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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25. 2024

세 번째 손님 3 - 감정 블럭



어렸던 그가 기억하는 건 그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맞았다는 거였다. 혼란스러움과 강한 통증.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놀고 들어온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따귀를 심하게 맞았다. 나중에서야 늦어서 라는 이유를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시댁에 화가 나있던 그의 모친은 그를 구타하면서 늘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늦지 말라고 했는데 늦었다 거나, 놀지 말라고 했는데 놀았다 거나, 대들지 말라고 했는데 대들었다는 이유를 대면서 줄기차게 때렸다고 했다. 


게다가 때린 후에도 그것이 부모로서 정당한 체벌이라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 자신이 정말로 잘못해서 맞아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 젊은이가 되고 나서 강인한 몸집과 목소리를 갖고 나서야 어머니의 구타는 사라졌고 대신 그것을 웃으며 지나간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걸 아직도 듣곤 한다고 했다. 여전히 자신의 모친에 대한 속상함은 갖고 있었지만 나름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시간이 지나서 여자친구가 생기고 자신의 어머니처럼 단호하고 강한 여자를 만나 남들보다는 조금은 늦게 낳은 아들을 정성껏 키웠다. 이미 젊은 시절 벌어 놓은 것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 직장보다 자신의 아들을 돌보는 것이 좋았던 그는 모든 육아를 자신이 전담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 손님은 아내로부터도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육아를 전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들이 곧 어릴 적의 자기 자신이었던 거예요.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던 자신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때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죠. 뺨을 맞아 날아갈 만큼의 작은 아이였는데에도 말이에요. 그런 충격적인 사건들이 지금의 손님이 튼튼하고 강인한 체구를 갖도록 만든 이유가 되었어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도록 했던 거예요.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이제 아들이 자신의 자아를 만들고 자유롭게 스스로를 펼치며 살아가는데 손님이 다른 감옥을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 말이 그렇게 됩니까?  아이가 상처 난 게 열받고 속이 상한 건 그럼 허상이란 말입니까..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거 같아서 더 괴롭군요.”  


“ 그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있는 사람에게 어쩌면 지금의 고통은 당연합니다. 잘못된 사랑방식이라고 타박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진짜 어디서 오는지 더욱 살펴봐야 하는 거예요.”


“ 그럼 제 이런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건가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 고통만 있는 현실이 바뀌나요? 전 모르겠습니다. 자꾸 그들이 아니라 제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 지금보다 훨씬 더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드님과의 관계도 지금의 경직된 모습에서 유연해지게 될 거예요. 이 과정을 견디고 지나가면 세상은 그대로여도 마치 새로운 세계로 느껴집니다. 확신할 수 있어요” 


“ 너무 어려운 개념이군요. 제가 변하면 그대로인 세상이 알아서 변한 것처럼 느껴진다니.. 다른 사람들은 제가 잘못됐다고 했어요. 내가 예민하다고. 이곳은 제 두려움을 보라고 하네요. 사람들은 저를 두려워하고 피했지 내 두려움에 대해선 이야기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죠.” 


“ 아드님과 싸운 상대방 아이와 부모들에 대한 분노는 손님이 아직 어렸을 적에 가지고 있던 특히 모친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번 느꼈던 감정을 잠시만 복기해 보아도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마치 아드님 속으로 감정 이입되어 들어가 있지만 실제 아드님의 마음이 아닌 손님의 어릴 적에 느껴야만 했던 감정인 거죠” 


“ 시간이 다 지나서 어릴 적 잊힌 그런 감정을 새삼 느낀다는 건가요? 제 생각엔 눈앞의 상황이 학폭이라 정당하게 화를 내야만 해서 나오는 지금의 분노처럼 느껴지는데요” 


“ 모든 것은 화를 내기에 정당해 보여요. 손님에겐 당장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부분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 터뜨려야만 하는 분노의 감정에 맞도록 생각과 논리가 확대되어 정렬됩니다. 문제는 그걸 자신이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몸과 뇌에서 수행한다는 거예요. 손님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이죠”


“ 허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다 잊고 싶어서 덮어버린 내 어린 시절이 이제 와서 비슷한 상황을 만나기만 하면 그때 못 느꼈던 분노를 현재에 느끼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아들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내가 아들 속으로 빙의라도 하듯한다는 겁니까?” 


