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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카페

그들만의 세상

by 윤 슬

돌아온 싱글, 돌싱이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니 2004년부터 쓰기 시작한 신조어이며 이혼이나 사별로 다시 싱글이 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라고 쓰여있다.

이젠 명사화된 단어, 내가 이혼하고 7년 후부터 쓰기 시작한 말이었다.

돌싱카페를 처음 알게 된 건 2007년 겨울쯤이었다. 동생이 돌싱카페라는 게 있다고 한번 가입해 보라고 알려줬다.

다음 카페에 있던 카페였고 카페장이 방송도 하며 회원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들락거리며 카페분위기를 인지했다. 돌싱카페에 가입승인이 되면 자기 소개하는 곳이 있고 등업이 되려면 자기소개는 필수, 다른 사람들이 올린 것처럼 자기소개에 사진을 첨부해 올렸더니, 댓글이 여러 개 달렸고 쪽지로 본인들을 어필하는 글들이 여러 통 날아왔다.

쪽지들을 읽어보고 삭제하고 답을 하지 않았다.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로지 자기소개 몇 개의 프로필로 쪽지를 보낸다.

다 필요 없고 첫 번째는 일단 외모를 볼 것이다. 남녀는 첫 만남에서 3초면 그 사람을 파악한다고 한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첫인상의 시간 그 시간이 3초라고 한다.

그 당시 만해도 지금처럼 어플이 극대화되지 않아서 실물과 거의 비슷했을 테고, 여자들은 그나마 화장술로 커버가 된다 해도 남자들은

진짜 자신 있다 생각하는 사람 아니곤 사진까지 올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들은 얼굴 하나로 자신감을 표출했고 남자들은 경제력이나 스펙을 내세웠다.

하나 알 수 없는 일, 직접 검증받은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답이 없어도 여러 차례 쪽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쪽지에 답장을 보냈다.

쪽지 몇 통을 주고받던 중, 쪽지로만 얘기하지 말고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직접보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모르는 상태 내 얼굴만 사진으로 오픈돼 있는 상태였고, 그렇게 해서 돌싱카페를 통하여 처음으로 만나보게 된 사람이 내가 제일 사랑했었다고 언급했던 사람이다. 첫 만남에선 그 사람이 맘에 들진 않았다. 올백으로 넘긴 헤어스타일에 그 당시 유행했던 타이트한 정장을 빼입었고, 해골문양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니 내 눈엔 불량스럽기 그지없이 보였다.

외모와 반대로 저음의 목소리로 대화를 이끌어가며 달콤한 말들로 맘을 들었다 놨다 했다.

첫 만남에 시큰둥한 듯했던 나는, 적극적으로 호감표현을 해주며 퇴근시간에 매일 달려와주는 그가 싫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그 시간은 불행했던 모든 나쁜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행복하단 생각을 했었다. 돌싱카페 가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인연을 만난 거 같아서 카페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이별 후 남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용실과 집 혼술, 반복되는 생활에 무료함을 느꼈고, 들어갈만한 운동 동호회를 찾아봐도 주말에 일해야 하는 특성상, 내가 들어갈만한 곳은 드물 없다. 손님 중 산악회에 들어오라고 권유를 많이 했지만, 평일 휴무에 갈만한 곳도 없었고 그 당시 산악회라 하면 불륜의 온상으로 안 좋은 이야기도 많았기에 꺼려했다.

평일 늦은 저녁 퇴근 후 친목도모 할 수 있는 모임을 찾다 다시 가입한 카페도 돌싱카페였다.

다음 카페는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고, 네이버카페가 붐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네이버카페에 돌싱카페 1,2순위 이재모, 해피돌싱 두 곳 중 이재모에 가입을 했고 눈팅을 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채팅방이 개설되어이었다. 지역별, 나이대별, 띠별,취미별 각각의 채팅방엔 방장이 있었고, 카페장의 승인을 받아야 개설할 수 있었다. 72 쥐들의 놀이터, 눈에 들어오는 채팅방 제목이 있었고 채팅방에 입장하였다.

신입인물이 들어오면 우루루르 나와 인사를 해주며 서먹하지 않게 반겨주었다.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친해지기 어렵지 않았다. 같은 나이에 이혼경력이 있는 사람들, 종종 사별로 싱글이 된 친구들도 있었다.

채팅으로 먼저 이야기를 오래도록 하다 보니, 닉네임도 익숙해졌고 만나지 않아도 친해진 느낌에 모임 이나 번개도 종종 치는 걸 알고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서먹함도 잠깐이었고, 술을 마시며 급속도로 친해졌고, 서울, 경기권을 주축으로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찾아가 매상을 올려주기도 하고 상부상조하기도 했다.

