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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Aug 07. 2021

Trinken Bier

맥주 마시는 방법, 황태자의 첫사랑

“TRINKEN “은 DRINK에 해당하는 독일말이다.


“TRINKEN BIER “하면 “DRINK BEER “ 즉, “맥주를 마시다”라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T “를 멋지게 발음하려면 혀를 이빨 뒤에 세게 밀착시킨 다음 빠르게 뒤로 빼면서 입 안팍의 커다란 압력차를 이용, 강하고 시원하게 바람 터지는 소리를 내야 한다.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면 절대 안 된다.


한번 해보시라. 잘못하면 침이 튈 수도 있다.


요컨대 맥주는 그렇게 마셔야 한다.


“DRINK”의 “D”발음처럼 성대가 우아하게 울리지도 않고 혀가 입천장 언저리에서 꼬부라지지도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아무래도 “TRINKEN”의 원래 의미는 “맥주를 마시다”라는 것 같다.

왜냐하면, TRINKEN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실 때 사용하는 동사로는 적합하지가 않다.

가령 와인은, 씹어서 마시라는 말도 있듯이,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맛과 향을 음미한 뒤 목구멍 깊숙이 천천히 넘겨야 한다. 아마도 촛불이 켜진 은은한 장소에서, 연인과 함께, 그리고 아마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4중주의 선율과 함께 말이다.


이러한 광경의 와인은 “TRINKEN”이라는 직선적이고 파열적인 동사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강렬하고 화끈한 위스키는 또 어떤가?

밤낮 비 오고 습한 스코틀랜드의 기나긴 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한 필수품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갈증을 풀어주는 맥주가 될 수는 없다.

“T”발음의 강한 바람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칠 그런 섬나라에서 위스키나 마실 때 쓰일 말은 분명 아니다.


마시기는 막걸리도 시원스레 쭈욱 마셔야 제맛이지만 마시는 액체의 온도가 시원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마시는 모양새가 그렇다는 뜻이니 확실한 차이가 있다. 내친김에 하는 소리지만 막걸리는 벌컥벌컥 마신 후 꺼억하고 시원스레 트림을 해야 제맛이다. 시큼한 김치 한 조각하며….

그러고 보니 막걸리의 맛이 최고가 되게 하는 적정 온도는 얼마일까? 맥주의 경우 최적 온도는 섭씨 4 돈가 하던데….


이렇듯, “TRINKEN “은 독일 사람들처럼 우직하고 후련하며 또 직선적이다. 옆으로 돌리지도 않고 슬금슬금 다가오지도 않는다. YES면 YES고 NO면 NO일 뿐이다. “TRINKEN”은 맥주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고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위해 존재하는 국민이다.

그들은 웬만한 집마다 맥주 발효기계가 있고 동네마다 고유상표의 맥주가 있다. PILSNER도 맥주고 WEISS BIER도 맥주다. 그들은 호텔 식당에도 있고 회사 구내식당의 점심 메뉴에도 있는 맥주를 시도 때도 없이 시원시원 TRINKEN 한다.


하이델베르크 배경의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마리오 란자가 부르던 신나는 노래, Drinking Song을 “DRINK” “DRINK”하며 영어로 부르기보다는 "Trink!", "Trink!" 하면서 힘찬 독일어로 불렀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맥주를 마실 때는 “DRINK “하면 실례다. 어차피 독어도 영어도 외국어인 우리는 앞으로 맥주 마실 때 “TRINK”하고 소리 지른 뒤 단숨에 쭉 마셔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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