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미국 사람들 말이 얼마나 빨랐냐면,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아파 소아과에 가야 했던 날이 있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아픈 아이를 소아과에 데리고 간다고 바로 진료를 받기가 어렵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아과 번호를 찾아 소아과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내내 어찌나 진땀이 나는지.. 딸의 기본 정보를 알려주고 예약 날짜를 잡는 간단한 통화였음에도 “Sorry, can you say that again?", "Sorry, can you slow down a little bit?"을 몇 번이나 외치며 힘겹게 예약을 마쳤다. 그렇게 처음 접한 미국의 소아과는 예상보다 정말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정말 친절했다.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모두 활기차고 상냥했다. “뭐야, 괜히 긴장했네.” 하는 순간 의사 선생님께서 우다다다다다 내 아이의 증상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와.... 그 말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중간중간 겨우 들리는 아는 단어를 종합해서 대충 의미를 파악했고, 그렇게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첫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허탈하고, 어찌나 내가 작게 느껴지던지.. ‘말도 안 통하는 이 나라에서 내 아이를 키우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집에 돌아와 휴대폰 녹음기를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의 중요한 말을 놓칠까 봐 혹시 몰라서 녹음 기능을 켜 놓았던 것이다. 다시 녹음 내용을 듣는데도 이런.. 다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내 영어 목표는 “우리 딸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 알아듣기”가 되었다.
(미국 병원에는 통역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영어가 어려운 분들은 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