글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다.

은퇴 이후 이글스에서 1군 투수코치, 2군 투수코치, 육성군 투수코치로 활동한 외에도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으로도 활동하며 사실상 야구인생을 이글스에만 바친 이글스맨이다. 이상군은 2017년 5월 23일 어려움에 빠진 팀을 구원하기 위해 감독대행이란 옷을 입고 남은 시즌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정식 감독 선임을 시즌 종료 후에 하기로 결정한 한화는 2017년 6월 13일 “갑작스러운 감독 부재 상황에서 팀의 중장기 비전 실현을 위해 이번 시즌 종료시까지 이상군 감독 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어려움에 빠진 팀을 수습하기 위해 그동안 한화가 추구했던 야구를 바꾸는데 전력을 다했다.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던 야구 스타일과는 대조되는 방향으로 남은 시즌 을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던 특타, 불펜중심 야구 등을 지양하며 멀리 내다보는 운영으로 팬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권혁과 송창식 등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혹사 논란에 시달린 필승조 투수들을 이기는 경기에만 투입할 것이라며 선수 보호에 앞장섰고 특타와 같은 강압적인 훈련방식도 가급적 안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동안 치열한 승부 외에도 과도한 훈련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을 한화 선수단은 이상군 감독체제 안에서 서서히 회복하며 조금씩 분위기 반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권혁 등 부상이 있는 선수들은 충분한 휴식을 부여하며 회복하도록 돕고 출전 기회가 적었던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며 팀의 미래를 밝게 하는데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글스 창단 초기 에이스 이상군은 약한 팀 전력 속에서 많은 이닝을 던지며 팀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세월이 흘러 감독대행이 되어 다시 어려운 팀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은 옛 추억에 젖어들지 않았을까?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과 외국인 투수 2명의 장기결장 등 많은 악재 속에 이상군 감독대행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당장의 성적 욕심보다 팀의 미래를 다지는데 초점을 맞춘 운영으로 팬들의 격려를 받았다. 7월 한 달 저조한 성적 (5승 15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8월 1일부터 시즌 최종전까지 5할 승률에 근접한 성적(23승 1무 24패)을 기록하며 해당 기간 5위의 성적을 내기도 했다. 시즌 막바지 중상위권 팀들을 잡는 고춧가루부대 역할을 톡톡히 하며 상대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소통과 웃음의 이상군식 야구

이상군 감독대행이 바꾼 것은 팀의 성적 반등뿐만 아닌 벤치의 분위기와 웃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 시절 선수들은 치열한 승부 속에서 매일 사투를 벌이며 이기는 맛을 많이 느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승리를 통해서 얻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선수들은 치열한 승부와 특타로 이어지는 강훈련의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야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훈련량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선수들을 관리하며 팀이 경기 내외적으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선수들 각자 알아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강제가 아닌 선수 스스로가 해야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팀의 반등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선수와 직접 소통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선수들과 웃음꽃을 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임 김성근 감독과 다른 유형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선수시절 강력한 구위보다는 정교한 제구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상군 감독대행은 지도자로서도 차근차근 팀이 갖춰야 될 요소들을 명확히 파악하는데 능했다. 마치 정교한 제구력과 같은 지도력으로 한화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정확히 채워주고 있었다. 당장의 성적 못지 않게 리빌딩도 시급했던 한화에게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그 과제를 풀기위해 최선의 모습을 다하며 팬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우수한 성적을 기대했던 한화팬 대부분은 기대만큼의 성적도 나오지 않고 주축선수들의 줄부상과 더딘 리빌딩 과정을 지켜보며 실망감이 커졌을 것이다. 결국 2017년도 최종성적 8위(이상군 감독대행 체제 101경기 43승 2무 56패)에 그치며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라는 불명예만 떠안은 한화. 하지만 단순히 겉에 보이는 성적에 실망했을 한화팬들은 그래도 팀의 에이스로 불리었던, 이글스의 자존심이자 고무팔 이상군 감독대행의 인내와 노력,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의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이글스 레전드가 주는 위로를 등에 업고 한화 팬들은 아쉬운 2017년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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