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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선택과 더 좋을 선택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by Milanokim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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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의 고민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선택을 못 했는데, 너에게 나중에 미래에 좋을 것이니 다른 선택을 하라고 충고하는 내가 약간 멋적다.

모두가 알아주는 그리고 급여도 훨씬 많은 대기업 입사를 하지 말고, 일을 훨씬 많이 제대로 배우는 매일 잔업을 해야하는 빡세디 빡센 회사에 입사하라고 추천하는 내가 이상해 보이고, 네가 납득을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했던 나의 아픈 과거 선택과정을 너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눈 앞에 보이는 그럴듯한 멋있는 자리를 골라서 이직을 했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니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만약 평생 직장이거나, 정년 퇴직이 가능한 자리였다면 좋은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백세시대를 살아 갈 준비를 해야 하니 결론적으로 나는 잘 못 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한꺼번에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일하던 회사에서 나는 한국에 꽤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켰고 성사시켰다.

이 성과로 인해 나의 이름이 업계에 꽤 알려지고 몇몇 회사에서 스카웃 제안이 들어왔고, 그로 인해 이직의 선택지가 여러군데 생겼다.


같은 그룹의 회사에 법인장으로 승진하여 이동을 하는, 반강제로 요청된 것이라 기존 회사에 그대로 일을 하면서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시점에 법인장으로 이동할 회사의 경쟁사에서 이태리 지사를 만들려고 하니 지점장으로 입사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몇년째 거래하던 온라인 회사에서 자신들의 회사로 완전 이직하여 유럽 전체 업무를 맡아 주기를 요청했다. 나는 이 온라인 회사의 이탈리아 현지 소싱 및 구매, 영업 등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원래 우리 회사를 통해서 모든 것을 구매하다가 규모가 커지면서 그들이 이탈리아 법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법인도 내가 대표를 맡고 있었으며 이 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그 회사 매출액의 10%를 우리 회사가 수수료로 받고 있었다. 그들은 이 10%를 내 급여로 지급할 테니 자신들의 회사로 이적하기를 요청했다.


나는 빠른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오랫동안 제대로 고민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옮길 회사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하고 생산하여 전세계에 판매하는 여성복 브랜드 사업도 보유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그 자리는 꽤 멋있고,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그 법인장 자리로 이직하는 것을 선택했고 7년을 사장으로 CEO로 일을 했다.


나는 조금씩 현장감을 잃어갔다.

원래 일하던 방식은 늘 내가 직접 모든 일을 A to Z, 다 챙기는 스타일이었지만,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업무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웬만한 업무나 의견 전달도 비서를 통해서, 관리 담당을 통해서 하고 나는 법인장 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실무는 보고받고 지시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탈리아 현지의 그럴듯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오너 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법인장은 현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법인장으로서 여러가지 일을 하였고, 하려고 했지만 장애가 많았다.

전 회사에서는 상사맨으로 바늘부터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정신으로 중국 미국 등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다니며 별의 별 제품을 다 공부하고, 찾아보고, 영업하고 성과를 만들었지만 옮긴 회사에서는 패션 외에는 전혀 손 댈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내가 사업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의사결정을 해 주어야 무언가 활동할 수가 있었다. 점점 지쳐갔는데, 아마 100가지 이상의 신규 사업을 본사에 제안했지만 제대로 진행이 된 것은 거의 없었다. 경영지원에서는 ‘원하는 비용 다 보내 줄 테니 제발 새로운 일 좀 벌리지 마라’는 경고를 하던 시절, 나는 찾아 먹는 것이 아니라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이렇게 정년퇴직을 했다면 이 자리에서 근무한 것이 꽤 괜찮은 선택이었고 의미가 있었겠지만, 나는 자의반 타의반 독립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면서 잃어버린 현장감, 비서나 직원의 보고에 익숙한,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직원에게 지시를 통해서 일을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다. 꽤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가지며 거의 사업이라고 할 수 없는 단계까지 망가졌었지. 몇년전 겨우 사업을 회복하였지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옆에서 보았으니 잘 알겠지.

 

이런 사업의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는데 너무 과한 자심감이 있었다.

회사 이름이 일을 하고 도와준 것인데 내 능력으로 착각했었다.

100% 나의 경영 방식에 의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만약 이 새로운 길을 선택할 당시, 나의 그 다음 스텝이 이런 사업가, CEO로 가는 과정인 줄 알았다면 분명히 다른 선택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7년간 영업현장보다는 인력관리나 본사 지원업무 보고자료 만드는 일을 하고,

출장자들에게 멋있는 척 관광 가이드 맛집 투어를 시켜주고,

상품 개발보다는 본사 구매 보조하는 일을 열심히 한 결과였다.


나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아서,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

제대로 네가 꿈꾸는, 가고 싶은 길에 도움이 될 일을, 회사를 선택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젊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나이 들어서 해야 할 일을 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지금 해 두면 나이 들어서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게 된다고 한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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