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1일
강남역, 정확하게는 강남역과 신논현역의 중간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 한창 회사 일로 바쁠 때는 강남역을 시작으로 역삼역, 선릉역, 삼성역 등에서 약속이 자주 잡혔는데, 일이 끝나고 시간이 좀 남을 때나 시간이 남진 않지만 머리를 좀 식히고 싶을 때는 방앗간을 향하는 참새 마냥 이 알라딘 중고서점을 향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신논현역에 ‘교보문고’ 강남점이 있어 훨씬 쾌적하게 더 다양한 책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중고 책방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그립기도 했고-사실 기업 서점의 분위기가 좀 더 많다- 뜻 밖에 좋은 책을 만날지 모른다는 ‘오늘의 운세 테스트’ 겸 해서 비좁은 계단을 통과해 지하에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운터가 보이고, 카운터를 등진 채 바라보이는 벽까지 걸어간 후 왼쪽으로 돌아서면 국내외 순문학 작품들-주로 소설들- 코너에 닿게 된다. 한때 그 위상이 대단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비롯해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데, 나는 이 코너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출판계의 유행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세계문학전집 유행이다. 기억이 맞다면 ‘민음사’가 처음 유행을 선도하였는데, 차차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자기 브랜드의 세계문학전집을 내게 되어 전체적으로 보면 고전부터 현대문학까지 아주 다채로운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훌륭한 작가와 작품도 알게 되고, 같은 책에 대한 번역도 달라 선택의 폭도 넓어져서 고맙긴 한데 가끔 ‘저 출판사들 괜찮을 걸까’ 하는 걱정도 들 때가 있다. 책은 읽는 사람들만 읽는데 이 많은 책들을 다 사서 읽을 수도 없고, 저 책들 중 잘 팔리는 것보다 안 팔리는 게 더 많을 텐데 수지가 맞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책이라는 물건은 다른 상품과는 구별되는 책만의 가치가 담겨 있으니 단순히 수지타산만 따지는 건 속물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책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먹고살 만은 해야 계속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과 약간의 존경심에서 오는 걱정인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출판사들 가운데서도 유독 잘 안 팔릴 것 같은 책들만 골라서 만들어 나의 걱정을-애정을-더 많이 사는 곳을 몇 군데 알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문학과지성사’이다. 그런 책들만 만들며 거의 내 나이에 비견될 기간을 버텨온 곳으로, 여기서도 ‘대산세계문학총서’라 해서 세계문학작품들을 시리즈로 출판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책 디자인은 다른 출판사에 비하여 좀 특이한데, 겉표지가 그냥 하얗다. 과장이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그냥 다 하얗다. 책의 제목과 저자, 역자, 출판사 이름이 찍혀 있고 강조를 위해 약간의 색을 지닌 줄이 그어져 있긴 하지만 그저 무심하게 하얀 책 표지를 가지고 있다. 조금 더 보다 보면 이게 또 이 출판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겉표지만 봐도 이 책은 잘 안 팔릴 거야 하는 심증이 강하게 온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내 손을 끌어당긴 문학과지성사의 책이 한 권 그 알라딘 서점에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즐겨 찾는 이들이 서점에 가면 간혹 하는 경험 중에 하나가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책에 끌려 그냥 사게 되는 일인데, 나에게 그때가 바로 그날이었고 그 책이었던 것이다. 그저 ‘문학과지성사 책이니 내용은 좋겠지만,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당장에 읽고 있던 책들이 좀 있다 보니 바로 읽어보지는 않았고, 몇 년이 지난 2021 년이 되어서야 펴보기 시작했는데 읽어가면서 채 반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온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 책은 이미 고전의 자리에 오른 책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다.
아주아주 오래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이 마을의 어린 소년들이 술탄의 노예가 되기 위해 끌려갔는데, 세월이 지난 후 그중 한 명이 술탄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고향을 위해 절대 무너지지 않을 다리를 강 위에 짓고, 이제 그 다리는 고향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어 다리를 지은 사람의 어떤 소망을 이루어주지만, 또 세월이 지나면서 그 다리가 없었다면 겪지 않고 비켜갔을지도 모를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작가는 그 다리가 되어 ‘전지적 다리의 시점’으로 그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나가는, 400 년에 걸쳐 피고 지는 그곳 사람들을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나가는데, 상당히 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이면서 거대한 감동의 밀물이 되어 마음속을 채우고 넘쳐흐른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다리는 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결국 무너지며 그렇게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을 짧게 요약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 400 년이 넘어가는 데에다, 연작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 속에서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읽다 보면 여러 편의 소설을 한 번에 읽는 기분도 든다. 결국 다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처럼,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처럼, 작가 안드리치가 나고 자란 고향과 조국에 대한 넘치는 연민과 사랑이 어느 사연 많은 다리를 통해 펼쳐지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지역-구 유고슬라비아-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았더니, 소설에 담긴 시대 -1차 대전 즈음에 소설은 끝난다- 이후에도 작가 ‘안드리치’의 조국은 하루도 평화롭지 못했고, 20 세기가 끝나기 전에 있었던 엄청난 역사의 격동 속에서 결국 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드리나강은 나라가 사라진 지금도 400 년 전 그때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고, 검색해 보면 소설 속 그 다리도 다시 복원하여 말끔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조국을 잃고, 국적도 잃은 작가에게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다만, 작가가 조국이 분해되는 비극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아주 조그만 위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