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꾸리는데 중요요소가 타이밍이라고 한다.
기본에도 타이밍, 꽤 고급기술에도 타이밍, 우연인듯한 인연도 타이밍에 따라 필연이 된다. 내 몸짓에서도 섬세한 타이밍이 필요했으니, '타이밍'이 우리를 얼마나 쥐락펴락하는지 알게 된다.
다이소에서 케틀벨(동그란 쉿 덩어리에 손잡이가 달림) 운동기구를 샀다. 5킬로그램이라서 그런지 5천 원이었다. 집에 와서 숏츠를 보고 따라 해 봤다. 오호! 만만한 게 쉬웠다. 뭐 이런 것쯤 10분쯤 흔들 수 있겠다. 운동이 될까? 일단 흔들어대고 봤다.(무릎을 약간 굽히고 다리사이로 케틀벨을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반동으로 상체를 세우고, 다시 다리사이로 적당히 통과시키기)
다음날 허리가 뻐근했다. 케틀벨을 무지하게 흔들어대서 그런 듯했다. 나보다 신체적 연배가 있으신 분이 할만하다고 해서, 꼭 해보라고 강력한 권유에 했더니 허리가 아팠다. 그제야 전문가의 쇼츠를 찾아봤다.
이런 나는 짐짝을 마구 흔들어대는 노동을 한듯하다. 논에 물대는 것도 아닌데 효과 없는 힘과 반동으로만 몸을 썼다.
운동의 효과는 '타이밍'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케틀벨이 어딨쯤 있을 때 허리를 펴고, 내려오는 위치에 따라 다시 몸을 접어야 올바른 자세가 갖춰진다고 한다. 케틀벨의 위치에 따라 내 몸을 순간적으로 잘 맞춰야 통증이 아닌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타이밍 조정을 눈대중으로 귀동냥으로 대입한 내 탓이다. 생각해 보니 삶에서 그렇게 정교한 적이 드문 것 같다. 대충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고, 지난 뒤에 놓쳤다고 아쉬워했지만 '그것도 계획이었을 것이다.' 대충 생각하고 넘겼다. 물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어떻게 내가 원하는 순간을 딱 포착하랴? 둔탁한 생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케틀벨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서는 필요하다면 때를 기다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육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머리가 아닌 몸뚱이로 깨달아낸 중요한 행복 비결이었다.
산다는 게 살아낸다는 게 나의 뼈와 살을 적당히 움직이게 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바르게 갈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다. 한 발 딛는 순간 나의 근육이 갖는 타이밍은 마음과 일치해서 두 번째 발디딤이 가능했을 것이다. 때로는 느리게 걸으면서 내가 놓친 순간은 없었는지, 무심한 태도는 없었는지 지나간 순간을 정교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생활 타임벨트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고, 나는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낼 테니까.
오늘 내가 갖는 절묘한 타이밍은 포기 직전 내가 고칠 점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행운이다. 저녁에 다시 타이밍에 맞춰 케틀벨을 과학적으로 흔들어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