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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X세대론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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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Sep 25. 2024

4-4. X세대와 군대 그리고 페미니즘

4장. X세대와 함께한 대한민국 사회

나에게 군대 생활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고, 나름 배울 것도 많고,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는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군대는 단지 나의 청춘을 2년여 동안 강제로 억압하는 곳이었고, 그 속에서 나의 인격과 인권뿐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거의 모든 권리를 철저히 무시당하며 지내야 했다. 구타와 얼차려 그리고 가혹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이 얼마나 악랄할 수 있는 것인지도 경험해야 했다. 신참병(新參兵) 한 달간 각 잡고 있기, 일병 이하 침상에 앉아서 군화 끈 묶지 않기, 상병 5호봉 이하 책 읽지 않기 등 말도 되지 않는 각종 부조리가 난무했다. 영하 20도가 넘는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 허술한 방한복을 입고 ‘옆구리 총’ 한 채로 두 시간 경계근무를 서면 몸은 얼어붙고 정신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것을 ‘참을 인(忍)’자 세 개 배워간다고 했다. 군대는 오로지 인간의 습성 중 나쁜 것만 강요당했고, 당한 만큼 후임에게 돌려주라고 가르쳤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짊어지고 가야 할 굴레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반대로 이 질문을 여자로 바꿔서 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 여자라면 꼭 짊어져야 가야 할 굴레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회적으로 젠더(Gender) 문제가 이슈화되기도 하고, 군 가산점 문제가 이슈화되기도 한다. 이는 공정성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일어나는 문제일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올 때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더불어 급진적인 여성운동 입장에서는 마르크스 관점에서 ‘여성해방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여성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여성해방론자는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고 남녀의 종속관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X세대가 성장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82년생 김지영’ 보다 일찍 태어난 X세대도 ‘김지영’ 이상의 가부장 사회와 맞닥뜨리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나 또한 위로 누나만 셋이 있었지만, 한국사회의 남아선호사상에 힘입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경우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정부에서 홍보할 때 나의 어머니는 정부의 방침에 반하여 나를 네 번째로 낳았다. 반대로 내 또래 중에는 엄마 뱃속에서 생을 마감한 성별이 여자인 친구도 있을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남자 손자는 할머니보다 윗사람 대접을 받았고, 수많은 대한민국의 누나는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X세대의 여자들은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 가족에서부터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설득하고 고쳐나갔다. X세대의 남자들도 그것에 대한 부당함을 인정하고 동조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서서히 여성의 고충을 들어주고, 여성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페미니즘운동의 필요성이 무의미할 정도의 단계가 이르렀지만, 이면에는 젠더갈등으로 비화되는 현상이 나타나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보기에 젠더갈등은 앞서 말한 여성해방론적 관점에서 다른 성을 적(敵)으로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젠더갈등을 일으키는 대부분은 남녀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틀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다분하다. 예를 들어 군 가산점 문제만 하더라도 징집을 당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일 수 있지만, 여성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손해나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X세대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의 의사를 밝혔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던 꼰대스러움을 최대한 버리려고 했고, 나의 삶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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