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과거 극단적으로 식사량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한 적 있다. 완전히 틀린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다이어트를 하며 느꼈던 사실 중 하나는 '사람은 식이요법만으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식사 조절과 운동이 존재하지 않으면 본래의 몸으로 돌아갈 확률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평생 절충한 식단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미밥과 간을 하지 않은듯한 나물 반찬과 생선 한 토막과 데친 두부만 먹고 살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긴 하겠다. 생야채와 건성건성 뿌린 오리엔탈 드레싱과 닭가슴살로 때웠는데도 포만감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다이어트 기간 중에도 내내 이렇게 먹을 수 없다. 하물며 평생이라니.초인적인 절제력을 가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나는 다이어트 중 위에 썼던 식단처럼 몇 개월을 먹다가 극심한 다이어트 탈모와 건강 이상을 겪었다. 비타민과 영양제를 잘 챙겨먹었는데도 이랬다. 요새는 워낙 다이어트 도시락이 많아져서 선택의 폭이 넓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매일같이 사서 먹기도 힘들다. 게다가 샐러드는 맛 없고 빵은 먹고 싶었다. 한창 다이어트 할때는 갓 구워 따끈따끈한 모카빵에 크림을 발라 먹는 꿈을 여러번 꿨다. 탈모와 후유증을 겪으며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성격도 많이 날카로워진걸 느꼈다. 본격적으로 건강한 식사 방법을 고민했다. 내가 사용한 여러 방법을 적고 싶다.
우선 메모지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가득 적었다. 썩 좋아하지 않지만 생각나는 음식들도 죄다 적었다. 사실 다이어트 기간 내내 뭐가 먹고싶다보단 그저 뭔가 배가 터질때까지 먹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서 적는데 한참 걸렸다. 내가 생각해낸 먹고 싶었던 음식은 이랬다.
모든 종류의 빵
모든 종류의 구움과자
달달한 돌체라떼
흑당버블티
탄산음료 일체
치킨
닭갈비
찜닭
피자
보쌈
만두
칼국수
두부지짐
탕수육
양꼬치
맥주
... ...
한참 적은 후 이 중에서 내가 다이어트 기간동안 안 먹어도 살 수 있을법한 음식들을 지워나갔다. 약 30개 정도 적은 기억이 난다. 보쌈이나 만두, 피자들이 여기서 탈락했다. 다이어트 기간동안 절대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남은 음식들을 추려 다시 한 번 불꽃튀는 경쟁을 시작했다. 탄산음료나 탕수육, 양꼬치가 여기서 탈락했다. 아쉽지만 대체 음식으로 타협해야만 한다. 닭가슴살 꼬치 같은... ... 생김새는 그럴싸하지만 먹으면 닭가슴살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퍽퍽함. 그래도 참을만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음식이 빵과 닭갈비와 커피였다.
이 음식들은 다른 대체 식품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것들을 잃고 난 후 내 삶이 너무 불행해져서 다이어트까지 망칠까봐 두려울 정도였다. 내가 빵에 품고 있는 집착은 엄청났다. 나는 매일 회사 가는 길 앞에 있는 저렴한 빵집에서 산 빵과 달콤한 커피로 아침을 때웠다. 하루의 낙이자 행복이었다. 루틴이 되어버린 식습관을 고치는 일은 아주 힘들다. 또 이렇게 당연히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아침이니까, 일해야 하니까 하며 자기자신을 합리화 했다.
물론 나도 시판되는 여러 다이어트 빵이니 밀가루를 쓰지 않은 제품이니 당을 줄였느니 하는 제품을 먹어보았다. 단 하나도 마음에 차는 제품이 없었기에 절망감은 더했다. 게다가 이런 제품은 양이 적고 비쌌다. 어떤 제품은 '이정도 양을 먹으면 그냥 빵을 먹어도 살이 안 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다. 여러가지 생각 끝에 이른 오전에만 빵을 먹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치사한 방법이었다. 대신 본래 먹던 양의 1/4 정도로 작게 잘라 되도록 천천히 먹었다. 빵을 여러봉지 사두지 않았다. 냉장 보관 가능한 쿠키나 작은 디저트 종류를 산다면 딱 한개씩만. 다음날 또 먹고 싶으면 가게까지 걸어가기. 끼니 대신이므로 이걸 먹고 다른걸 더 먹거나 하지 않기. 내가 처음 잘라낸 양만 먹기.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했다.
