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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Aug 01. 2022

무비토크 #3.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코미디, 일본, 2006, 감독: 미키 사토시


나의 20대. 한참 우에노 주리와 아오이 유우가 일본 영화계의 간판스타로 등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을 시절이다. 특히 당시 한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우에노 주리에게 푹 빠져 있어서 그녀의 필모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당시 보았던 일본 영화와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내게 어떤 특이한 감성의 자국을 남겼는데

특히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라는 영화는 개봉 당시 20대의 나이였던 내게도

어쩌면 살짝 병맛스럽고, 말도 안 되는 소재를 가지고도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내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 여실히 묻어나는 영화였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추억의 싸이월드에 남긴 간단한 한 줄 평이 그 당시의 내 감상을 대변한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재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인 거야? 일본은?"




오랜만에 방학이 되어 OTT를 통해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생활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선택하게 되는 예능이나 드라마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편안한 것들이 좋아진다. 아니면 지금 그냥 내 기분이 그런 상태인가?

평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스릴러나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시사교양 프로를 즐겨 보는 편인데 사람도 취향은 변하나 보다. 요즘의 내 기분은 평범과 힐링, 느림의 미학을 전하는 잔잔한 것들이 좋아진다. 듣는 음악마저도 변하고 있다.



1. 평범함과 촌스러움의 미학


우리의 주인공 스즈메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는 버라이어티 한 나의 일상과는 정 반대로 살벌하리만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23세 주부이다. 23세 주부라는 설정도 특이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스커트, 블라우스,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초록색 가디건과 북한에서 건너온 것만 같은 애매한 가르마의 반 묶음 헤어스타일마저 평범하고 촌스러움을 가득가득 담고 있다. 우에노 쥬리의 다른 필모에서 그녀의 다양하고 세련된 패션 스타일을 보았기 때문에 '와! 이건 심한데?'라고 생각할 정도의 착장과 의상이었지만 그녀의 귀여운 마스크로 어느 정도 중화시켰다고 본다.


묘하게도

영화 자체에 묻어있는 촌스럽고 병맛 같은 설정들은 오히려 더욱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길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패션뿐만 아니라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과 장소 마저도, 하물며 그녀가 기르는 반려 동물이 거북이라는 점 또한 평범의 극치였다. 과연 이런 배경으로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하다.




2. 스파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삶에 난데없이 불어 닥친 사건이다. 말도 안 되는 코딱지만 한 전단지에 스파이 모집이라는 글을 읽고 그녀는 바로 그녀의 특장점인 무시무시한 평범함을 무기로 스파이가 된다.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 거 아니야? "라는 극 중 스파이의 면접 당시 대사가 있다.

평범함이 비범함이 된다. 평범함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포인트가 신선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특별해지기를 원한다. 어릴 적 나는 누구보다도 그런 특별함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다. 내게 남에게는 없는 특별한 천재적인 재능이 있기를 바랐고, 우리 집이 재벌처럼 돈이 많기를 바랐으며, 주변 친구들과 다른 학창 생활을 보내고 싶어서 미국 유학을 조르기도 했다. 주목받는 것에 대한 갈망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는 칭찬과 시선에 굉장히 몰두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당시 오은영 박사님을 만났다면 아마 나는 상당히 타인의 시선에 강박을 갖는 내면이 텅 빈 아이였다는 진단을 받았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타인의 시선은 내가 이런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나의 주된 삶의 원동력이었고 그 순기능의 결과에 대해 감사한 생각이 든다.


중년이 된 지금은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장기하의 "별 일 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런 삶의 소중함.

이런 별일 없음의 가치.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평범하고 촌스럽지만 평범함의 비범함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닐까?




3. 눈에 띄는 인물



예전에 봤을 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보고는 확실히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다. 바로  스파이 부부  아디다스 운동복을 매일 입고 다니는 단발머리 부인. 장은 평범하지만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딕션은 호락호락할 것만 같지 않은 비범한 인상을 준다.

심지어 이렇게 어려 보이는데 62년생이다. 한국 나이 올해 61세????

믿을 수 없다. 그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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