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 어디 갔나요?

by 작가 다영

남편이 미국 대학원 여러 곳에 합격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넓은 미국 땅에 위치한 대학교들. 주방 식탁에 공책을 펴고, 각 대학 이름 옆에 안전, 지도 교수, 생활비, 학교의 인지도 등을 적어 내려갔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웃고 떠들며 점수를 매기는 동안, 우리가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대학교로 우리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의사결정할 때 이 방법은 단연 최고다. 늘 써먹는 방법이고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


다음 해 1월, 남편은 박사과정 첫 학기를 위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대학교가 위치한 곳은 겨울이 아주 혹독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어린아이와 함께 첫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엔 좋지 않을 거란 우리의 판단이었다. ‘21개월 동안 군대도 가 있었는데.. 4개월 반 떨어져 있는 게 뭐라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남편과 미국-한국 장거리로 떨어져 지낸 4개월 반은 나에게도 정말 힘들었던 기간이었다. 매일 밤 아이를 재우고 가지는 우리만의 야식타임, 커피 한 잔 하며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우리의 깊은 대화, 웃긴 춤을 추며 깔깔거리던 순간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떨어져 지낸 기간 동안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첫 학기가 끝난 5월, 봄내음이 만연할 무렵 나는 21개월 된 아이와 함께 총 23시간의 긴 여정 끝에 남편이 있는 미국에 도착했다.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온 남편의 모습을 보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신혼 기간 동안 살이 포동포동 올랐던 우리 남편이었는데, 우리 앞에 웃으며 서 있는 저 남자는 여느 K-POP 아이돌만큼이나 비쩍 말라있었다. 그동안 영상통화로 얼굴만 보다 보니 살이 이 정도로 빠진 줄 모르고 있었던 거다. ’다, 당신, 누구야? 왜 이렇게 말랐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남편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나와 아이를 안아주었다.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내 남편을 먹이는 일. 열심히 장보고 요리해서 남편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줘야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던 걸까.


사실 미국은 내가 단 한 번도 여행지로서도 꿈꿔본 적 없는 나라였다. 각종 뉴스와 매체에서 ’ 총기의 나라’, ‘마약의 나라’, ‘인종 차별의 나라’, ‘노숙자의 나라’로 묘사된 탓이 컸다. 미국은 내가 가기엔 너무 위험해 보였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나라에서 최소 남편의 박사과정 기간 동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참 재밌지 않은가?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던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나의 인생!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인간이기에,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재미난 인생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인생 제2막의 시작점에 섰다. 낯선 땅이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우리는 한 팀이니까, 서로에게 의지하며 잘 살아가보는 거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늘 알아야 한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오늘 웃을 수 있고, 용기 낼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거다. 유학을 결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지금 이 미국 땅에서 살아남기까지 서로에게 가장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우리 두 사람. 서로에게 그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남편은 나에게 믿음을 주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믿었기에 우리 인생에 있어서 큰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다. 남편 덕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미국 땅에서 씩씩하게 한 번 살아본다. 표현에 서툰 나지만 더 노력해서 그 마음을 더욱 자주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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