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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25. 2024

세 번째 손님 2 - 바위 사막의 괴물




“ 그러니까 그게 저한테 문제가 있어서 제 아들 사건이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까? ” 


“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손님에게 그 부분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인지필터(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과 달리 손님이 그 상황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말이죠” 


“ 뭐.. 좋습니다. 말을 어렵게 빙빙 돌리듯 이야기해서 이해하긴 어렵군요. 그러면 반대로 물어보지요. 아들이 상대방 아이에게 당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학교 폭력이라고요. 길을 가다가 그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세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제 말에 공감할 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예민해서 그렇게 보인다고 말할 건가요? 참나 이런 곳을 추천해 주다니.. 그 사람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시간을 잡고 온 그는 주인장 이유가 상황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자 처음의 피해자로 보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약점을 찾아서 이제 막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파이터의 모습이었다. 상혁은 벽너머 카페에 앉아 이제 언제든 싸움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제든 문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몸집만 좋은 게 아니라 말 주변까지 좋은 이 남자는 이후로도 마치 주변에 듣고 있는 배심원들이라도 있는 듯 주인장을 앞에 두고 휘휘 둘러보며 설득하듯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 상황인지를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 두 달이 될까 말까 한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와 서로 다투다가 멱살 잡힌 것에 길길이 분노하다가 종국엔 보이지 않는 청중들 앞에서 연민에 호소하듯이 말하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이 남자는 육중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이런 심각하고 억울한 상황에 대한 어떤 종류의 울림 같은 걸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청산유수로 막히지 않고 펼쳐지는 그의 말속에서 자신의 아들의 피해 상황과 상대 아이의 무례함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어서 만약 실제의 배심원들이나 청중이 있었다면 모두 그의 편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 아무래도 이런 상태라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겠네요. 만약 지금 이 사건 말고도 같은 사건들이 왜 매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해서 온 거라면 조용히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던지 아니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


주인장 이유가 단호하게 정리하듯 말하자 남자는 잠시 움찔하더니 쉴 새 없이 하소연하며 움직이던 입을 다물고는 자리에 앉았다.


“ 아마 이번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들이 피해를 본다고 느낀 게.. 아니 피해를 보고 피해자가 됐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던 일들이 계속 이어졌을 겁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라는 곳을 들어간 이후로 줄곳 말이에요” 


다소간의 침묵이 흐른 후 주인장이 달래듯 말을 하자 남자는 잠시 아랫입술을 지긋히 눌러 무언가 나오려 던 것을 다시 입 속으로 꿀꺽 삼키는 것 같은 몸짓을 했다. 부르르 떨듯 몇 차례나 그런 행동을 하더니 간신히 말을 시작했다.


“.. 아들이 매번 어딜 가도 이렇게 당하고 아프고 괴롭힘을 받는 것 같아서 감정을 주최할 수가 없어요.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내 아들을 건드린 애들도 아직 어린아이들이라는 걸 알지만 심하게 열이 받는 데다가 더 화가 나는 건 자신의 아이들을 그렇게 밖에 교육하지 못한 상대방 부모들에게도 꼭지가 돌 것 같아요. 어떻게 애들을 그런 식으로 교육해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공시설에 보낸단 말입니까? 저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입니다만 이런 경우들에는 좀처럼 참을 수가 없어요. 물론 사소한 다툼이야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나와 우리 아이에게 사과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요? 너무 뻔뻔하고 알 수 없는 족속들입니다. 그 아이와 그 애 부모들 모두요.”


“ 일단 충분히 고통스럽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가끔 심각한 학교 폭력이 실제로 발생하곤 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손님 사건들의 경우 우선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외부현상을 해석할 때 자신이 해온 경험을 가지고 해석하죠. 손님이 현상을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봐야 합니다.


이번 경우에도 아이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사소한 다툼이 아버님이 나서면서 커졌다고 했습니다. 아드님도 자신이 잘못한 면도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했고 친구랑 그냥 툭 털듯 잘 지나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상황을 아드님이 아닌 상대방에 분노를 느끼는 건 손님입니다. 마치 아드님을 자기 자신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부모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자기 아들이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 말입니다. 아들이야 초등학생이니 아직 어려서 자신이 부당하게 당한다는 걸 잘 모르니까요. 저라도 제 아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죠. 제가 학교로 또 찾아갈까 봐 자신도 잘못이 있다 정도로 말하고 덮으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아무 문제 없이 학교 잘 다니는 애를 괴롭히는 그런 아이들과 부모들은 학교를 다시는 다니지 못하게 싹을 잘라놔야 해요” 


“… 손님의 어린 시절을 잠시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 그게 중요합니까. 아들에 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 오면 좀 보일 거라고 해서 온 겁니다. 제 옛날이야기나 하자고 온 게 아니고요” 


