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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웅 Oct 17. 2024

가을 숲에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무렵 나무에게 말했다. 한 손으로 나무의 볼을 쓰다듬으며 참 고생했다. 그리곤 한참을 바라봤던 그 나무가 이제 낙엽을 투두둑 떨어뜨리고 있다. 오늘은 넌 겨울이 오는데 왜 옷이라도 두둑이 입지 그래? 나무는 말없이 바람에 가지를 흔들어 준다.


그렇게 뜨겁던 여름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고 사람들 기억 속에 몇 장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텐데 숲은 여름 내 그늘을 만들어주고 쉼터를 내어주던 그 숲은 나뭇잎만 색을 바꾼 채 거기에 서있다.


언제부턴가 공원에도 아이들을 보기가 힘들다. 사라진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른으로 사라졌고 다시 아이들은 공원에 오질 않았다. 여름날 우린 밤늦도록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가로등이 훤하게 골목을 밝힐 때까지 우린 놀았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그때는 공원의 나무가 아니라 뒷동산의 나무였고 우린 그 가을 나무들과 무척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어느 날은 나무의 한쪽 팔을 잘라 칼을 만들어 칼싸움을 했고 어느 날은 칡덩굴을 잇고 잇고 또 이어서 타잔 놀이를 했다. 그리고 우리 한 달을 친구들과 함께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가을 숲은 그 빛깔이 다르다. 과학적인 이유 말고 여름 내내 피하기만 했던 햇살이 가을엔 눈을 찡그리면서도 마주하니 그 빛이 다르게 느껴진다.

사실 모든 시간은 겨울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색이 달라 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저녁이 올 때쯤 가을 숲은 가을벌레 소리로 더 운치가 있다. 쓰르르르 쓰르르르 가을의 동요들이 생각난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면 단풍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여기까지가 한계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다른 노래를 떠올린다.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있다. 늙음의 징조다. 혼자 씽긋 웃는 웃음도 가을엔 재밌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좀 더 가을을 느끼려 일부러 동네를 더 크게 돌아 돌아서 간다.


이 시간이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알면서도 그렇게 보내야만 하는 가을!


이제 저물어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을을 맞는다. 잘 익어가야지. 꼭 맛있는 과일은 아니더라도 사람을 위해 뭔가 남기는 가을을 맞이해야지. 라며 나를 채근한다.


올 가을엔 꼭 행복하길 기도한다.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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