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X세대와 함께한 대한민국 사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고 3개월 뒤 있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의 한 부분을 읽어 보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자.
“우리에게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나라가 파산할지도 모를 위기에 우리는 당면해 있습니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매일같이 밀려오는 만기외채를 막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나마 파국을 면하고 있는 것은 애국심으로 뭉친 국민 여러분의 협력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미국·일본·캐나다·호주·EU 국가 등 우방들의 도움 덕택입니다.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갈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 봐야 합니다, 정치·경제·금융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지 않았던들, 그리고 대기업들이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 이러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은 지도층들이 저질러 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199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中
199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를 읽는 도중 울분을 금할 수 없어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 IMF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고, X세대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X세대가 태어나서 성장하기까지 한국 경제는 거침이 없었다. 한강의 기적부터 서울올림픽 유치 그리고 OECD 가입 등 해방 이후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 문 앞에 와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덩치만 키울 줄 알았지, 건강관리는 엉망이었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에 문어발식 사업확장 그리고 정부의 무능까지 금융권·기업·정부가 대한민국 경제의 난파선을 위험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조금 집어보자.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한국 기업은 외국자본의 단기채권에 의존하고 있었다. 상환 기간이 짧은 채권이라고 해도 수출해서 빨리 갚으면 된다는 안일함이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경제위기가 터지자 외국자본은 빠르게 회수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김영삼 정부는 국가 부도 사태는 없다며 끝까지 국민을 속였지만, IMF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IMF에 돈을 그냥 빌리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모두 할 테니 제발 빌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빌 듯이 읍소를 했고, 외국자본은 한국 경제를 헐값에 집어삼키려 들었다.
MF가 내세운 돈을 빌려주는 조건은 이러했다.
-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수합병 허용
-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 기업 회계제도 투명성 확보
IMF 구제금융을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을 빼앗긴 ‘제2의 국난(國難)’이라고도 하고 ‘경제신탁통치’라고도 이야기한다.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미셸 캉드쉬(Michel Camdessus) IMF 총재는 구제금융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서약을, 당시 유력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명에게도 받았으니 경제 주권을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IMF가 내세운 조항 중 그래도 국민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일 것이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는데 그냥 사용자가 일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연봉제나 성과급제로 급여체계가 변했으며, 이후에 취업하는 사람은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당시에 시대상황을 반영한 1998년에 발표된 한스밴드의 ‘오락실’이라는 노래가 있다.
정리해고 당한 아빠가 집에는 말하지 못하고, 회사에 간다고 하고는 갈 곳이 없어 오락실에 갔다가 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노랫말을 음미해 보자. 가슴이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것이다.
가끔 아빠도 회사에 가지 싫겠지 / 엄마잔소리, 바가지, 돈타령 숨이 막혀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혹시 내 시험성적 아신 건 아닐까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 차시는 엄마와 /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 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 옆엔 신나게 코 골며 잠꼬대하는 엄마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혹시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으실까
아침은 오고 또 엄마의 잔소리 / 도시락은 아빠 꺼 내 거 두 개
아빠 조금 있다 또 거기서 만나요 / 오늘 누가 이기나 겨뤄봐요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 부녀간도 소용없는 오락 한판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빨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한스밴드, ‘오락실’, 1998
X세대가 첫 사회생활을 할 때는 IMF 구제금융 전이나 후가 될 것이다. 당시 회사생활을 시작한 X세대는 모두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자세로 회사생활에 임해야 했다. 부당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찍소리 못하고 참고 견뎌야 했으며, 상사들이 갖은 수발을 들어야 했다. 이때부터 직원은 회사의 자산이 아니라 비용, 즉 소모품처럼 취급당했다. 이런 현상은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더 다양하고 심해져만 갈 뿐이다.
예전에는 애국심(愛國心)처럼 애사심(愛社心)도 고귀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한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는 사람에게는 박수의 갈채가 쏟아지곤 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나 사용자는 요즘 애들은 예전 같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직원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사용자가 무엇을 바란다는 말인가?
IMF 구제금융의 첫 피해자는 X세대였다. 하지만 X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뒷세대에게 더 큰 고통과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는 앞으로 X세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X세대도 분명 피해자이긴 하지만 후배나 자식 세대에게도 부채감을 가지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