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탄생 이란 영화를 보고
23살의 왕성한 가임력을 갖고 있던 나는 첫 경험 한 번으로 혼전임신을 하였고 주변의 많은 스트레스와 힘들었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잘 유지했으며 특별한 영양제나 관리를 받지 않고도 이벤트 없이 튼튼한 3.4킬로의 아들을 출산했다.
오티티 프로 그램에서 우연히 픽한 '영화 조이의 탄생' 최초의 체외수정을 성공시킨 의사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최초 시험관 시술 성공으로 탄생한 아가, 난임부부들의 아픔과 희망을 이야기한 스토리가 맘에 꽂혔다.
조이의 탄생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영국에서 종교계와 과학계 배척받고. 온갖 어려움에 맞서면서 체외수정을 연구하고 개발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난임으로 상처받는 실험참가자들의 아픔, 그 기대 끝에 체외수정으로 최초탄생한 생명,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탄생한 아이의 이름은 조이였다.
자연임신으로 24살 나이에 출산해 엄마가 된 내가 궁금해하기엔 소재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체외수정 시험관 시술 경험이 5번이나 있는 난임부부의 경험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 보기 전까지는 난임이란 말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였고 이야기였다.
엄마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상처받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슬픔과 희망과 절망사이 희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체의 노화는 왕성했던 가임력, 건강한 난자도 같이 늙어가게 만든다. 남자는 3개월마다 정자가 리셋이 되어 체력관리만 하면 충분히 정자상태가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몸은 태어날 때 난자의 개수가 정해지고 , 나이 듦과 함께 난자도 늙어간다는 걸 시험관을 하는 그쯤 알게 되었다.
46살에 재혼한 나는 100세 시대란 이야기를 들으며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지금 임신해서 출산을 해도 아이를 충분히 케어할 수 있을 거라고 불안했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남편이 측은지심에서 시작된 마음이었으며, 자식이 한 명은 있는 온전한 가족의 형태가 그리웠으며 친손주가 없던 시아버지도 50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는 둥 애하나 낳길 원하셨다.
나는 생리를 계속하였기 때문에 잠자리만 하면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엔 배란일을 받고 숙제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초음파를 보며 난자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지 사이즈를 재면서 관계를 갖아야 되는 날을 정해 주는데 그걸 숙제라고 이야기한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매를 오래 앓으시던 시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숙제를 하라고 날자를 받아놓은 기간이었다. 첫 숙제는 상황상 지나가 버렸고, 다음 달 두 번째 시도에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혼인신고가 되어야 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친정에는 알리지 않고 시작했던 시험관시술, 탑병원보다는 일하는 곳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었다.
난임과 가 있는 산부인과에 진료를 보러 가니 여자는 기본적인 난소수치검사와 나팔관검사, 남편의 정자검사를 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난소수치에 비해 남편의 정자상태는 기형정자가 많았고, 평균이하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험관시술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당시 1인미용실을 하던 나는 체력이 부치는 걸 느꼈고 화장실에 숨어서 배주사를 놨으며, 호르몬 주사의 부작용으로 불면증도 심해졌고, 난임카페의 노예가 되고 있었다. 호르몬의 농간에 감정은 들쑥날쑥거렸고, 별노력 없는 남편이 이해 안 되고 미워지기 시작했다.
난임 카페에는 온갖 정보가 넘쳐났고, 같은 맘을 위로받기 위해 여러 개의 채팅방이 있었고, 자연히 의기투합 친분이 생겨 모임이 만들어지고 본인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시술이력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생전 먹어보지 않은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고, 혈액순환이 잘되게 해야 한다고 만보 걷기, 겨드랑이 100번씩 두드리기 , 등산,족욕, 108배를 해대기 시작했고, 줌바댄스를 하던 국민학교 동창의 임신 출산 소식에 줌바를 시작했다. 착상에 좋다는 포도즙 고함량 아르기닌, 그리고 각종 영양제를 배부르게 한주먹씩 먹어댔다. 커피도 끊었고, 술은 당연지사 금주였다.
시술 1회 차 생리가 시작되면 병원을 방문, 과배란 호르몬 배주사를 10일 정도 맞으면서 난포의 개수와 사이즈를 측정한다. 2미리 정도로 자란 난자를 채취하게 된다. 4개의 난자가 체취 되었고 2개는 상태가 괜찮다고 하였다. 남편은 난자채취 하는 날 정자채취실에서 정자를 컵에 담아내면 된다. 3일 배양으로 수정시켜 8세 포기까지 분열된 그중 상태가 좋은 배아 2개를 자궁으로 이식시켜 준다. 내 눈으로 수정된 배아를 확인할 수 있다 자궁으로 이식해 주기 전 티브이 모니터로 상태를 보여준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2주를 기다리고 피검사로 임신성공 유무를 알게 된다.
