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청음초 08화

청음초 8

구사일생

by 능선오름

8.

잠시간 찰나 엉뚱한 회상에 빠져있던 사내는 본능적으로 허공에 매달린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

사내는 헐떡이며, 다행히 비좁은 방안이어서 여자를 침대 맡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마치 푸줏간에 매달린 고깃덩이처럼 축 늘어진 상태였다.

사내는 여자를 어떻게 내려놓을지 난감한 상태가 되어,

여자의 허리를 붙든 채 여자를 매달고 있는 천정을 올려 다 보았다.

어두운 천정에 좁은 창에서 들어오는 침침한 불빛이 기괴한 음영을 만들고 있었고,

천정 조명등으로부터 삐져나온 전선에 위태롭게 걸린 가느다란 줄의 형상이 보였다.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여자를 끌어안은 채 침대 위로 올라갔다.

육체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사내의 허리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삐걱 거리는 소음을 내며 간신히 올라간 침대 위에서 발치에 흐트러져 있던 이불을 그러모아,

여자를 조금 높게 올려놓고서야 전선줄에 매달린 줄을 조금씩 풀어내었다.

아마도 빨랫줄이었던 듯 미끄러운 나일론 줄은 완벽한 매듭은 아니어서,

한참 씨름을 한 이후에 갑자기 여자의 몸을 지탱하던 줄이 풀렸다.

순간적으로 큰 소리와 함께 여자가 침대 위로 툭 떨어졌고 사내는 순간 무게 중심을 잃고 여자 위에 엎어진 형상으로 포개어 넘어졌다.

옆집 어디선가 ‘아이 씨……. 시끄러워’ 하는 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그 상태로 수분 간 헐떡거리며 사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 어슴푸레한 빛을 통하여 쓰러져 있는 여자의 안색을 살폈다.

여자는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엷게 숨을 쉬는 것으로 보였다.

사내는 여자의 목을 옥죄고 있던 나일론 줄을 조심스럽게, 한참 동안 힘을 들여 풀어내었다.

목에 걸린 매듭은 생각보다 무척 단단했고 억지로 힘을 쓰는 과정에서 사내의 손톱이 깨져 나가며 피가 흘렀다.

줄을 벗겨낸 여자의 하얀 목에는 거무스름한 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사내는 손톱의 통증도 잊은 채 잠든 것처럼 엷게 숨을 쉬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긴 속눈썹이 어둠 속에서도 파르르 떠는 것처럼 보였고,

축 늘어진 몸뚱이에는 저녁에 보았던 노란색 점프슈트 같은 옷 위로 봉긋이 솟아 오른 가슴이 낮게 오르내리는 듯했다.

아주 짧은 시간 활극을 벌인 사내의 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무리하게 쓴 대가였다.

사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신 근육들이 100미터 전력 질주를 끝낸 단거리 선수처럼 부들부들 떨리며 아우성을 지르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펌프질을 하였다.

아마 근래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토록 격한 움직임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내가 어색한 자세로 침대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이로,

옅은 신음 소리를 내며 여자가 긴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떴다.

여자의 눈은 어둠 속에서 깊은 우물처럼 어두운 동공으로 잠시 껌벅이며 누운 채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다가,

자신의 다리에 겹쳐진 사내의 무게가 낯선 듯 고개를 들어 사내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여자가 비명이라도 지를까 싶어 머리끝이 주뼛 서는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여자는 한참 간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끙 소리를 내며 팔을 침대에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지요……. 누구세요”

여자는 쥐어짜는듯한 목소리로 아주 힘들게 사내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 저기....... 소리가 들려서요........ 옆방인데........ 그게 문이 열려서........ “

두서없이 사내는 말을 더듬었고 여자는 깊은 우물 같은 시선을 들어 사내를 보고,

천정을 보고 그들의 엉킨 다리를 보고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댔다.

아마 목이 졸려져 있던 기도가 풀어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근데 저기……. 무거운데 다리 좀 치워 주실래요.”

여자의 말에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다리를 반사적으로 움츠렸다.

사내의 반응에 여자는 쿡쿡 웃으며 다시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고 다시 웃고를 반복했다.

사내는 머쓱한 채로 여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둠 속 하얀 그녀의 얼굴은 사내의 엉킨 기억보다 선이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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