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짧으니 즐겨라
엊그제까지의 후텁지근함이 가셨다.
온몸에 물을 뿌려도 떨궈낼 수 없던 끈끈한 더위가 사라졌다.
이제 땡볕이 좀 쨍하게 내리쬐어도 갓길 그늘에 들어서면 제법 서늘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시절이 야박하게 짧다는 것을 안다.
곧 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차가워지고,
초록으로 무성하던 풀밭들은 사그라들어 가을빛으로 담담해질 것이다.
싱그럽게 드리워진 나뭇가지 위의 잎새들도 형형색색의 끝마침을 준비할 것이다.
마냥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길게 길게 늘어지는 석양빛이 가을의 시작을 알려올 것이다.
이내 그림자마저 사라진 하늘은 곧 차가운 파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은 상상도 안되던 북극의 냉기가 온통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가을은 도둑처럼 몰래 들어왔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바싹 마른 낙엽들만이 길모퉁이를 겉돌며 바스러질 것이다.
어찌 가을이란 계절은 이리 야속한가.
선선해진 대기를 흠뻑 들이마시기도 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니.
땀을 흘려가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그득하던 한강 자전거 도로도
움츠리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사람들만 이따금 남겨질 것이다.
곧 가리라고 ‘가을’이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가을이란 곧 가는 계절이다.
봄의 움틈이 작렬하는 여름에 대한 개막식이라면,
가을은 아무 행사 없이 고요히 뒤안길로 사라지는 은퇴식 같다.
문득 찬바람이 불고 문득 서릿발이 성기게 내려앉을 것이다.
이토록 짧은 계절을 붙안고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저 얼마 전에는 걷기도 버거웠다는 기억 하나로 걸어보고,
꽃보다 더 진하게 물든 가을잎에 탄성 몇 번 지르고 나면 곧 사라질 것이다.
그대.
이토록 짧고 빠르게 지나치는 계절이니 즐겨라.
일생에서 가을을 느끼는 시간이란 그리 많지 않으니.
좋았던 기억도 그리운 마음도
그저 한없고 하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