김밥집 개업하는 친구 개업기념 모임 영원하자던 모임은 영원하지 못했다.

여자, 남자가 모이면 서로 탐색하고 인연을 찾기 마련 그중엔 서로 커플로 이어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난 이성으로 남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호감을 표현하는 몇몇에게 그저 친구로만 대해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었다.

홀로 미용실을 하는 내게 밥은 먹었냐며, 입이 궁금하진 않냐며, 도시락이며 커피며 간식, 과일 등 어찌들 그리 관심이 있으면 먹을걸 사다 주는지 , 그때 알았다, 티 나지 않게 과하지 않게 관심을 찔러보는 시도가 이런 거라는 걸...

우리는 깔깔거리며 항상 잘 모였고, 모일 때마다 해맑았으며 즐거워했다. 시간이 맞는 친구들끼리 등산도 여행도 했고 어린 자녀도 대동하고 놀러 다녔으며, 전국정모라며 6개월에 한 번씩 중간인 대전에서 모였고 그럴 때면 멀어서 참석 못하고 아쉬워했던 친구들도 꽤나 많이 모였다.

항상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으며 입이 짧았던 나도 빠졌던 살 이상으로 살이 쪄서 돼지가 됐다고 남사친들이 놀리기도 하였다.

대전정모가는 기차안 입석밖에 없어서 문옆공간에 앉은걸 동행하던 친구가 웃기다며 찍어줬다

돌싱카페에 도는 말이라고 카페에 가입해서 3년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쭉 묵은 회원이 된다고 하는 설이 있다 했다. 그래서인지 3년이 되기 전에 묵은 회원이 안되려고 이 모임 저모임을 기웃거리며

맘에 드는 사람을 찾아보겠단 일념으로 끊임없이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굳이 연인을 찾는 게 아니더라도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함 일지도 모른다.

나도 쥐띠 모임 외에 몇 번 다른 모임을 나가보았지만, 그런 모임은 불편해서 더는 나가질 않았다.

이별의 아픔을 돌싱카페 친구들을 만나며 많이 이겨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어서 맘을 의지하기도 내겐 좋은 기억이 더 많이 생겼던 곳이다.

동호회나 카페모임은 한 시절인 거 같다. 2년가량 왕성했던 모임과 교류들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개인적으로 더 친했던 친구 몇과 종종 안부를 묻고 지내며 지내게 되었다.

그 후 12년이 지났고 나를 비롯해 새혼에 성공했다는 친구들의 소식도 간간이 들리고, 아직 돌싱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로움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있다. 사십 대 초반인 그때와는 다른 맘으로 이젠 결혼은 하기 싫고, 연애만 하고 싶다는 친구 왈 오래 혼자 지내다 보면 혼자가 편해지는 법이라고...

그 많았던 친구 중 가끔이라도 안부문자를 보내는 친구도 몇 안 남았다. 카톡메인사진을 보며 이렇게 살고 있나 보다 한다.


글을 쓰며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이재모 멤버 127,854명 해피돌싱 398,271 명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이 많은 사람들 중 좋은 인연을 만나 새혼에 성공하여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도 많았고, 작정하고 사기를 치기 위해 들어와 있는 사람, 기혼이면서 싱글인척하는 사람, 문어발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있는 사람, 하룻밤파트너를 찿는사람,사라졌다 닉네임을 바꾸고 모르는척 다시 들어오는사람

별별일이 다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뉴스에 돌싱카페 중 한 곳이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 결혼을 약속하고 만나던 사람인데 알고 보니 스펙이 죄다 거짓말이었단다,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과 스펙을 보고 좋아했던 거고, 남자는 여자를 잡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헤어지자는 여자의 말에 남자가 자살을 했다는 사건이었다.

일이 아닌 사건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묻히고 만다. 그들만의 세상은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터이자 사랑을 찾아 헤매는 종착역 같은 곳이 기도 하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인 거 같지만, 인간의 따스함과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들만의 세상, 각자의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이루고자 하는 것들에 정신 팔려있는 동안 약해져 있는 감정을 파고들어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도 많으니 걸러낼 수 있는 현명함도 장착해야 할 거 같다.

이혼의 아픔이 있는 모든 분들 똑같은 상처를 되풀이하는 실수를 하지 말기 바라며, 새혼을꿈꾸는 돌싱분들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모든 선택과 판단은 본인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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