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수의 전처는 사실 외국인이었다. 그는 43살이 되서야 베트남으로 국제결혼 프로그램을 통해 갔었고 그는 쯔엉이라는 스무 두살의 처녀를 아내로 데리고 왔었다. 하지만 이듬 해 시장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그의 아내는 사라져 버렸다. 흥신소를 통해 수소문해서 찾았지만 이미 집사람은 한국에 와있던 베트남 애인과 동거를 하며 애까지 낳은 상태였다.
칠수는 2년을 거의 술과 한숨으로 보냈다. 그 당시 완수 역시 전처의 암투병으로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기때문에 서로 친구의 아픔을 함께할 수 없었다.
칠수가 정신을 차린 것은 완수 처가 죽었을 때였다. 그 날도 칠수는 일찍부터 소주에 막걸리까지 퍼 마시고 있었다.
완수에게 전화가 왔고 칠수는 한참을 아무말 없이 술만 더 마시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빈소로 갔다. 그리곤 말없이 빈소앞에 앉아 있는 완수 옆에 앉았다.
밥을 좀 먹었냐? 칠수가 말했다.
옆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 아.. 이눔아.,작작 좀 마셔. 그러다 너도 가겄다. 이..." 그리곤 칠수의 손을 잡고 밥상에 앉히고는 자신이 직접 이것 저것을 차려와 놔준다.
그리고 육개장에 숟가락을 뜯어서 넣어주고는 "어여 해장 혀..."
이른 아침이라서 장례식장에는 출상하는 빈소가 부산했지만 완수네 빈소는 조용했다.
칠수는 육개장 그릇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고는 이내 운다.
소리를 삼키면서 운다. 울음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소주를 한병 딴다. 소주잔에 붓는 칠수의 손이 떤다. 그리고 연거퍼 마시고 따르고 마시고 따르다 그냥 병을 입에 댄 채 마신다.
완수도 소주 한 병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칠수가 말했다. "그려 산 사람은 살자...우리 살자. 완수야!"
완수가 말없이 칠수를 바랃보며 말한다."미친 눔, 그라믄 산 사람이 살지...죽은 사람이 사나! "
칠수는 갑자기 그 말이 뭔 뜻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완수가 말했다. "너도 인자 쯔엉 찾아 댕기는거 인자 그만 혀. 니가 그냥 놔줘. 월매나 니가 싫으믄 그랗고로 떠났겄냐?"
갑자기 칠수는 그 말이 위로인지 욕인지 헤깔렸다.
"시방 그말이 위론겨?"
완수는 잠깐 당황했지만 뻔뻔하게 "그라믄 친구헌티 위로를 허지 욕을 헐까? 원 참"
칠수가 말했다. "그려...근디. 너는 그라지 않으니께 허는 말이여..이이"
잠시 후 동네사람들과 완수 친척, 지인들이 문상을 왔고 이틀 내내 빈소는 외롭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 동창들과 스마트팜 동호인들이 꽤나 많이 찾아주었던 것이다.
칠수는 장례기간 동안 다시 열심히 살기로 마음 먹었고 마지막 납골당까지 완수와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서로 새롭게 한 번 열심히 살아보자고 결심을 했다.
칠수는 그렇게 결혼의 상처가 있었고 정희를 향한 마음도 사실 진심이었지만 끝내 그의 의리와 양심은 그의 열정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결국 칠수의 사랑은 정희와 이어지지는 않았다.
칠수가 추수가 끝난 논에 겨우내 비닐하우스라도 설치해서 뭔가 해볼 생각으로 이리 저리 다니고 있을 때 완수가 찾아왔다.
칠수야? 우리 여행 다닐까?
이눔아 여행이야 그냥 가면 되는거지 다니는건 또 뭐여?
완수가 말했다. "아..이눔 또 무식허게 이러네. 요즘은 캠핑카가 대세여. 대세. "
뮌카? 캠핌카? 그게 뭔디? 칠수가 말했다.
이잉 고것이 뮈냐면 말여 찬디...차 안이 아파트여.
칠수가 완수를 보면서 말한다.
"이눔이 또 미친 놈이 되야 가는구먼"
그러면서 칠수는 몰래 네이버에 캠핑카를 친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워매...워매 이런 것이구먼..."
이잉...대충 알아는 들었구먼. 근디 뭐 어떡해 하자는겨?
이잉 내가 캠핑카를 샀구먼.
칠수가 놀라면 말했다. 이잉..니가 뭔 돈으로?
완수가 말했다. "아따 왜그랴? 지난 번에 딸기 판돈허고 오이 판돈 뭐 조금씩 계속 모아놨었지..."
칠수가 장하다는 말과 함께 완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참 고놈 기특허단 말여..."
그래서 고다음은 워찌키 되능겨?
"잉 차가 도착하믄 나허고 니허고 정희씨 셋이서 우리 나라 일주 허능겨"
칠수는 갑자기 논둑에서 자기 논으로 뛰어가면서 "고게 진짜여?" 느들 둘만 소꿉놀이 헐 거 아니였어?
완수가 큰소리로 말했다."야 이눔아! 나가 니 버리고 워찌꼬롬 핀하것냐? 이눔아?"
칠수는 완수의 마음에 감동해서 논을 계속 뛰어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세 친구의 캠핑은 바로 완수의 캠핑카가 도착하면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