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8.
‘학교 가기 싫다.’, ‘요즘 애들은….’, ‘스트레스받는다.’, ‘힘들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습관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이다. 한 교사는 열의 없는 직장인이 되어 밀려드는 업무와 곤란한 학생을 마주하며 괴롭다, 못 해 먹겠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 교사의 말에는 가시가 있어 학교가 괴로운 공간이길, 교사가 고단한 직업이길, 자신이 그런 진흙탕 속에 허우적대고 있길, 바라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교사에게 말했다. ‘뉴스 보니까 요즘 애들 아주 건방지고 못됐던데요. 교사하기 너무 힘들겠어요. 애들은 역시 때려가며 키워야 하는 건데.’ 그제야 그 교사가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그렇게 못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교권이 추락했다고,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학교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삭막하고 전쟁 같은 곳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글을 써야겠다. 다정하고 온화한 학교의 일상을 글로 공유해야겠다. 무심코 놓쳤던 고마움을 일기로 남겨야겠다. 뉴스에서는 학교의 따뜻함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던지는 교사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까.
30대_고등학교_비담임_교무기획부
오늘은 정말 추웠다. 복도에 가만히 서 있으면 뼈가 시릴 정도였다. 교무실에서 내 자리는 애석하게도 문 가까이에 있다. 이게 왜 애석하냐 하면, 사람들이 실수로 문을 덜 닫거나 안 닫으면 복도의 찬 바람이 곧바로 나에게 와닿아서 위에는 히터 바람, 밑에는 복도 바람으로 머리는 뜨겁게, 발은 차갑게를 경험할 수 있어서 그렇다. 학교는 곧 있을 축제 준비로 정신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문을 제대로 안 닫고 교무실을 드나들었다. 정말 너무 추워서 덜덜 떨었다. 나중에는 너무 추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옆에 짝지 선생님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문구 하나를 적어 주었다. '단비 T 얼어 죽어요!' 이러면서.
이 문구는 탈락했지만, 대신 다른 문구를 적어서 교무실 문에 딱 붙여놓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이전보다 문을 잘 닫아 주는 것 같았다. 나의 작은 반응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신경 써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웠다.
오후에는 졸업 진급 심의회가 있었다. 이 일이 나에게 잘 안 와닿은 건지 왜인지, 자꾸 업무 중에 실수를 했다. 오늘은 그 실수의 정점을 찍었다. 회의가 당장 3시 40분에 있었는데, 3시 35분에 자료 인쇄를 시작했고, 심의회 준비를 45분이 지나도록 하나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준비도 안된 회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부장님과 부서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급하게 나를 찾아다녔다. 결국엔 부족한 자료로 심의회가 시작되었고, 나는 부랴부랴 인쇄를 해서 뒤늦게 자료를 갖다 주었다. 정말 완전한 업무 미스였다.
심의회가 끝난 후 부서 선생님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나 때문에 놀라고 당황스러웠을 텐데도 전혀 날 서지 않은, 부드럽고 인자한 말투에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너무 미안하고, 내가 못나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갑자기 선생님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단비 울겠다'며, '이제 끝!' 이러고 큰 실수 아니니 전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단비 바보'라고 놀리며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심지어 짝지 선생님은 내가 많이 우울해 보였는지, 내가 평소에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얘기하며, 오늘은 가벼운 실수였을 뿐이라고 강조까지 해주셨다.
우리 부서 선생님들은 이렇게 나의 작은 행동에도 섬세하게 반응해 주고, 나의 큰 실수도 쿨하게 보듬어준다. 매년 부서가 바뀌는 학교에서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과 한 부서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얼마 전에 부서 선생님이 '다른 학교 가도 꼭 연락하자'라고 얘기한 것이 떠올랐다. 아직 부족하고 미숙한 나를 이렇게 아껴주는 선생님들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