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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25. 2024

세 번째 손님 1 - 멍



자신이 며칠 전 갔던 곳이 진짜일까 아니면 환영일까. 상혁은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도 서재에서 본 것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시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지 이내 두 손으로 자신의 양볼을 찰싹 치고는 멍해있었다. 

오늘 아침을 먹을 때 다시 주인장과 이야기하며 열어보았지만 그곳은 보통의 서재였다. 자신이 있는 곳이 환상과 현실 그 어디쯤 인 것 같아 상혁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때마침 생각을 멈추라며 경고라도 하듯 전화가 울렸다. 


그 남자였다. 며칠 전 굵은 목소리로 되도록 빨리 이야기할 날짜를 잡아달라던 사람.


“ 이번에 아이가 4학년이 되고 또다시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살다 보면 괜찮아지는 날도 오겠지 하면서 참고 또 참았는데 또 이런 일이.. 학교에 이야기하고 대책을 요구해도 달리 변하는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도 지치고 저도 지쳐서 도저히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상대방 아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 괴롭힘을 상대방에게 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무척 힘듭니다. 곧 다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쪽 근처로 이사하려고 합니다. 제 사정을 들은 분이 건너 건너 소개받았습니다.” 


남자는 학폭 피해자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상혁은 순간 자신이 이런 다급한 일을 이야기하겠다는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마음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 전화가 왔을 때 자신이 무슨 느낌으로 이 안타까운 아버지를 왠지 거르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다시금 떠올리려 미간을 서서히 모으는 중이었다. 물론 벽 너머에 앉아있는 상혁의 이런 표정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허공에서 그저 메아리치다가 바스러지는 느낌입니다. 제가 지난 기간 동안 학교에 요청했던 이야기들이 말이죠. 이번엔 멱살까지 잡힌 데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괴롭힌 것 같은데 이젠 아이도 지쳤는지 저에게 말을 하려고 들지 않아요” 


‘ 아.. 초등생이 말을 안 하려고 한다면 심각한 거 아닌가’ 


상혁은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는 이 아버지가 대단하고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주인장이 이런 사람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후로 남자는 꽤 아들 이야기를 쏟아냈다.


“.. 판단이 쉽지 않아.”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손님에게 되도록 자세한 이야기 듣고 그 이후에 시간을 잡는다고 했다. 다른 것보다도 한쪽 이야기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주인장의 입장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른 때 보다 더 차분했다.  



“ 아래의 6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잠시 이곳의 기억에서 확인할 게 있어”


상혁과 주인장이 서재방에 들어서자 벽에 군데군데 진한 멍 같은 색이 칠해진 것처럼 얼룩덜룩한 색이 입혀져 있었다.  이유는 벽을 찬찬히 살펴보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혁은 사람마다 완전히 달라지는 7층의 모습에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었다.


‘ 아 마음의 상처가 나면 이렇게 표현되기도 하는구나. 이게 살점이면 진짜 많이 아프겠다’ 


얼룩덜룩한 그 색들 중에 일부는 조금은 옅은 색을 또 일부는 매우 진한 남색과 얼룩덜룩한 붉은색의 점들이 함께 찍혀있었다.  상혁이 서있는 곳 바로 옆면이 가장 진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봐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라보던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치 그 색깔이 있는 곳이 진짜일까라는 호기심이 들자 그저 손가락으로 그 진한 남색 부분을 살짝 눌렀을 뿐이었다.  


‘ 쿠르릉’ 


상혁이 손가락을 살짝 닿을 듯 누른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마치 3D 홀로그램의 이야기가 펼쳐지듯 이유와 상혁 앞에 나타났다. 




