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청음초 07화

청음초 7

목을 매다

by 능선오름

7.

잔뜩 발기한 상태로 선잠을 깨어버린 사내는 약간의 아쉬움과 불쾌감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등과 가슴은 식은땀 같은 것으로 축축하니 젖어있었고 사내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무엇이 잠을 깨운 것 인지, 어두운 방에 번쩍이는 시계를 보니 세시가 좀 넘은 시각.

늦은 새벽이라 고요한 가운데 무엇이 그의 잠을 깨운 것 인지 사내는 어리둥절하였다.


그때 303호에서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 같은 게 들려왔다.

뭔가 삐걱 거리는 소리, 그리고 낮은 신음 소리, 무엇인지 격렬하게 스치는 소리 들.

사내는 갑자기 선잠이 훌쩍 달아나면서 머리끝이 쭈뼛하니 서는 상태가 되었다.

사내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려왔다.


‘혹시? 303호 여자가 자살을 기도 하는 거? 뭐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면 나만 이상한 놈 되는 거 아냐? 엿들었다고 할 수 없잖아?’

등등 숱한 생각들이 들었지만,

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신음 속도가 빨라지고 뭔가 스치는 소리들이 격렬해져서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은 시기라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사내는 한 짝이 떨어져 나간 슬리퍼를 끌고 303호 문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낮게 두세 번 문을 두드렸다.


낮은 소리지만 새벽이라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복도를 천둥처럼 울려서 사내는 흠칫 스스로 놀랐다.

그런데 303호 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내는 망설이다가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는데 문은 아무 저항이 없이 열렸다.

“저기요……. 무슨 소리가 들려서…….”

사내는 조심스럽게 어두운 거실 속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엉거주춤하게 현관에서 거실을 훑어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은 사내의 방과 마찬가지로 황량하게 보였다.

좁은 창으로부터 스며드는 노란 가로등 불빛에 어슴푸레 방의 윤곽이 보였는데,

신음은 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고 얇은 합판으로 어설프게 만들어진 방문 틈 사이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고개를 방 안으로 디밀었다.


뭔가 들큼하고 비릿한 냄새.

그리고 어두운 방 한가운데 천정으로부터 매달린 시커먼 덩어리.

그게 303호 여자임을 깨닫는데 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사내는 이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잠시 이성과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의 한가운데 상황은 창으로부터 스며드는 노란 가로등 불빛에 조금 그로테스크했지만,

이미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사내에겐 제대로 보였다.

여자는 천장의 형광등 기구에 뭔가 빨랫줄 같은 것을 묶고 거기에 목을 걸고 침대에서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여자의 목은 그 줄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으며 입가에는 혀가 빼어 물어져 신음을 흘려내고 있고,

방바닥으로부터 불과 몇 센티 떨어지지 않은 그녀의 두발은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침대 모서리를 미친 듯이 긁어대고 있었다.

순간 군대 시절 마주했던 선임 병의 주검이 사내의 뇌리에 떠오른 건 무슨 연유였을까.


사내가 선임병을 발견한 것은 야간 청음 매복을 마치고 돌아와 막사 뒤편으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돌아간 아침이었다.

처음에 막사 뒤 언덕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사내는 누가 이른 아침부터 나무 가지를 붙잡고 턱걸이 운동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시각이라서 막사 뒤편 언덕은 짙은 수목들로 다소 어두컴컴하였고,

나무 밑에 매달린 형체가 그의 선임병임을 깨닫게 된 건 나무 가까이 몇 미터 앞으로 나아가서 이었다.

선임은 나무에 황색 나일론 빨랫줄로 목이 졸린 채 매달려 있었고,

짙은 자주색으로 빼어 문 혓바닥이 허옇게 탈색된 입술 사이로 삐죽 나와 있었으며 지급받은 지 얼마 안 된 형광 주황색 운동복을 입고 프로월드컵 운동화를 신은 상태였었다.

워낙에 그를 괴롭히던 선임이라서 이었을까.

사내는 눈앞에 매달린 선임의 창백한 얼굴과 아마도 숨을 다하던 순간 몸 밖으로 배출되었을,

선임의 분뇨 냄새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와서 그냥 멍하니 사체를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단지, 선임병 의 코와 입 사이로 바지런히 넘나드는 벌레들을 보고 ‘저 벌레들이 저 새끼 몸속에 원래 있던 놈 들 일까?’라는 황당한 생각만이 사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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