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을 기다린 못난 엄마
5월엔 카네이션, 카네이션이 뭐라고...
심장이 저릿저릿하며, 코를 훌쩍거렸다.
소주 한잔을 따라 마시니 왕방울만 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이날 온통 카톡 메인 사진이 꽃으로 물든다.
프로필을 쭈르륵 내려 본다 핑크빛 붉은 카네이션 천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은 꽃에 삐뚫거리고 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사진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의 모습은 5살 때 모습, 상상 속에서 자라지 않았고 헤어질 당시 모습 그대로 크질 못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시간이동을 해 5살의 아들 모습은, 14살의 소년이 되어있었고, 10년 가까이의 공백 속에
아들은 사랑의 결핍 속에 아픈 상처를 혼자 견디고 있었다.
난 그저 착한 아들을 보며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안도와 감사함을 느꼈다.
나에게 봄 은 야들하고 빛나는 새싹을 보는 것처럼 찬란하고 희망으로 가득 차지 않았다.
봄이 오면 늘 힘이 없어 보인다, 병든 닭 같단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들과 헤어져 지내는 여러 해의 4월이 오면 홀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며 죄 많은 엄마인걸 한탄했었고 5월이 오면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맞으며 가슴이 찢어졌었다.
이런 나를 보며 주위에서 하는 말은 "아들이 크면 널 찾아올 거야"였다. 위로가 될 수 없는 말이었고, '내가 먼저 찾아야지 왜 아들이 찾을 때까지 기다려'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난 너무 무지했던 거 같다. 양육권을 주면 아이를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거로 알고 있었고, 새엄마가 연락하지 말라고 보낸 문자 한 통에 아들에게 해고 지라도 할까 싶어 아들 볼 생각을 접었었다.
재혼한 애아빠와 아들의 새엄마 몰래 14살부터 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두근두근 연인이라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멋을 부리고 설레했었다. 아들이 뭘 좋아할지, 뭘 해줘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또래 아이가 있는 지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한편으론 사춘기쯤 됐을 아들을 생각하니, 맘이 조심스러웠다.
2008년 중1이었던 아들은 핸드폰이 없었고
약속을 한번 잡으면, 아들이 먼저 연락해 오기 전엔 난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애아빠 모르게 아들을 만나고 있던 거라 핸드폰을 사줄 수도 없었다. 약속을 해놓고 깜박 잊고 약속장소에 아들이 나오지 않으면 난 절망에 빠져 슬퍼하며, 아들이 날 미워한다고 생각했다.'미워해도 미움받아도 당연하지, 지옥 같은 곳에 널 방치해 두고 혼자만 빠져나왔으니'
아들은 내게 쉽게 속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종종 무언가 필요하다고 용돈을 달라고 얘기는 했지만, 내가 묻는 말에 네, 아니요 하고 답을 해도, 먼저 이야기 꺼내는 일은 없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떨어져 지낸 시간은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을 만들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아빠한테 또 맞고 집에서 뛰쳐나왔어요" 재혼한 애아빠의 폭력 타깃이 아들에게로 바뀐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역시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짐승 같은 새끼' 분노가 휘몰아치는 걸 누르고, 아들을 만나러 갔다.
하얗게 뒤덮인 세상은 새까 많게 타들어 가고 있던 내 맘과 대비를 이루었다.
청소기로 맞았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랑 같이 살자고 물어봤는데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을 안 해도 알 거 같았다. 10년이란 공백의 시간은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지옥 같은 곳이 지만, 아들에겐 그곳이 더 익숙한 곳이 되었다는 것을...
아들에게 듣기로 새엄마라는 사람도 정이 많거나, 친절한 성향은 아닌 거 같았다. 가끔 전화 너머로 들려오던 말투 목소리톤이 쩌렁하게 들려오던 게, 내가 해버린 추측이다. 그래도 밥도 해주고 널 챙겨주긴 하시니까, 미워하진 말라고 말했었다.
"아빠가 새엄마한테는 손지검을 하지 않아? " 물어보니 오히려 여자에겐 큰소리도 못 낸다고 했었다.
아들에겐 배다른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아빠가 동생에겐 신경을 많이 써주는 거 같단 얘기도 들었다.
나에 대한 미움으로 아들에게 못되게 구는 걸까 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아들은 아빠와의 삶을 견디기로 했었다.
엄마랑 같이 살자고 강요하지 못했다.
아들과는 인터넷메신저로 가끔 이야기를 했었고, 아들도 나도 서로 눈치를 보며 지낸 거 같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새엄마가 사라졌다. 이제 속이 시원하다"라고 이야기를 전해왔고, 아들은 아빠도 출장이 잦아져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아들과는 그때부터 친해지기 시작한 거 같다.
