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불빛들이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진아의 마음속에는 그런 화려함이 전혀 닿지 않았다.
바람이 차갑게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때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 속에서 진아는 그저 혼자였다.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길을 따라 걷다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대화들이 진아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왜 이렇게 혼자라는 게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기분이었다.
진아는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했지만, 그 어떤 물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쁨이라곤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 다니는 기분이었다. 상점들을 들러보았지만, 뭔가를 사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진아는 그저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움이 커지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해도, 진아에게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녀는 그저 또 한 번의 혼자 보내는 날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어쩌면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진아는 길 한편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노숙자 한 명을 보았다. 그의 옷은 닳고 해져 있었고, 얼굴은 지쳐 보였다. 주위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짐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겨울 추위에 움츠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겨울의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진아도 한 번은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그때, 노숙자 옆에 놓인 낡고 더러운 베개가 유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배게는 흙먼지에 묻혀 있었고, 얼룩이 지고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아는 그 베개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냥 지나쳐야지 했지만,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 베개는 아마도 노숙자가 밤마다 베고 있었을 베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베개는 분명 그동안 많은 고통과 아픔을 품고 있었을 거라고 진아는 직감했다. 그 베개를 보자마자, 갑자기 진아는 마음이 아팠다. 그 베개는 단순히 낡고 더러웠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시간과 기억들이 진아의 마음을 울렸다. 그 고통의 흔적들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이 새겨졌을 베개였을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꺼냈다. 30만 원. 그 돈은 진아가 힘들게 아껴 모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어차피 나중에 또 벌겠지. 이 정도는 그냥 나누는 게 나을 거야.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일렁였다.
결국 진아는 그 돈을 노숙자에게 건네기로 결심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현금을 꺼내 그에게 다가갔다.
"이거, 필요한 거 같아서… 받으세요." 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노숙자는 처음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유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이 베개 가져가실래요? 괜찮으시면…" 노숙자의 말에 진아는 잠시 멈칫했다.
그 베개는 너무 낡고 더러워 보였지만, 어쩐지 그 베개가 지나온 세월과 누군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베개가, 그동안 누군가의 눈물과 피, 고통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 괜찮습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그 베개를 건네받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라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진아는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걸었다. 그 베개가 마음에 계속 남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다. 어쨌든, 이 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 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걸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진아는 친구들과 함께 예정된 파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뭔가 불안했다. "파트너 없으면 안 된다고?" 친구들은 진아에게 파티에 가려면 커플로 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아를 괴롭혔다. 이번에도 혼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그녀는 계속해서 고민에 빠졌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중요했지만, 결국 혼자서 이 자리를 지키는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금 찝찝한 기분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날 밤, 진아는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그 노숙자 옆에 놓인 낡은 베개를 베고 있었다. 그 배게는 세상 그 어떤 베개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것은 마치 그녀를 안아주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배게 옆에는 누군가가 함께 자고 있었다. 그 남자는 진아가 꿈속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남자의 존재는 진아에게 이상하게도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순간, 진아는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행복했다.
그러나 진아는 깜짝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다. 시간은 이미 아침이 되어 있었다. 잠에서 깬 그녀는 그 따뜻하고 편안했던 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꿈은 뭐지? 꿈속의 남자와 함께했던 그 포근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꿈이었지만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는 생각에 아침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