“ 어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지금 현재만 존재하는 것 같아도 모두 각자의 누적된 시간층과 추억, 사건들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자신이었던 모습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누적된 층 속에서 현재와 동시에 존재합니다. 


바로 내면의 아이죠.  손님이 어머니로부터 부당한 구타를 당했을 때 그 연약한 어린아이는 현재의 건장한 겉모습 뒤로 사라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손님의 여러 시간 표층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죠. 그 아이가 그때 당연하게 느껴야만 했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그 충격은 그 아이가 에너지의 상태로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망각이라 불리는 현상 덕분에 그 아이를 시간 속에 남겨두고 몸은 성장할 수 있었지만요. 그 아이는 여전히 부당함에 대한 저항, 두려움, 슬픔, 분노, 절망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그것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많은데 누군가는 트라우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 


“ 그렇게 평상시에는 그런 것을 현재의 나는 잊고 지내다가 비슷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보인다 판단되면 그 아이는 자신의 충격을 시간의 겹들을 뚫고 고스란히 현재에 영향을 줍니다. 손님의 경우는 그 트리거가 아들의 사건이나 상황인 거예요. 

아들을 어린 자신으로 동화되어 바라보면 어릴 적 손님의 내면의 아이는 그때 느낀 부모에 대한 분노를 아드님 사건을 통해 분노로서 느끼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당하게 구타당했고 당황스럽고 화가 나며 슬픈지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구조를 갖고 있어요.”


“ 그럼 저는 평생 그 내면의 아이인가 하는.. 그러니까 분노에 찬 상태로 현재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 다행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쉽게 풀릴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선 매우 까다로울 수도 있습니다. 내면의 아이가 갖고 있는 그 에너지를 자유롭게 보내주는 것 혹은 통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손님이 인지할 수만 있다면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말이 조금은 안도감을 주었는지 그동안 반복되는 사건들 마다 본인도 극도의 긴장을 느꼈다며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 상황을 보면 당장 화가 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강하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 저도 아들이 커가면서 어느 정도 저를 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이야기하면 저는 또 답답하기만 합니다.


 제 아들이지만 물러터져서 자신이 피해를 보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아서 자꾸 제 생각을 강요하게 돼요. 그러니 저희 사이도 예전 같지 않고 아들도 저를 힘들어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죠. 그래서 온 겁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들이 저를 점점 피하는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무언가 잘못된 가고 있는 거라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느낌에서 말이죠.


저는 길을 잃었어요.” 


“ 손님은 그래도 스스로의 상황을 인식하고 지금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도 대단한 겁니다. 그 눌렀던 분노들이 언제 어디로 쏟아져 나올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손님의 무의식에서 감정의 에너지 블록을 풀어서 자유롭게 보내주는 것이 필요해요.”


“ 에너지 블록을 보내준다라… 지금으로선 감도 안 잡히는군요”


그 남자 손님은 저녁 9시가 지나서야 돌아갔다. 그 이후로 저녁으로 간단히 먹으려던 샌드위치를 밤이 되어서야 같이 먹으면서도 이유는 생각이 많은지 딱히 말은 하지 않았다. 고담이도 피곤한지 저녁도 안 먹고 잠들어 있었다. 상혁도 내내 말하던 사람에게 이야기를 시킨다는 게 미안해 그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차를 내주는 걸로 이제 좀 쉬라는 말을 대신하기로 했다. 


보통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흥미로울 것 같지만 상혁이 두 달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이유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그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고민과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치 눈앞의 일처럼 그런 내용들이나 이미지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고 게다가 잠을 깊게 잘 수도 없는 상태로 그 사람들의 걱정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이런 일을 주인장 이유는 오래도록 견디며 해왔다는 건가?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연달아 떠오른 질문은 어째서? 계속하고 있는 걸까? 에 대한 것이었다.


특별히 상담료를 받는 것도 아닌 데다가 그저 복덕방에 왔을 때 주고받는 인생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렇다고는 해도 그 예리함과 효과가 달리 무어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이었다. 연이어 떠오르는 질문을 애써 자른 상혁은 궁금증을 안은 채 남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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