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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지 않은 마음

by aa

여름이 사라질 무렵 사람들은 자꾸 선을 그었고 나는 그 안쪽에 머무는 버릇이 생겼어 그로 인해 하늘도 바다도 무채색인 것만 같았지. 빛보다 더 빠르게 식어가는 웃음 속에서 나는 겨우, 그늘을 배웠어

어떠한 질문에도 정해진 대답이 없고, 사랑을 침묵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 스무 해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경이롭지만서도 무력한 일이야 가장 뜨거운 계절에도 겨울의 방식으로 안녕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무너지는 마음만 가만히 삼켰지 어쩌면 우리는 동경만으로 그려진 사랑을 한 게 아닐까

너도 알지? 누구나 희극이고 싶지만 다정한 현실은 드물고, 대부분의 안녕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비극의 서사로 마무리 되는 거야 너무 늦은 인사 앞에서 다정도, 재회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더 견딜 수 있을까
여름은 자꾸 도망치고 나는 늘 기다리는 쪽이야

그러니 내가 기다리다 웃고 결국 울어버린 그 밤을 기억해 줘 그건 그냥 울음이 아니라 너를 끝까지 놓지 못한 마음이었어 우리의 이야기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고 해도 너는 알고 있잖아 내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잊힌 계절의 이명을 느긋하게 불러 한때 눈부셨으나 끝내 식어버린 풍경의 잔향을 입술에 묻히면서.

파문처럼 번지던 마음의 낙인을 되새김질하듯 앓고 또 앓다 보면 마침내, 울음도 지쳐 잠드는 새벽이 오겠지 무너짐의 가장자리에 서서 내가 감당한 그리움의 무게로 비로소 단단해지는 어떤 계절이 온다면 이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너에게 보내는 지독하게 늦은 작별의 송시일 거야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야 부서지면서도 단단해지는 방법을. 그러니 부디 다음 겨울이 오기 전까지 조금만 더 나를 유예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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