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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Jan 07. 2022

아이가 아프다(feat. 나도 아프다)

아이가 아프다.

처음 들어보는 파라 바이러스가 유아들 사이에서 대유행이라고 하더니 우리 아이도 비켜가진 못하나 보다. 고열로 이틀을 꼬박 앓고 괜찮나 싶더니 콧물에 기침까지 심해져 연달아 일주일을 집에서 내리 쉬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은 차에 이번에는 발목을 다쳤다. 분명 평소처럼 춤추고 놀다 매트 위로 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자세가 잘못되었던지 아이가 발목을 잡고 일어나질 못한다. 남편은 회식 중이고 병원은 이미 문을 닫은 늦은 밤이다. 나는 병원을 검색해보며 상태를 살핀다. 아이는 절뚝절뚝 걸어보더니 그마저도 아프다며 기어 다니고 있다. 그래도 육안상으로는 붓거나 멍들지 않고 컨디션도 좋아 보이니 다행인 걸까.


다음날 일어나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남편은 벌써 출근을 했다. 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는 간단히 외출 가방을 쌌다. 가려는 유명한 소아전문 정형외과는 미리 예약이 안돼 항상 대기가 길다. 아직 진료시간 한참 전이지만 서둘러 나가야 한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화들짝 놀라더니 2시간 외출을 쓰고 나오겠다 한다. 나와는 가끔씩 티격태격해도 아이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사랑 많은 아빠인데 그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난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도착한 병원은 역시나 문전성시. 내 마음이 급해도 어쩔 수 없다. 접수를 해 놓고 기다림에 보채는 아이를 달래 본다. 늦지 않게 남편이 도착했다. 아이는 아빠를 보더니 더 어리광이다. 무등을 타고 비상계단을 서너 번 오르내리고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인다.


엑스레이 결과 왼쪽 발목의 골절. 아 제발 피하고 싶었던 깁스의 확정이다! 무겁고 답답하고 찝찝한 그 고생을 아이가 할 생각을 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는 활기차게 그 기간을 잘 보냈다. 처음 며칠은 자다가 깨서 다리를 만지며 칭얼거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잘 먹고 잘 자고 아픈 다리로도 힘껏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문제가 있다면 나일까. 어린이집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호기심 왕성하며 활동적이라는 아이를 24시간 이주 내내 혼자 돌보려니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다치기 직전 감기로 이미 일주일을 가정 보육한 후 연달아 일어난 일이라 더 그랬다. 게다가 남편은 야근과 그보다 더 잦은 회식으로 주중과 주말 모두 제대로 얼굴 보는 날도 드물었다. 한마디로 독. 박. 육. 아. 어쩌면 남편과의 다툼은 예고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들은 대게 아이가 아프고 나면 차례로 아프다. 아이가 아프니 평소보다 훨씬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밤에도 이상은 없는지 살피느라 잠도 부족하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애끓는 마음! 그렇게 영혼까지 끌어 모아 간호하고 나면 엄마도 병이 나는 것이다. 그걸 남편들은 참 야속하게도 모른다. 아이가 아픈데 아내가 왜 약한 소리인가 싶은 걸까?

아내들이 바라는 건 아주 사소한 거다.


자기야 힘들지?


따뜻한 말 한마디. 마음이 전해지는 위로.

물론 남편도 과중한 업무로 지쳐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가족을 위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남편이 유독 힘들고 지친 날 술상을 차려주며 힘을 보태주고 싶듯이, 남편도 아내가 가장 지친 날 아내가 좋아하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과 잠깐의 휴식시간을 주는 것. 딱 그 정도의 위로를 원하는 것이다.


평소에 육아와 집안일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라는 분위기 속에 빈말이라도 좋을 그 어떤 위로나 응원의 말도 없었기에,

그날 남편의 예고 없는 회식과 늦은 귀가에, 그것도 모르고 남편을 기다리다 먹지도 못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 밥상을 보며 내가 그토록 화를 냈었다는 것을 그는 알까?


아이가 아프면, 그리고 가족들의 위로와 응원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지친 엄마는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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