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 된 아이와 단 둘이 총 23시간의 긴 여정 끝에 남편이 있는 미국에 도착했다.(한국 내에서 경유 한 번, 미국 내에서 경유 한 번) 남편은 우리보다 반년 먼저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 첫 번째 학기를 끝낸 직후였다.
사실 미국은 내가 단 한 번도 여행지로서도 꿈꿔본 적 없는 나라였다. 각종 뉴스와 매체에서 미국은 ’ 총기의 나라’, ‘마약의 나라’, ‘인종 차별의 나라’, ‘노숙자의 나라’로 묘사된 탓이 컸다. 그런데 내가 그런 나라에서 최소 남편의 박사과정 기간 동안(보통 5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참 재밌지 않은가?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던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나의 인생!
미국에 도착하고 처음 느낀 것은 ‘와, 말 정말 빠르다!’였다. 학창 시절 영어는 국어 다음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다. 단어 외우고, 문법 외우고, 지문 읽고, 문제 풀고... 그 결과 수능 영어 1등급, 필요한 곳은 없지만 재미 삼아 쳤던 토익시험에서 900점. 난 내 영어가 평균 이상이라 자부했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순간 지금껏 한국에서 공부했던 영어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실생활에서 ‘쓸 데가 없는’ 영어 공부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