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운동은 철저한 취향의 영역이다. 흔히 다이어트 하면 떠올리는 헬스 역시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잘 맞는 사람도 있다. 헬스가 잘 맞는다면 참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거의 모든 운동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싫어했다.
하지만 다이어트 입문자가 가장 많이 권유받는 운동 역시 헬스다. 퍼스널 트레이너 코스를 등록하여 2~3개월 정도 꼼꼼한 지도와 올바른 자세를 배워 차츰 스스로 해나가는게 정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적으로 헬스를 권하고 싶진 않다.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금액이 부담스럽다는 점과 그 금액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할 확률이 있다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낸 돈 만큼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건 아주 큰일이다. 들뜬 마음에 각종 운동복과 운동화를 장만하다보면 가슴이 충만해진다. 하지만 다양한 헬스장만큼이나 수 많은 트레이너 분들이 있으니 결제를 서두르지 말고 상담을 해보는게 좋다. 나같은 고도비만자들은 다이어트에 대해 부끄럽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가 많다.
"살을 빨리 빼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을까요?"
내가 여러번의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던 끝에 헬스장에 가서 했던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은 절대 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너는 타인을 운동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런 질문을 듣는 순간 pt 기간동안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을 빼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내 트레이너는 무조건적인 절식과 하루 2시간 이상의 강도높은 운동을 요구했다. 3끼중 2끼는 닭가슴살과 샐러드, 한끼는 한식을 먹되 밥과 반찬을 1/2로 줄여서. 운동과 병행하려니 정말 말 그대로 토나왔다. 내가 무리라고 해도 이렇게 해야 살이 빠진다며 나의 나약한 정신상태 개선을 외쳤다. 트레이너 말이라면 다 옳겠거니 하고 따르던 나는 2주만에 환불을 요구했다.
운동하다가 죽을 것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진짜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걸 몸으로 느꼈다. 하루하루 운동을 하다가도 달려가서 토하고 모든게 끝나면 현기증이 났다. 잠이 아니라 기절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손끝이 저리고 하늘이 노랬다. 내 환불 요구에 그건 어려우니 다른 트레이너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나는 결국 다른 트레이너분께 적당한 강도로 운동을 배웠다. 내 체력과 상태를 열심히 설명했더니 가급적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유산소와 적당한 근력 운동을 병행시켜 주셨다. 헬스장은 3개월 pt 계약이었고 끝난 후에는 연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헬스 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지루한 운동과 도통 시간이 가지 않던 순간들도 싫지만 무엇보다 나를 처음 가르쳤던 트레이너의 무신경한 태도가 너무 싫었다. 내가 살이 쪘다고 해서 트레이너에게 훈계를 듣거나 반쯤 혼나는 태도로 운동을 배울 이유는 없었다. 부실한 체력과 커다란 덩치를 질타당하며 자극을 받고 효과를 본 회원이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자신감은 점점 말라죽었다. 트레이너 왈 '자신의 근육질 몸을 보고 나서 거울을 보면 식욕이 뚝 떨어질것' 이라는 어이없는 말도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 살이 쪘든 안 쪘든 나는 고객이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며 설설 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에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부주의하게 살찐 사람이었고 자존감과 자존심 모두 최악이었다. 게다가 운동신경과 유연성도 최악인 나는 늘 트레이너가 왜 그게 안되시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애써 나도 잘 모르겠다는 얼버무림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썩 즐겁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체중과 체지방을 인바디 위에서 까발린 순간 마치 권력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건 몸의 권력이었다. 너의 형편없는 몸을 앞으로 내가 마음대로 다그치고 혼내도 괜찮다는 권력 말이다. 나는 잔뜩 주눅들었고 헬스장 앞에만 가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매일매일 뭘 먹었냐고 검사받는 기분도 별로였다. 그래서 내가 다이어트를 결심했을때 헬스장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1편에 소개한 소규모 운동짐은 부부 트레이너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다이어트 전문 짐답게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내 몸 상태를 체크해 주셨다. 어려운 기구 대신 맨손이나 박스를 사용해 운동하기 때문에 첫 인상도 어렵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나무 박스를 이용한 운동이었는데, 아마 종아리보다 조금 낮은 정도의 높이였다. 그걸 바닥에서 점프해서 두 발로 올라서는 운동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엄청 쉽지만 막상 뛰려면 상당히 떨리고 높게 느껴진다. 만약 잘못 점프해서 넘어지면? 뛰려고 보니까 너무 높은데? 나는 우물쭈물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뗐다 붙였다 했다. 그때 트레이너가 말했다.
'처음하려니까 어려우시죠?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운동 하셨으니까 충분히 가능하실 거예요.'
칭찬의 힘인지 몰라도 나는 정말 해냈다. 한 번 뛰니까 별거 아니었다. 운동신경 꽝이던 내가 처음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낀 날이기도 했다. 그 후로 점핑 박스는 내 주특기가 되었다. 나중에는 더 높은 박스도 잘 뛰었다. 자신감이란 정말 중요해서, 운동을 몇개월 동안 했어도 나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는 내가 있었다. 아마 몇개월 운동했다고 해서 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진 않았을테고, 나보다 내 노력을 더 믿어주는 트레이너가 없었다면 뛰지 못했을 것이다.
다이어트에서 운동은 절대 뺄 수 없다. 식이가 80에 운동이 20이라지만, 운동 없는 다이어트는 아슬아슬하게 쌓은 모래성이다. 이전처럼 먹기 시작하면 더 극심한 요요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은 절대로 하기 싫은걸 고르지 말자. 운동은 원래 힘든거니까 하면서 꾹 참지도 말자.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런닝머신만 달리기엔 세상에 너무 즐거운 운동이 많다.
운동 실력과 운동의 재미는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심각한 몸치에 유연성이 딸리지만 춤 추는걸 좋아하고 필라테스 시간도 즐겁다. 종종 유투브에서 쉬운 댄스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하기도 한다. 시작하기에 좋은 운동과 시설들이 정말 많은 시대고, 모두 즐거운 운동을 고를 자격이 있다. 예산과 정해진 시간 내에서 알맞은 운동을 찾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평생 가질 습관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무턱대고 헬스장부터 등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운동에 흥미가 있었는지 따져보기부터 해보자. 중간에 힘들면 다른 운동으로 바꿔도 된다. 여러 운동을 해 본 경험은 고스란히 내 몸에 남아 다른 운동을 할 때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