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다 보면 하게 됩디다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되겠지 하다 보면 하게 될 거야 하고 나는 그냥 했다.
특별히 잘하지도 않았다. 맘 속으로 지는 것은 싫었고 그냥 중간이라도 되겠지 하고 시작한 일은 끝을 보긴 했다. 지각 결석은 하지 않았고 땡땡이도 치지 않았다.
주민등록증 만들고 처음으로 따게 된 증이 운전면허증이었다.
20살에 친구 셋이 함께 학원등록을 했다.
아빠가 면허증을 따오면 프라이드를 사준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난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한다며 하던 일이 잘 안 돼서 궁지에 몰릴 일이 생기면 트럭을 끌며 야채장사를 할 수도 있지 않냐며, 1종보통시험에 응시했고, 코스까지 붙었지만 주행에서 보란 듯이 타이어로 장막을 쳐둔 곳을 들이박으며 떨어졌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당황해 액셀을 밟은 것이다.
난 실전에 약하다. 시험이나 뭔가 일신에 변화를 줘야 하는 일이 생기면 떨려서 밤을 꼬박 새우는 스타일이다.
한 번의 주행을 떨어지고 두 번째 주행시험에 붙어 면허증을 땄지만,
몇십 년이 지난 나는 운전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운전대를 잡아본 날 수를 따지자면 30년 넘는 기간 동안, 연수받은 며칠뿐이다. 아빤 차를 사주지 않았고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운전면허는 장롱 속에서 나오질 못했다.
차를 살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차 한 대가 생기면 줄줄이 나갈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고, 아빠가 차를 바꾸며 타던 중형차를 준다고 했지만, 아이 키우기에도 빠듯한 살림에 언감생심이었다. 이혼 후 시작한 미용일은 박봉이었고, 아이를 만났을 때 가난한 엄마여서 해달라는 걸 못해줄까 악착같아져야 했고 어차피 집 근처 미용실 출근이 많아서 차는 필요 없었다. 두 번째로 생긴 자격증은 이혼 후 생계를 고심하다 땄던 미용사 자격증, 덕분에 홀로서기하는 내 인생의 중대한 밥줄이 되어주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엔 컴퓨터가 있었다.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동생을 집으로 붙들어 놓으려는 아빠의 심산이었다.
Ms dos라고 했던가 16비트 컴퓨터, 내 눈엔 컴퓨터 오락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pc방이란 게 하나둘씩 성업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 피시방 가자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난 컴퓨터도 켜본 적 없는 컴맹이었다. 관심이 안 생기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 또한 내 성격이다.
창피하기도 하고 세상에 뒤지는 거 같아서 안 되겠다 싶었다.
컴퓨터를 배웠고 피시방에 들락거리게 됐고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릴 줄 알고 제일 많이 한건 채팅이었다. SKYLOVE였던가 낯선 사람들과의 채팅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다른 세상을 알게 해 줬다.
세 번째로 딴 자격증이 워드자격증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자격증이긴 하지만, 서류작성을 완벽하게 터득했다. 그다음 도전은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컴퓨터그래픽운용기능사 준비 도서관까지 다니며 시험에 도전한 여러 명의 동생들을 제치고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실기시험준비까지 완벽히 끝냈으나 가정사가 크게 생겨 아쉽게 따지 못한 자격증이다.
컴퓨터프로그램 전공자인 남동생을 대동하여 고사양의 조립식 컴퓨터를 그 당시 150만 원이나 주고 구입했고, 프래쉬, 일러스트레이션. 포토샵, 나모웹등 홈피 만들기를 밤새워가며 공부했었다.
미용일을 하다, 미용일에 회의를 느껴서
이마트 화장품 영업일도 덜컥 지원을 해서 해봤고, 경리일도 도전해 봤었다.
서비스직은 쉬운 일이 없는 거 같다.
다시 미용사로 돌아갔고, 미용일을 하며 쉬는 날 하루를 여성회관에 1년간 다니며, 네 번째 패션페인팅 자격증을 땄다.
어느 해마다 유행하는 일들이 있었고, 그 당시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직물용 물감으로 그리기가 유행이었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에 지원할 수도 있다는 게 매리트 있어 보였다.
주위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는 나를 부지런하 다했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해서 뭔가를 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20년이 넘는 시간 미용일에 안주하고 살았고, 역시 오래 하고 익숙한 일이 맘은 편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가게를 접었지만, 가끔씩은 주 3일 정도 스페어로 미용알바를 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전까지는 알바를 꾸준히 했었다.
코로나는 세상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었다, 그 와중에도 괜찮다며 마구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세상 겁을 먹고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거의반년을 집에서 어찌 지냈는지 그걸 또 적응하고 사는 날 보며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쉬웠다.
국비지원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었다. 설마 마스크 잘 쓰고 있는데 죽기야 하겠어 란 맘을 먹고 커피바리스타 학원에 등록을 했다.
집콕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커피를 늘 내려마셨고, 원두에 대한관심도 생겼고, 카페 하나 하고 싶단 생각도 슬그머니 들었다. 세계적인 바이러스의 재앙에도 무언가를 배우러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학원에 가보면 중년이상의 노년의 분들이 많으신 걸 보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궁금해하고 배워야 하는 게 맞나 보다란 생각도 해보면서 어르신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민간자격증은 대체적으로 취득하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2달 만에 달달달 떨며 시험을 봤고 다섯 번째 커피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각 지자체에서 소정의 재료비만 내면 무료로 해주는 교육들이 많이 있다.
코로나 시기엔 비대면 줌 수업으로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었다. 반려인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수업을 찾았고, 여섯 번째 펫시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요즘 간간히 고양이들 방문탁묘 알바를 하고 있다. 우리 집 고양이뿐 아닌, 각각의 다른 집 고양이를 봐주는 일은 내겐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노인산업이 성업을 이루는 세상이 왔다.
50대의 배움은 80대에 행복을 준다고 여러 방면 강사일을 하시는 분이 말씀하셨다.
평생학습관에서 노인그림책 긍정심리지도사 일곱 번째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인이 그림책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긍정정서를 확장할 수 있도록 음악, 미술, 원예, 글쓰기 등 다양한 그림책 연계활동으로 그림책긍정수업을 진행하는 활동이다.
아이 키울 때 보고 안 보던 그림책을 중년의 나이에 읽어보니, 감동과 교훈이 마음속에 울림을 줘서 깜짝 놀랐다
배움엔 끝이 없는 거 같다. 뭐라도 자꾸 배워보고 싶고 궁금한 게 아직 많은 나를 칭찬한다.
이 나이에 뭐가 되길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할 것이 많아지니 우울할 시간도 없는 거 같다.
뭔가를 배우러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세상에 숨은 능력자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이런 거 전혀 해본 적도 없고 못하는데"
하더니 시키면 다들 잘 해낸다. 그게 젤 신기했다.
우리들의 유전자에 숨겨진 많은 재능들이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지 톡 하고 건드려줬을 뿐 인대 비로소 세상밖으로 뿜어져 나오나 보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해보세요.
꾸준하게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잘하고 있게 됩디다.
하하하 민망하지만 운전은 지금도 너무 무섭고 잘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아 민폐여사가 안되려고 못하고 있답니다.
27년도엔 면허증을 갱신해야 하는데 고민이 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