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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닮았나, 음주가무 유전자

줌바댄스에 빠지다

by 윤 슬

아빠는 음주가무에 능했다.

카바레는 춤추는 곳이 아니라, 운동하는 곳이라 했고 70대가 넘어서도 운동이라며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내게도 아빠의 음주가무의 유전자가 있는 듯하다.


줌바댄스를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8년 차가 되었다. 주 3회 줌바로 시작하는 아침, 50분을 쉬지 않고 음악에 맞추어 속옷이 다 젖을 정도의 땀을 흘리며 뛸 수 있게 되었다.

줌바댄스 (줌바는 빠르고 재미있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

ZUMBA줌바((춤과 에어로빅을 결합하여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하는 운동)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하는 단체운동
줌바, 아줌마, 줌마, 어감이 비슷해 아줌마들이 하는 운동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47살이 되었을 때, 남편 직장이 이사하게 되어, 오랜 생활터전이었던 인천부평구에서 , 서구 검단 이란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혼자 살던 집에 자연스럽게 남편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사하려는 직장까지 통근시간과 차 막힘이 엄청 심한 곳이라, 이사를 결정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낯선 곳 이래도 살다 보면 다 똑같으려니 했다.

검단은 인천의 완전 끝쪽으로 과거에 경기도에 포함되었던 곳이었는데 지역개편을 하면서 인천에 속하게 된 동네다. 아직도 군데군데 시골 느낌 나는 곳이 꽤나 많이 남아있는 동네, 다방이 아직도 너무 많아서 놀란 동네이다.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다는 남편을 생각해 형편도 안되는데 대출을 많이 끌어 아파트를 매수했다.

우린 진짜 이거 저거 따지지도 않았고, 저렴하면서 산 뷰가 끝내주는 눈 쌓인 설산 하나 보고 덜컥 계약을 했다.

나도 부동산 쪽으로 아는 것도 없었고 남편은 나보다 더한 사람이었으니 말해 모해하는 정도이었다.

남편은 출근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처음으로 단둘의 33평의 아파트가 생겼다고 좋아라 했으니, 난 뭐 어디 가도 적응은 하고 사는 인간이니, 됐다 싶었다.

운전을 못하는 내겐 어디 한 번 나가려면 교통이 불편했던 곳, 교통이 사방으로 편했던 동네에서 불편함 없이 살다, 너무나 불편해서 외출이래 봤자 집에서 20분 걸어 나가야 하는 나름 시내인 곳 외출 이외에는 나가지도 않았다.

시험관 시술 중이었던 나는 아파트앞뒤로 산이 있어서 혼자 주 3일 등산을 하며 지냈고, 이사 와서 좋다던 친구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갑자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여 콧베기도 볼 수가 없었다.

낯선 동네를 혼자 탐방하고 다니다, 주민센터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고, 초등학교 동창이 줌바댄스를 하던 중에 늦둥이를 임신했고, 불임이었던 몇 명도 자연임신이 됐단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불현듯 났다.

줌바댄스 홍보는 티브이프로에서 본 적이 있었고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다. 50분 동안 따라 하다 보면 1000칼로리 소모되고 근력과 유산도 운동이 동시에 된다 했다. 집에서 대충 따라 해도 숨이 턱끝까지 차서 10분도 따라 할 수 없었다.


태어나 댄스라곤 나이트에서 막 흔들어 대던 막춤만 추어봤고, 운동이라곤 헬스장에서 혼자 하는 운동만 해봤던 터라, 심히 걱정을 하며 등록을 했다.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어울려지는 애엄마들의 모임 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비로소 아줌마들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주 3회 , "열심히 해볼 테다. 하다 보면 나도 자연임신의 기적이 생길지도, 시험관시술을 하며 호르몬 때문에 찐살도 빼리라" 굳게 결심을 했다.

편한 복장과 실내운동화 준비물도 간단했다.

수강료 또한 이리 저렴할 수가, 나에게 딱이라 생각을 하며 첫 수업에 나가봤다.

두근두근 설레기도 낯설기도, 첫 수업이니 무언가를 알려주고 수업에 들어가겠지 했던 내 생각은 정말 빗나갔다.