이식 후 12일쯤 되면 임신 호르몬 수치 피검사를 하러 오라 한다.
9일에서 10일이 지나는 시점에 왠만 한 사람들이 못 참고 먼저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대고 만다.
착상이 되면 흐리게라도 두줄이 보인다고, 테스트기 좀 봐주세요 하고 사진들이 올라오곤 했다.
두줄이 안 보이면, 아직 늦어서 그럴 거야라고 위안하며, 피검사를 하러 가는 당일 생리가 비치면, 실패한 걸 알면서도 피검사를 해야 하고, 피검 수치 확인 전화가 와서 "안타깝지만, 이번차수에선 임신 수치가 나오지 않으셨어요 몸관리 잘하시고 다음에 생리 시작 하면 다시 방문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듣고서야 우울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그때까지 나는 무조건 시술받으면 한 번에 성공할 줄 알고 있었다.
나이 불문, 시술 1회 차에 성공하면 진짜 운이 좋은 거라는 걸....
그 당시 시험관국가지원은 나이제한이 만 46까지였다, 최대지원 100만 원 경제력이 넉넉하지 않으면 시술받기 쉽지도 않았다. 그 당시 많은 난임부부들의 국회청원등으로 지금은 나이 제한도 풀리고 횟수제한 지원금도 많이 달라진 걸로 알고 있다.
시술차수가 늘어날수록 아는 것도 많아지고, 한 번만 더하면 될 거 같은 마음이 집착이 되어, 나를 들들 볶고 괴롭히고 있었다. 가게도 접었고, 지원되는 4차 시술도 실패로 끝났으며, 지원금 없이 보험적용 없이 들어가는 시술 비용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5차는 난임지원단체에서 수기글을 모집해 채택된 몇 명에게 한 회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운 좋게 뽑혀서 소정의 금액만 지불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48세에 5회 차 시술을 끝으로 임신의 노력을 접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하면 될 거 같은 마음으로 노력할 만큼 했었고,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내 46살, 48살의 나이로 출산한 지인들도 보았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아기와 만났다는 그녀들이 이야기는 세상의 어떤 감동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시험관 시도 하는 중간 운 좋게 자연임신으로 임신의 기적도 있었다, 진심으로 기원하고 노력했더니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왔구나라고 하늘에 연신 감사를 했었다. 초음파로 본 반짝이던 심장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10주에 계류유산으로 아이를 잃고 말았다.
이혼 후 사귀었던 사람의 아이를 갖은 적이 있었다 자연주기 피임을 믿고 있었지만 덜컥 임신이 되었고 남자는 아이를 원치 않았고 나 또한 생계가 먼저였다 두 번의 임신중절을 했다.
시험관을 실패할 때마다 임신중절의 기억은 더 큰 죄책감을 느끼게 했고 생명을 등한시해서 임신이 안되는 거라고 혼자 자책도 많이 했었다.
47세 10월 5차 시험관을 마지막으로48세가 되고 나니 노화되면서 떨어지는 체력에 출산과 육아는 자신이 없어졌고 있지도 않은 아이에게도 미안할 거 같은 마음에 이만하면 됐다 하고 집착을 내려놓았다.
주변 지인인 동생들에게 난자냉동을 권유하기도 했다. 듣자마자 "나 결혼 안 할 거니 괜찮아 " 소리를 했었고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 그래도 생각해 보라 이야기를 했다. 몇 년이 지나 시험관시술을 받고 있다는 동생은 힘들다며 우울하다고 했고 3차 시술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7년 전 시술하면서 알게 된 동생은 아직도 시술 중이란 소식을 들었고,여러번의 유산끝에 소중한 아기를 품고 있단 소식을 들었다 10년의 고생 끝 꼭 건강한 출산하길 기도한다.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들의 스토리를 sns에서 종종 보고 있고 , 고령의 나이로 시험관 시술 시도의 기록들에 배 놔라 감 놔라 악성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 제발 그런 말들을 삼가하길 바란다. 본인들의 간절한선택이다. 자식을 품고 싶어 하는 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꼭 아기와 만나길 바란다.
난임을 겪으면서 시술 중인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꼭 엄마와 아빠로 불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