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영웅들(16)

3장: 일본의 패망과 광복의 도래

by 이문웅

1. 일본 패망의 조짐과 국내외 반응

1940년대 초반, 일본 제국의 패망은 점차 가시화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연합군에게 여러 차례 패배를 당하고 있었고, 특히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대패는 일본 제국의 전세를 완전히 뒤바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일본은 남은 자원과 병력을 총동원해 저항했지만, 연합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본의 전쟁 패배는 조선 내외의 독립운동 세력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주었고, 이들은 곧 다가올 해방을 대비한 준비를 본격화했다.

특히 1943년 열린 카이로 회담은 조선 독립운동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 회담에서 연합국은 "조선은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이라는 결의를 내놓았으며, 이는 독립운동 세력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 내부에서는 일본의 폭압적인 통치가 계속되었고, 조선인들은 혹독한 수탈과 전쟁 동원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국내 독립운동은 일제의 엄격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제한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지하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민중을 결집시키며 지속적인 저항을 이어갔다.

반면 해외에서는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보다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 독립 동맹을 비롯한 여러 세력들은 해방 후의 조선을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일본 패망 후 권력 공백을 채우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2. 조선 독립 동맹의 활동과 건국 준비

조선 독립 동맹은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결성된 조직으로, 조선의 해방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김두봉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 단체는 좌익 성향을 띠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이후 조선을 사회주의적 질서로 재편하기 위해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벌였다.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인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 속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이를 통해 그 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이 시기 독립운동의 중요한 특징은 단순한 독립을 넘어서 해방 후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한 것이다. 조선 독립 동맹은 해방 이후 계급 해방과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명확한 목표로 삼았고,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타도뿐만 아니라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는 혁명을 꿈꾸었다. 이는 단순한 해방을 넘어서, 조선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장 투쟁과 조선 의용군의 역할

조선 독립 동맹의 무장 조직인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과 협력하여 일본군에 맞섰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내에서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해 경험을 쌓았으며,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자 더욱 적극적으로 군사적, 정치적 준비를 강화했다. 특히 이들은 해방 후에 조선에서 사회주의적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군사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 의용군은 해방 후 권력 공백 상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를 이어갔으며, 이는 이후 북한에서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무장 투쟁과 정치적 준비는 조선 독립 동맹이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 건국운동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독립운동에서 건국운동으로의 전환

이 시점에서 독립운동은 단순히 나라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해방 후 새로운 조선을 이끌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조선 독립 동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각각 사회주의 국가민족주의 국가를 구상하며 치열한 준비를 이어갔다.

조선 독립 동맹은 해방 후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했고, 노동자와 농민을 주요 지지층으로 삼아 계급 해방사회적 평등을 추구했다. 반면 임시정부는 김구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해방 이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이와 같이, 독립운동의 목표는 이제 단순한 해방을 넘어 새로운 국가 건설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각 세력은 저마다의 이념적 구상과 목표를 가지고 건국운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3.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 준비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대 들어서며 해방 후 민족 자주적 국가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임시정부는 충칭을 중심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했으며, 해방 후 조선에서 정통 정부로 인정받기 위한 군사적, 정치적 준비를 가속화했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는 건국 강령을 발표하며, 해방 후 조선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김구는 연합국과의 외교적 협력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조선의 독립을 확고히 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특히 미국과의 외교에서 이승만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조선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하기 위한 외교적 활동을 이어갔다.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활동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통해 연합국과의 군사적 협력도 시도했으며, 일본 패망 이후 광복군이 조선에서 주요 역할을 하게끔 준비했다. 특히 연합국과 함께 일본 본토 침투 작전을 계획했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패망으로 인해 이 작전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군은 독립 후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가지는 데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했다.

4. 독립과 건국의 병행

1945년 일본의 패망이 임박하면서, 조선의 독립운동 세력은 독립을 넘어서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더 큰 과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립운동은 이제 건국운동으로 변모했고, 해방 이후 누가 권력을 쥐고 조선을 재건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선 독립 동맹과 조선 의용군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활동했고,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은 민족주의적 민주국가 건설을 준비했다. 이념적,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해방 이후 조선은 결국 두 개의 국가,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남한)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는 해방 이전부터 이어져 온 독립운동의 결과물이며, 각각의 세력이 꿈꾸던 국가 비전이 충돌한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넘어선 건국운동으로 발전했으며, 해방 후 남북한으로 분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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