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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서원 Aug 06. 2024

미련 없이 접은 가업경영기

50년 전통의 가업을 접었습니다.

내 꿈은 전업주부였습니다. 엄마, 아빠를 닮은 아이들을 예쁘게 키우며 알콩달콩 재미게 살고 싶다는 평범한 꿈을 가졌었습니다. 내가 결혼이란 걸 할 때도 남편의 직업은 의심 없는 샐러리맨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아 2대째 운영을 하고 지켜왔습니다. 부모님 대에서 30년이었고 우리 대에서 20년을 꾸려왔으니 반백년의 시간을 지켜낸 셈입니다. 기꺼이 뛰어들었고 성실함으로 받쳐냈기에 지금은 한치 부끄럼 없는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내 삶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적지 않은 세월의 누적이 눈에 선하네요. 이왕 하는 거 백 년을 이어 가고자 했던 처음 먹은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해 아쉽지만 운명은 가게를 정리하는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주변인들의 염려 속에서 나름대로 깔끔한 끝맺음을 했고 그 끝은 마치 문지방처럼 의무를 다하고 났더니 드디어 놓여났구나 싶게 평안한 삶으로 흘러가주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인 듯 시간과 육체의 자유로운 통행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전생입니다. 전투력 폭발했던 나의 젊은 날을 말하기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지만 앞으로 남은 삶의 행보를 위해 한번은 털어보려 합니다. 가업이라는 것을 맡아서 운영해 보니 많고 많은 힘듦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계절이 주는 지옥이 있습니다. 바로 여름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무더위에 대한 기억이 힘듦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남편과 내가 힘을 합쳐 해낸 가업의 유형은 식당이었습니다. 세상의 눈과 잣대를 빌더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순두부전문점이었죠. 시청에서도 부산을 대표할 만 하다해서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북 한쪽을 내어주었고 해외에서도 책자를 들고 찾아오는 그런 유명세를 가진 자랑스러운 로컬 맛집이었습니다.


다시 또 그 시절을 살라면 못할 일입니다. 모르니까 했지 알고는 못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찌개가 쉴 새 없이 끓어오르던 그 여름날의 무더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숨이 턱에 차는 것 같습니다.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없는 주방구조에서 가스버너 열개를 끼고 살아냈다는 건 그나마 젊은 때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나에게는 유독 타협이 불가한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업종을 막라하고 지하에서 운영하는 그 어떤 곳도 손절합니다. 예를 들면 노래방, 주점, 맛집 등등 아무리 대단한 집이라도 선택권 밖입니다. 그 수많은 여름날의 힘듦이 만들어낸 나의 심리적 압박감 때문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찜질방도 손사래를 놓습니다.

 


주어진 여건에 불만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그렇게들 열악하게 살아내는 시절이었습니다. 다년간 살아보고 나온 결론은 건강상의 이유만으로도 다시 생각해 볼 업종이었음에도 아이들 키우고 집안 건사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뜨거운 컨테이너 같은 공간에서 남편과 함께 서로의 힘듦을 보며 스무 번의 여름을 보냈습니다.


가업을 물려받으며 종사자들까지 모두 승계를 받았습니다. 부모님 세대뻘인 오래된 인적자원들은 모두 자기들이 주인이었고 갑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 시절의 주방장들도 꽤나 한 고집들 하던 사람들이라 권한을 승계받은 젊은 주인의 말은 지나가는 나팔수 소리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카리스마에는 당할 수가 없기도 했고 그 시절에 앞선, 종사자에 대한 복지가 남달랐던 이유로 쉽게 그만두거나 거역하 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남은 남'이다라는 명확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옛말에 주인은 나그네 아홉몫을 한다고 하죠? 우리 부부는 수없는 몫으로 가업을 구해내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주방장이 퇴직하는 바람에 안주인인 내가 주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때부터 메인 주방장이 되고 가게를 정리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남에게 끌려가느니 주인이 직접 하는 게 정답입니다. 재능이 없으면 그 어떤 종류의 자영업도 펼쳐서는 안 된다는 게 또한 정답입니다. 내가 모르면 남을 부릴 수가 없고 제대로 알아야 현명하게 지시하게 되죠. 나의 가업운영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남편의 운영체제와 조리사 자격증이 다가 아닌 진심을 다해서 차려내야 한다는 주인정신의 기막힌 팀워크가 있었기에 밀리지 않고 끝에 가서 승리한 결과입니다. 그렇게 진하게 살아왔기에 기꺼이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기적같이 가게는 순조로이 매매가 되었고 남편과 나는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삶의 방향을 살짝 틀었습니다. 미련 없고 후련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디서든 되살릴 수가 있기에 영원한 정리는 아닙니다.




좌충우돌 나의 가업경영 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하던 일을 접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닙니다. 이걸 놓으면 뭘 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저에게도 분명 있었습니다. 나의 경험이 나만의 국한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때다 싶으면 알아차려야 합니다. 안되면 용기라도 내야 놓아집니다. 이것을 놓을 때 저것이 들여집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지만 자영자로 살며 가업을 지키며 살아온 결과가 갑상선 쪽의 다소 무거운 질병이었고 그 결과치를 늘 염두에 두고 결정한 일이 가업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건강보다 중요한 게 있을 수 있을까요? 현명한 판단을 내린 나의 삶이 또 한해의 여름을 지내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날 뜨거운 주방에서 홍시같이 발갛게 익어가던 나의 얼굴이 생각이 납니다. 잘 견뎌주어 고마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고 나니 사람이 더 커졌습니다. 어른이지만 또 다른 그릇의 어른이 되어갑니다. 지난날의 나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 스텝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그 모든 시간이 나의 전생이었음을 알게 된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러면 전생업에서 놓여났을까요? 유난히 찜통 같은 이 여름에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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