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나는 분명히 살아냈고,
인생은 그 한가운데 있다.
돌아보면
청춘은 추억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어딘가에 남겨진 그림처럼 느껴진다.
청춘을 떠올릴 때면,
그 시절의 나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감정의 밀도다.
조급함, 열정, 질투, 기대, 미련, 상처—
어느 하나도 흐릿하지 않았다.
청춘은 감정이 날것으로 존재하는 시기다.
한 번의 말, 한 통의 문자, 순간의 눈빛이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고 믿던 시절.
그 시절의 감정은 과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감정들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지금은 무엇을 봐도 놀라지 않고,
누구의 말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건 안정일까, 무감각일까.
혹시,
내가 너무 '안전한 감정'만을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청춘은 위험했고,
불안했고,
많이 틀렸고,
무모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모든 것을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추억이 된다.
그래서 청춘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내가 가장 나답게 실패했던 시절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때의 실패를 기억하고,
그때의 상처를 되새기며,
그때 품었던 질문들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그 때 그 질문들이
지금의 나를 키우는데
씨앗이었다는 것을 안다.
청춘은 ‘시간적 순간’이 아니라
‘존재적 상태’
시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록 상태,
존재 전체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실존적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야말로
지금의 나로선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절실함이었다.
나는 그 청춘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나는 어설펐고,
어리석었고,
무례했고,
이기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오류 속에서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아내는 관성’을 배웠다.
청춘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냐?"
"왜 이 길을 선택했냐?"
"진짜 원하는 게 뭐냐?"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나는 수많은 갈래 길을 통과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질문에 여전히 완전한 답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더 이상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청춘이 남긴 유산이다.
질문하는 태도,
흔들리는 법,
때로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기억.
그것들은 지금의 내 삶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청춘은 어디로 갔는가.
흔적은 흐려졌고,
에너지는 잦아들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지워야 할 무엇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과정으로 남기고 싶다.
청춘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한 시절로서 여전히 살아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다시 오지는 않지만,
나를 떠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