친구처럼 대해야지, 속마음을 이야기해 줘야지.. 하면서도 미안한 맘에 일상적으로 늘어놓을 수 있는 엄마들의 잔소리조차 하진 못했다.
어버이날이었던 어느 날, 아들이 미용실로 찾아왔고, 손엔 작은 쇼핑백 하나가 들려있었다. 혼자 설레어하면서 카네이션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기뻐했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이 좀 들더니 이제 어버이날도 챙겨주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돌아가겠다는 아들은 쇼핑백을 다시 들고 갔다. 아들이 화장실에 갔을 때 살짝 들여다본 쇼핑백엔 카네이션은 없었고, 잡동사니 짐만 있었다.
모르는 척, 어버이날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서운한 티도 낼 수 없었다.
아들은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이야기하러 왔던 거고, 어버이날인지는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들을 보내고 혼자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노릇은 제대로 못했으면서, 엄마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알량하고 좁은 속을 한탄하며 자책했다.
내게도 숨길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걸...
고등학교 졸업식
처음으로 아들의 졸업식에 가보았다.
이젠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이혼 후 처음으로 14년 만에 애아빠를 봐야 한다는 불편함은 아들졸업식에 간다는 설렘에 사그라들었다.
무슨 날만 되면 혼자 애타는 속을 견뎠다.
입학식, 졸업식. 어린이날, 재롱잔치,
조카들의 재롱잔치를 보며 , 입학, 졸업을 챙겨줘도, 형제 누구도 내속을 달래주던 이는 없었다.
아들은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기에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학교행사 참여가 됐다.
감개무량했다.
군입대 할 때 내가 대성통곡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착하고 고맙고 기특한 내 아들...
엄마 미안하단 말 그만해도 돼 자꾸 듣는 것도 싫어 엄마 상황 이해가 돼
이 말을 들은 후 난 조금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아들은 엄마생일이 음력이라고 계산하기 힘들다고 한다.
미리 알려달란다. 난 카톡에 떠서 남들도 다 알더라 핀잔을 주며 이야기한다.
아들이 어느새 30살이 되었다.
우린 별별얘기까지 다하는 사이가 됐고,
난 X세대, 아들은 MZ 세대이다.
서로 답답하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아들과 자주 통화는 안 해도 길게 통화할 때는 1시간도 넘게 통화를 한다.
며칠 전 어버이날 연락을 기다리다
아들에게 ' 흥! 서운해 엄마도 카네이션 받고 싶어'라고 톡을 보냈고
전화를 걸어온 아들은 "어버이날 인지도 몰랐네
'아빠가 어버이날인대 뭐 없냐' 며 말을 해서 알았다"며 속얘기를 했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있었고, 아빠한테도 무슨 날 챙김을 받지 못해서 어버이날이나 무슨 날들을 생각해 보고 살지 않았어, 엄마한테 얘기 안 했는데 나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아빠한테 맞았어, 고2 땐가 한번 대들었다가, 근처 사는 이종사촌 형한테 아빠한테 대들었다고 두들겨 맞았어. 그래서 어버이날 그런 거 나한텐 별로 의미가 없었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 인간 하나가 두 명의 인생을 망쳤구나!'
싶으며 아들이 또 안쓰러웠다.
어릴 때 내 상처도 마음구퉁이에 아직 남아있는걸, 아들에게는 나보다 더 큰 상처가 있는걸 엄마라는 사람이 칭얼칭얼 거리고 있었구나.
아들의 마음은 내 마음보다 더 넓고
클지도 모른다.
요즘엔 아빠가 늙어가는 게 불쌍하단 소리를 해서, 그럼 엄마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혼자서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거 같아서 측은해 보이지는 않아.
라고 이야기해서 내 질투를 유발해 댔다.
얼마나 심성이 착한가, 미워해도 모자랄 아빠에게 측은지심 이라니.,
아들아 엄마, 아빠를 잘못 만나서
네 인생의 찬란하고 사랑받아야 할 순간을 제대로 못 누리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묵묵히 담장의 울타리가 되어줄게
그래도 이런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맘에 의지가 되어 주길 바래
네 마음속에 음지가 조금씩 줄어들 길 바래
젊은이들이 갈수록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지만, 한줄기 빛은 잃지 말았으면 한다.
너무 늦다고, 조바심도 내지 마, 사람에겐 다르지만 다, 때가 있다고 얘기했지
항상 널 응원하고 지지해
사랑해 아들 잘자라 주어 고맙고 고마워
카네이션 못 받았다고 투덜대지 않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