곁들이는 커피는 커피머신을 구매해 에스프레소를 내려 무지방 우유를 많이 타 마셨다. 단백질 보충 겸 카페라떼를 먹는 기분이 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우유의 고소함을 잘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무지방 우유를 처음 먹으니 우유가 아니라 비린 물 같았다. 저지방 우유를 어쩌다 사먹으면 그 고소함에 몸서리 쳤다. 그냥 우유는 얼마나 고소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왜냐하면 우유는 내게 절실하지 않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럽은 넣지 않았다. 커피라기 보다는 커피향을 첨가한 우유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이게 내가 타협한 다이어트식 아침이다. 대체 어디가 다이어트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초장기전이다. 달리기로 따지면 마라톤이다. 내가 평생 유지할 식단의 균형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포기 할 수 없는 음식을 아득바득 버리지 않았다. 양을 줄이고 되도록 체중에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골라 조금 먹기를 택했다. 심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웠다. 배부른 양은 아니지만 그 어떤 대체품을 먹을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 체중에 끼치는 영향도 미미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빵까지 끊었다면 더 빨리 빠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빵을 매일 먹진 않았다) 하지만 다이어트 기간은 몸과 마음이 모두 고되다. 식단을 혹독하게 조일수록 요요 현상이 올 확률도 높다.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작업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탄산음료도 모두 제로로 바꿨고 카페 커피나 과당음료도 모두 끊었다. 피자 대신 통밀 또띠아를 사서 닭가슴살과 토마토와 야채들을 얹어먹었다. 심심하게 간한 나물 반찬과 소금을 뿌리지 않은 생선구이나 연두부를 열심히 챙겨먹었다. 당연하게도 썩 맛있진 않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괴롭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다이어트용 음식을 만드는 팁도 적극 활용했다. 나는 생야채를 먹으면 속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샐러드를 끼니 대신 먹을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양배추를 쪄서 으깬 두부에 살짝 간을 해 싸먹으면 정말 맛있다. 두부에 삶은 계란 흰자나 기름을 뺀 참치캔을 으깨 넣어도 좋았다. 양배추 만두라는 다이어트 식품도 있어서 사먹어 보았었다. 만들어 먹는게 훨씬 싸고 푸짐하다.
마지막으로 포기가 힘든 요리는 닭갈비였다. 나는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저렴한 냉동 닭가슴살과 닭안심만 사용했다. 나는 닭가슴살을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가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다. 대체 닭가슴살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 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래도 단백질 보충에는 닭가슴살만큼 저렴하고 효율이 좋은 재료가 없다. 다이어트 기간 내내 냉동 닭가슴살과 안심을 잔뜩 사서 구비해 놓았다. 다이어트를 끝내고 유지중인 지금은 닭안심을 주로 먹는다.
냉동 닭가슴살과 안심을 깍둑 썰어 닭갈비를 만들었다. 시판 닭갈비 소스는 1봉지당 약 2~3인분 정도인데 나는 3등분해서 얼려놓은 후 요리할때마다 썼다. 양념장을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내가 만들면 밖에서 사 먹는 그 맛이 안 났다. 양배추나 양파를 잔뜩 추가하고 가끔은 실곤약을 넣기도 했다. 좀 멀겋고 자극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닭갈비였다. 나는 이것도 어디냐며 감지덕지하며 먹었다. 덕분에 입맛이 엄청 순해졌다.
먹고 싶은 음식은 너무 참지 않았다. 이만큼 참았으니 괜찮을거야 하며 터지는 폭식은 두려운 존재다. 다이어트 중의 나는 참으로 옹졸해져서, 정성껏 차려낸 나물반찬에 참기름을 넣을까 말까는 고민하며 먹고 싶은 빵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른 아침에 1/4로 잘라서 먹을 것이라는 철칙만 지켰다.
좋아하는 음식을 죄다 끊고 극단적인 식단을 몇 개월간 유지하면 사람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다이어트는 괴로운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훨씬 편해졌다. 다이어트는 내가 죽을때까지 챙겨야 하는 숙제같은 존재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건강한 끼니를 챙겨먹는 모든 행위가 다이어트에 속한다. 특급 식단이나 다이어트 보조제 같은건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평생 먹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라면을 끊는건 가능하지만 평생 끊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늙어 죽을때까지 라면 반 봉지에 스프 절반만 넣기 정도는 지킬 수 있다.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자. 다이어트는 가뜩이나 괴로운 행위다. 이 정도라면 평생 먹을 수 있겠다 싶은 맛있고 건강한 나만의 식단을 꾸려나가는 일은 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