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정부 : 참여정부
X세대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은 1990년대가 대부분이지만, 그 뒤 2002년에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낸 결실은 X세대의 정체성이 현실에서 증명해 보인 한 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X세대는 기성세대가 우려했듯 대한민국의 이단아가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주도세력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02년이 만들어낸 결실 첫 번째는 광장이 모든 국민의 품으로 와서 되살아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광장의 에너지를 국민 가슴 깊이 마음껏 충전했다는 것이다. 당시 X세대는 그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최선봉에 있었다. 그해 여름 월드컵의 거리응원에서 모아진 에너지는 11월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한 촛불집회로 옮겨갔고, 12월에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2002년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크고 실한 열매가 열리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X세대가 모두 성인이 되고 나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X세대에 끼친 영향보다는 X세대가 그의 당선에 견인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당시 X세대의 투표권은 각자 한 장씩이었지만, 그들이 행사한 투표권은 한 장이 아니었다. 부모와 지인들을 설득하고, 선거 당일 투표 마감 시간까지 전화를 돌리고 또 돌렸다. X세대는 그를 왜 그토록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었을까?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자.
1987년 노무현은 부산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부산의 6월 항쟁을 최전선에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정치인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그의 정치역정과 인생을 통틀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특권과 반칙 특히 권위주의에 맞서 절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소신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회유와 협박이 와도 정도의 길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된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X세대는 노무현키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을 알았건 몰랐건 X세대는 노무현이 걸었던 길을 따라갔고, X세대가 투표권이 생기자 권위주의와 가장 반대편에 있던 정치인인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정형편으로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권위주의 세력들은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이상한 탈을 쓰고 연극을 한답시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일류대학 출신들은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 꼬투리 잡은 언론은 고졸 출신의 못 살고 못 배운 대통령이 천박하다며 기사를 실어 나르기 바빴다. 하지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곧 권위주의를 이 땅에서 뿌리 뽑는 것이었고, 특권층이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돈 없고, 학력이 좀 부족해도 이 나라의 주권자이고 국민임을 노무현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2002년 당시의 20·30세대는 노무현 같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기득권과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득권자들의 최전방에서 그는 총알받이가 되어주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당선된 뒤 한 첫 대정부질문에서 그가 한 발언을 간추려본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5공화국 이래 지금까지 노동자가 기업주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항거하거나 기업 또는 공권력의 탄압에 항거해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정권의 도덕성을 규탄하거나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또는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부르짖으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청년 학생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같은 기간 농촌에서 소 값 피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하며 자살한 농민은 몇 명입니까?
산동네 달동네에서 철거에 항거하다가 무너지는 집 더미에 깔려 죽거나 자살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경쟁에서 뒤떨어지거나 경쟁의 부담이 과중해서 자살한 학생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이 같은 가슴 아픈 일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는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어떤 노력을 해 왔습니까? ········
지난 7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5세 된 소년 근로자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직업병에 대비한 의료 체계의 미비, 수은중독임이 밝혀진 이후 회사의 비정한 처사와 노동 행정 관청의 태만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또래의 제 자식 놈은 아직 공부조차 힘이 들어서 온갖 투정이나 부리고 응석이나 부리고 있는 철부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 소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나이에 멀리 서산에서 서울까지 부모 슬하를 떠나온 것만 해도 애처로운 일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귀중한 생명이 좀먹어 가는 그 위태로운 작업장에 방치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한 책임은 결국, 무능한 그의 부모만이 져야 되는 것입니까?
그 며칠 전에는 열네 살 먹은 어린 소년이 하루 11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견디다 못해 자기가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지른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의원 여러분, 가만히 앉아 계셔도 11시간, 다리가 꼬이고 허리가 아프지요?
과연 그 철부지를 잡아다 방화죄로 처벌을 하고 나면 그만입니까? ···········”
그런 그는 특권과 반칙 그리고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한발 한발 뚜벅뚜벅 내디뎠다. 그런 그를 알아봐 준 것은 거물급 정치지도자가 아닌 일반 국민이었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라는 첫 정치인 팬클럽을 만들었고, 아무런 권력도 연줄도 없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 중심에도 X세대가 있었다.
노무현의 아들과 딸도 X세대이다. 그는 내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군사독재 정권과 싸워 자신이 감옥에 갈 결심을 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2001년 12월 10일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 및 후원회 연설에서 한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이 연설은 곧 그의 제16대 대통령 출마 선언이기도 했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 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비리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이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는 평생을 권위주의와 맞서 싸웠다. 권위주의 세력은 자기들 앞에 그를 무릎 꿇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무릎 꿇지 않고 죽음으로써 저항했다.
그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도, 그를 끝까지 지켜내려고 한 사람도 그리고 그가 떠난 뒤 그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려 하는 사람도 X세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몸을 던지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숙제를 남기며 떠났다. 권위주의에 맞서 굴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고 말하며 떠난 것이다.
- 노무현정부 주요 사건
2003.01 SBS드라마, ‘올인’ 첫 방영
2003.02 한국-칠레 FTA 체결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 350여 명 사망
16대 노무현대통령 취임 – 참여정부 출범
2003.03 ‘제주 4·3 사건’ 정부보고서 처음으로 채택
2003.07 이세돌, 세계바둑 2년패로 최연소·최단기 9단 달성
2003.08 국회 주 5일 근무제 의결(2004.07 실시)
2003.09 금강산 육로관광 도로 개통
2003.10 노무현대통령, ‘제주 4·3 사건’ 정부차원 공식 첫 사과
군복무기간 2개월 단축
2003.11 영화, ‘올드보이’ 개봉
2003.12 영화, ‘실미도’ 개봉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 의결
2004.02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
2004.03 국회, <노무현대통령탄핵소추안> 의결 – 05.14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통일호’ 열차 운행 완전 종료
2004.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열린우리당 과반 확보(탄핵 역풍)
2004.05 양심적 병역거부 첫 무죄 판결
2004.06 SBS드라마, ‘파리의 연인’ 첫 방영
2004.08 이라크에 자이툰부대 파병
2004.09 KBS1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첫 방영
<성매매특별법> 시행
2005.01 충남 공주·연기로 행정도시 이전 확정
2005.03 <동성동본 혼인 금지제> 폐지안 의결
2005.04 MBC, ‘무한도전’ 청 방송
2005.05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출범
2005.10 청계천 복원 및 개방
2005.1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립
영화, ‘왕의 남자’ 개봉
2006.01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사이언스』지, 황우석교수 줄시세표 연구 논문 취소
2006.02 한·미 FTA 협상 시작
2006.09 한·EU 자유무역협정 발표
2006.10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
2006.12 경부고속철도(KTX) 완전 개통
박태환 도하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 달성
2007.01 서울중앙지법, 인혁당사건 재심에서 사형수 8명에 무죄선고
2007.04 <기초노령연금법> 의결
2007.07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합법노조로 인정
2007.10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2007.12 동대문운동장 철거 시작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