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나도 모르게 거짓인생을 살고 있었다.
난 결혼이 늦은 노처녀였고.. 내겐 아들도 없었다.
미용사로 산 20년의 인생 중 10여 년은 솔직하지 못하게 살았다. 미용일에서 손 놓고 나서 연락 안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당시 이혼녀였던 걸 모르고 있을 테고 사십 넘어 뒤늦게 결혼한 거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이젠 연락도 끊고 사니 몰라도 그만이지만...
첫 미용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난 아무 얘기도 안 했을 뿐 인대 좀 늦게 미용을 시작한, 솔로로 생각하고 얘기들을 했었다.
"무슨 일을 하다 이십 대 후반에 미용일을 배우러 왔대" 이렇게들 물어보면, 사람들 머리 만지고 가꿔주는 게 좋아 보였어요라고 대답했다. 제과제빵과 미용기술 중 솔직히 미용이 더 간지 나 보여서이기도 하고, 그 당시 미용실하던 분들이 건물 하나씩 갖고 있는 것이 돈도 많이 벌거 같아서였다.
마음에 거리낌이 있었지만 알 게 뭐야 하고 굳이 내가 이혼녀라는 걸 밝히지도 않았다.
이혼한 97년만 해도 이혼 이란건 친정 가족에겐 창피할 수도 있던 일이었고 당당하거나 쉽게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기도, 딱히 좋은 시선으로 봐주던 시대는 아니었다. 친정집으로 돌아간 나는 집에 손님이라도 온다 하면 집밖으로 나가 만화방이나 공원을 배회하곤 했고, 그냥 난 이혼녀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루저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서부턴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하며 손님들이나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소개팅이나 선 보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게 되는 미용지인들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된 거 같아 항시 맘이 편치가 않았다
나중에 진실을 얘기했을 때 어떤 반응이 올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지 않을지 그런 편치 않은 마음이 많았다.
이혼 후 친구들 과의 만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남자들의 합석이 있었고
내가 좋다며 호감을 표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행동이 굳어졌고, 계속해서 좋다며 다가오면
난 이혼을 했고 아들도 낳은 사람이라고 얘길 했다. 정작 주변지인에겐 얘기도 못했던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무기처럼 투척했다.
어찌 보면 이런 날 누가 좋아하겠어란 방어막의 말들이기도 했고, 이 말을 듣고도 좋아해 주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을만하다고 스스로 답을 내리려 해 보는 말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얘길 들은 남자들은 뒤도안 보고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런 사람만 봤던 건지, 결혼해보지 못한 싱글들에겐 큰 부담이었겠거니 생각하고, 누가 다가오지 못하게 장벽을 치고 살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금사빠 기질이 있었고
나의 외로움과 허기는 이성의 사랑이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착각에 빠지고 산 것도 같다.
이성과 감성은 늘 엇나갔다.
고지식함과 보헤미안의 기질도 공존했다.
음주에 한참 빠져서 알코올의존증이 아닐까 의심해 본 적도 있다.
고지식하고 감수성 많은 내가 진짜 나인지
알코올에 젖어 흐물거리며 용감해지거나, 센척하는 게 나인지, 내속엔 내가 모르는 다중인격이 한 번씩 나와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진짜 나인건지, 혼란스러운 적도 있다.
요즘 mbti로 알 수 있다는 성향을 보면
난 esfj 형이다.
얼추 맞아떨어진다.
규칙을 잘 지켜야 되는 나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표정이 굳어버리고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말을 더듬기도 한다.
이런 내가 이혼녀라는 걸 가슴속에 묻고 새로운 미용지인들과의 관계를 이어 갔을 때 맘 한편에 바위 한 덩이를 지고 있는 거 같은 묵직함에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살아가는것이 거슬렸었다.
사십 대 초반이 되면서 세상도 많이 변했고 예전보단 이혼 이란 것에 관대해졌고, 맘의 불편함을 내던져 버려야겠단 생각에 그나마 친해서 속마음을 자주 터놓고 지내던 사람 몇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던 사람들은
"진짜 힘들었겠다 진작 말하지 왜 이제야 얘기했어" 하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한 꺼풀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존재조차 이야기 못했던 나의 아들...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인상이 굳어지고 입을 닫고 있던 게 아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했었다.
아들의 유치원생활과, 초등학교생활을 알 수 없던 나는 친구나 지인들 입에서 고만한 또래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급격히 우울해졌고, 힘들어했다.
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고 나니 중학생이 된 나의 아들은 비로소 온전한 내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세상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가면을 쓰고 두 얼굴로 사는 인간군상도 많아졌고, 현실세계와 메타버스 세계에서 자신이 누군지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자존감, 자존심,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 생각하며 거짓으로 살았던 인생을 반성한다.
좀 더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됐을걸... 내 생각처럼 좀 다른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주변사람들의 입에 안주거리처럼 오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도 않는다는 걸 이제까지 살아보니 알겠다.
결론은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일이라면, 굳이 가면을 쓰고 거짓으로 살면서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나로서 나 자신을 사랑해 주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