“ 아빠 그냥 그 친구랑 지나가다가 부딪힌 것뿐이에요. 처음엔 저도 그 친구가 일부러 그런 건가 싶어서 화가 났지만 그게 아니라면서 저한테 제대로 사과도 했는걸요” 


“ 아직도 그렇게 물러터져서. 아빠가 얼마나 더 설명을 해야 하니. 그런 녀석은 우연인 척 너한테 해코지 한 거라고. 니 몸은 네가 지켜야 하는 거야. 그렇게 많이 말했건만. 아직 어리니까 아빠가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안 그러면 이렇게 거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 애 이름이 뭐야” 


“ 그냥 살짝 부딪히고 서로 사과하고 넘어갔어요. 그 아이 이름 말하고 싶지 않아요. 또 학교에 전화하실 거잖아요..”


“ 그래? 그럼 내가 담임 선생님께 여쭤봐서 다시 처음부터 알아봐야겠구나” 



그건 기억이었다.  


처음에 화들짝 놀란 상혁은 뒷걸음치다 뒤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보고 있던 주인장이 잡아줘 넘어지진 않았다. 이유는 찬찬히 이런 내용들을 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농도의 색깔들이 있는 얼룩을 살며시 눌러보기 시작했다. 

옅은 멍처럼 보이는 부분들은 대부분 아이가 태어난 후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하는 유아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의 비슷한 내용들. 대화의 상대방은 유치원 선생님이거나 상대 아이의 부모인 경우가 많았다.  다만 서로의 입장차가 치열하게 달랐다.



“ 아버님이 무엇을 우려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블록을 자기도 모르게 던지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세세히 살펴보고 아이들이 그 행동을 하기 전에 알려주지만 놀다가 긁힌 상처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어요.  


다행스럽게도 긁힌 상처는 깊지 않고 실수한 아이가 사과하고 곧바로 서로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도 제일 친하답니다. 이후엔 물건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놀이는 안 하고 있고요.


아이들이 커가는 성장과정 중에 하나라고 봐주시면 어떨까요. 서로 배려가 필요한 이유나 어떻게 하면 되는 지를 배워가는 과정 말이죠. 이제 겨우 만 5세가 된 아직 아기들이니까요”


“ 경미하다 아니다를 선생님이 판단하십니까? 아이 피부가 찢어져야 그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니까 제대로 가르치라고 이곳에 보낸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가 다쳐서 왔어요. 집에서도 제가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요. 저는 이대로 못 넘어가겠습니다. 상대방 아이야 어리다고 하니 그 아이를 교육한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그건.. 저” 



대부분의 기억에서 남자의 아들과 주변 사람들은 큰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남자는 그런 의견 따위는 극구 무시하고 있었다. 아들을 매우 아껴서 그렇다는 건 자신도 주변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예민한 행동과 요구사항은 아들이 커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더해지면 더해졌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아들의 판단도 틀렸다고 말하는 지경이었다.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얼룩들이 그런 에피소드에 해당했다. 자신의 일을 더 이상 아버지인 자신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들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멍과 연결된 대부분의 기억들은 어린 아들과 연결된 것이 많았지만 몇몇은 특이한 것도 있었다. 벽면에서도 한쪽 구석에 있는 특정 부분에 독특한 색깔의 점 혹은 구멍? 작고 검은 무언가가 포진해 있었다. 다른 얼룩들에 비하면 작아서 어떤 건 직경이 겨우 1cm 남짓한 진한 것이 콕콕 박혀 있었다.


마치 빛이라도 빨아들여 검게 보이는 작은 블랙홀인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던 상혁이 이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고 이유를 불렀지만 그녀는 마침 다른 기억을 보는 중이었다. 


상혁은 이제 자연스럽게 그 점도 기억일 거라는 생각으로 손을 가까이 가져간 순간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상혁의 손을 급박하게 잡아챘다. 


“ 이건 직접 만지면 안 돼” 


주인장 이유는 상혁의 손을 저지하고 장갑 한쪽을 다른 한쪽에 덫씌워서 그 부분에 닿아지도록 했다. 


그 검은 색깔에 닿자마자 장갑의 끝에도 그 검정이 묻어 번지고 있었다. 이유는 잽싸게 덧씌워진 장갑을 빼버렸고 그 이후로 그 장갑은 절반이 넘는 크기가 검게 변해있었다.