강사님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준비운동이라며 음악을 틀었는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사지가 따로 놀기 시작했고 정신은 아늑하게 멀어지는 것 같았다. 버벅버벅 이쪽으로 돌라하면 저쪽으로 돌았고 오른발이 나가라면 왼발이 나갔고, 아... 난 줌바를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멘붕이 아닐는지... 근데 웬걸 오래 운동한 듯 잘 따라 하는 회원들이 많아서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님을 따라다니는 회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뭘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 하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난 못할 거 같아" 얘길 했다.'다 처음 하는 사람들 아니야? ' "모르겠고, 잘 따라 하는 사람이 많던데"

'에라 모르겠다 하다 보면 어찌 되겠지' 시작을 했으니 3개월만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녀보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면 앞자리는 피하고, 뒷자리도 피하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자리를 고수했었다.

잘 보려면 두 번째 자리가 좋겠다 싶어 두 번째 자리에 섰다. 나중 알고 보니, 첫 번째 줄은 안무를 잘 외우는 오래된 연차들이 서는 자리 란걸 알았다. 그들만의 룰이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잠깐 시도해 본 아쿠아로빅 자리 사건이 생각났다.

물공포증을 없애볼 요량으로 신청했던 아쿠아로빅은 뒤자리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진다 해서 두 번째 줄에 떡하니 서있었더니, 할머니 회원분들이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여긴 내 자린데, 첨 왔으면 뒤로 가야지! " 나는 바로 몰랐습니다 하고 뒤로 물러났는데 또 다른 분이 오시더니, 뒤로 뒤로. 밀리다 결국은 맨 뒷자리 젤 깊은 곳으로 밀려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행정복지 센터에 프로그램은 주로 사십 대에서 육십 대 분들이 제일 많은듯했다. 3가지 이상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사십 대는 어린 편에 속하는 듯했다.

한 달을 채워가고 있을 때 맨 앞자리 내 앞쪽에 계시던 오래 하셨던 분이 갑자기 이사를 가시며 못 나오게 됐다고 자리가 비었을 때 강사님이 "앞줄로 나오세요" 얘길 하셨고 눈치 보며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자 나를 지목하고 나오라 해서 억지로 앞줄로 나가게 됐다. 창피해서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딱히 거절도 못하고 넋이 나가 한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르겠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주민자치센터 대회가 있었고 하기 싫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인원수를 채워야 한다며 연습에 참여하라 했다.

연습을 계속해도 안무는 자꾸 틀리고

대회날도 긴장해서 몇 번이나 틀렸지만,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섰던 기억은 또 추억이 되었다.

어느덧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고 있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고 즐기기 시작했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앞줄에 서게 된 나는 잘해야겠단 책임감이 생겼으며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심히 안무를 왜 우며 즐기게 되었다.

살도 5킬로나 뺐었고, 미용실알바도 줌바수업이 있는 월. 수. 금. 은 피해서 했을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사회성도 더 좋아졌다

정적인 요가 같은 운동은 한두 달밖에 못했던 내겐 대단한 성과였다.

미용실을 하며 전업주부이면서 문화센터를 다니며 운동 끝난 후 점심을 먹는다거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떤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나랑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다 싶었는데, 나도 운동 후 브런치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처음엔 할 말도 없고 자리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더니, 이젠 집에서 혼밥 하기 싫거나 밥이 없을 땐 무조건 식사를 하며 별일 없는 일상수다를 떨다 온다.



우울하거나 삶이 힘든 사람들은 꼭 운동을 하라고 권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침대 속에서 나오기도 싫고 만사가 귀찮은데, 나와의 약속이다 생각하고 그냥 벌떡 일어난다. 사실 벌떡은 아니다 알람 울리고도 20.30분은 뭉기적거리다 일어나기도 하니,

억지로라도 나가서 음악을 들으며 땀을 내면 심장이 요동을 치며 온몸이 개운해진다.

그러다 보면 힘들었던 일도 잠시 주춤하게 된다.

중년엔 본인의 취향에 맞는 운동 하나쯤은 하고 살길 바란다.

어떤 운동이던 상관없다.


내 안에 음주가무의 유전자는 아빠를 닮았나 보다 희한하게 4남매 중 내게만 몰빵 된 유전자인 것 같다.

음주의 유전자보다 강한 가무의 유전자,

그렇다고 뭐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문화센터 줌바 수업 강사님 옆 센터 자리를 6년 정도 고수하는 정도는 됐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은 "너 아직도 줌바해?"라고 묻는다 당연하지 하고 대답하면 대단하다라고 말해준다.

"난 아무것도 아닌걸, 강사님 따라 20년 운동하시는 분들도 있어"라고 대답해 준다.


치매예방 우울증 극복에도 좋다는 줌바댄스, 한번 경험해 보세요 그냥 따라 하시다 보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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