남자는 별 쓸데없는 걸 질문하는 이 복.덕.방이라는 곳이 점점 더 수상해했다. 자기가 피해자임을 주장해도 좀처럼 잘 수긍해주지 않는 데다가 별로 연관도 없어 보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까지 물어보다니 무능한 곳을 잘못 추천받은 게 틀림없다는 얼굴이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조용한 가운데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유가 그저 기다리는 듯 단호히 있자 남자는 적막감이 답답하다는 듯 티셔츠의 목 부분을 당겨 숨을 한번 크게 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 특별할 게 없었어요. 어린 시절이야 경제적으로 어려줬다지만 그래도 형제들과 부모님과 잘 지냈어요. 뭐 폭력이나 학대가 있었는지 원인을 저에게서 찾으려고 하나 본데.. 그 시절에는 누구나 집에서 한 두 번씩 맞았어요. 부모가 자식 잘되라고 하는 사랑의 매니까요.”


그는 처음에 별 특이한 질문을 한다면서 복덕방 주인을 나무라듯 바라보기도 했지만 곧 몸을 웅크린 채 소파에 기대어 앉더니 연이어 떠오르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상혁은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야기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심을 언제쯤 먹을지 고민이었다. 중간에 끊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유와 상혁이 이 손님의 표층의식 벽면의 멍을 눌렀을 때 보았던 그 이야기들이 손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으.. 악!! 저게 뭐야!!!’


상혁은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주인장이 있는 곳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건지 서늘한 건지 모를 기운이 번개 치듯 전신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이건 마치 자신의 악몽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에 쫓겨 뛸 때와 비슷했다. 만약 이런 걸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면 쫄아서 주저앉아 버렸을게 뻔했다. 

그래도 꿈속에서 비슷하게 달려본 상혁에겐 두 다리가 알아서 움직이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꿈에서와 달리 상혁은 집채만큼 커다란 짐승 같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직후였다.  


“ 내 뒤로 와” 


간신히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도착했을 때 먼저와 서 있던 이유는 무언가를 꺼내 들고 있었다. 상혁은 왠지 믿음직한 그녀 뒤로 계단을 한 개 밟고 올라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쫓아온 그 짐승의 정체를 똑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 크르르~” 


그것은 거대한 검은 표범과 비슷한 무엇이었다. 언젠가 사파리에서 봤던 수사자의 두 배는 돼 보이는 크기다. 게다가 녀석의 표면을 덮고 있는 건 부드러운 털이 아니라 날카로운 철갑 같은 것이 뾰족하게 솟아있었다. 특히 등부분은 모두 그것으로 덮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주인장을 발견하면서부터는 속도를 늦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 내가 신호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

“ 헉.. 헉.. 에..? 혼자요?”


이유가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려보던 상혁은 순간 자신보다 몸도 작은 이 여자가 무엇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달아날 방법을 찾으려면 주변의 뭐라도 던져야 할 판이었다. 


“ 저건 그 손님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졌던 에고야. 설정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하는 거지. 지금 아마 그 손님이 감정적으로 자극받는 어떤 상태에 있는 게 분명해 그래서 우리를 보고도 깨어난 거고.” 


“ 그건 알겠는데요. 지금 그런 걸 설명할 때가 아니라 빨리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 타이밍이야.. 타이밍.. 지금 막 이야기하려고 했어.. 이걸… 던지면.. 지금이야. 달려! ” 


짐승을 노려보고 있던 이유가 7층에서 가장 검은 점을 만졌던 자신의 은색 장갑 한쪽을 흔들어 보이더니 순간 멀리 그것을 던지며 외쳤다. 상혁은 꽁지가 빠져라 달려 7층에 오자마자 뒤따라 올라오던 주인장의 손을 잡고 거의 들어 올리다시피 빼냈다.  


“ 우와~ 잘 달리네. 하하” 

“ 헉헉.. 네?” 


상황과 맞지 않게 여유가 넘치는 그녀를 보자 상혁은 뭔가 자기가 속은 건가 싶어 방금 전 빠져나온 6층을 다시 들여다봤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 속에서 먹잇감을 놓쳐 화가 난 짐승의 그르렁 소리가 들렸다.  


“ 무섭지도 않아요?” 

“ 뭐, 장사 하루이틀 하나. 이런 것도 경험해 봐야 진짜지” 


“ 헐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위험수당도 줘야되는 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7층으로 올라오면 어쩌죠?” 


“ 올라올 수 없어. 존재 방식이 다르거든.. 연기라면 모를까. 다만 이 짐승의 활동이 시작됐다는 건 잠재의식의 주인인 남자손님이 곧 어떤 충돌거리를 발견하거나 만들게 될 거라는 걸 의미해. 활성화되어있는 상태처럼. 좀 더 심도 깊은 접근법을 찾아야겠어” 


“ 에..?” 


순간 놀란 상혁은 주인장을 황당한 채 쳐다봤다. 만약 꿈에서 도망치는 상황을 겪지 않았다면 그 짐승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얼어버렸을 거라 확신하는 상혁이었다. 그런데 더 심도 깊은 방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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