곧 검고 작은 구멍에서 기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엄마가 뭐라고 했어? 일찍 들어오라고 했어 안 했어?” 


“ 그렇지만 동현이랑 조금만 더 놀다 온다고 하던 게 재미있어서…” 


“ 누가 엄마한테 말대꾸하래!!!   또 몽둥이로 맞아봐야 알지!” 


“ 악! 으.. 윽!!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

“ 누가 이렇게 옷을 더럽혀오래? 누가?” 


“ 형들이랑 놀다가 보니까. 그렇게..” 


‘ 철썩, 철썩’ 

.


… 


그 검정은 하나의 기억만을 가진 게 아니었다. 시간이 오래되면서 이전의 기억들이 응집되어 있는 건지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나타나서는 지나갔다.


모든 모습에서 아직 어린 남자아이는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아이로서 전혀 잘못한 게 없음에도 그 어머니라는 절대자 앞에서 사소한 사건들이 이토록 심한 구타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건지 상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맞다가 아이의 몸이 부웅 뜨는 것 같은 상황에서 상혁은 더 이상은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아.. 이건 너무 심하잖아’ 


“ 이제 6층으로 내려가자” 


말없이 이 상황을 인내하듯 지켜보던 이유가 처음으로 말했다. 




계단을 타고 6층으로 내려가자 둥글리듯 커다란 바윗덩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바위들은 하나 같이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크기가 모두 제 각각 이었다. 어떤 것은 거대해서 그 공간의 벽면에 병풍처럼 솟아 파노라마를 그리며 펼쳐져 있었다. 흡사 바위와 모래의 사막 같다고 상혁은 생각했다. 


앞서서 내려가던 주인장이 혼자 말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화염복 양철통 때문에 그 말이 무언지 상혁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자 그녀는 헬멧의 마스크를 열어 상혁에게 바위마다 적혀있는 글귀들이 있으면 잘 기억해 두라고 했다. 


“ 아무것도 만지면 안 돼. 그리고 혹시 몰라서 말해두는데. 

  이상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으면.. 알지? 튀어.” 


마치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에 상혁은 자기가 여기서 일을 하기로 하는 게 맞는 건지 다시 고려해 봐야 하나 싶었다. 아직도 얘기해 주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 왜 직원복지가 좋았던 건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런 의뭉스러운 느낌을 뒤로하고 일단은 정찰(?)을 시작했다.


마치 채석장에 채굴된 돌 들처럼 쌓인 돌이 많았다. 질서 없이 뒹굴어지듯 있어 무엇부터 봐야 하는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바위는 상혁이 보이는 곳에 글귀가 턱 하니 새겨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글자가 아랫면이나 바로 옆 바위와 붙어 있는 면에 적혀 있어 볼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다만 몇 개의 힌트를 주는 글들에서 이 사람의 정체성은 이전에 상혁이 분노의 활화산으로 접했던 첫 번째 손님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었다. 




‘ 야 덤벼’ 


‘ 내가 누군지 알아?!’


‘ 내가 이런 사람이다’


‘ 나를 건드리면 누구도 무사하지 못해’


‘ 가만두지 않을 거야’


‘ 모두를 압도하는 건 강력한 힘이다’ 


‘ 내가 그 힘을 가질 거야’ 


‘ 날 건드리지 마’



건조한 사막의 암벽 풍경과 비슷하게 바위들마다 적혀있는 글귀들도 비슷한 것들만 보였다. 사람의 내면 그러니까 자신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이런 상태였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정상적으로 버텨온 것도 대단하게 생각됐다. 상혁은 오히려 이 남자에 대한 연민이 생기려는 마음이 들 참이었다.


정신없이 글귀를 살피며 6층의 벽면에 병풍처럼 커다랗게 펼쳐진 바위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에 상혁은 듣기 위해 마스크를 올리던 찰나 급박한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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