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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Sep 25. 2022

여자에게도 동굴은 필요하다.

최악의 신년사

2021년 한 해도 다사다난했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난 주로 방콕에 육아와 가사뿐이었지만, 부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그래 아이를 이만큼이나 키웠지" 하며 괜스레 울적한 마음을 달래 본다. 이렇게 처져 있을 순 없지! 이것저것 레시피를 찾아보여 장을 잔뜩 봐 두었다. 내일은 신년맞이 홈파티다! 스테이크, 순두부 그라탱, 양송이 수프. 준비하는 과정이 고되지 않고 즐겁다. 새해에는 즐겁고 활기차게 보내야지!


그러나 퇴근하는 남편의 얼굴은 뾰로통하고 나의 계획을 듣고도 시큰둥하다. 최근 부서 이동으로 회사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계속되는 코로나로 가정 보육한 날이 더 많은 나도 쉽고 편하기만 한 날들을 보낸 건 아니었다. 다 같이 힘 내보자 부산을 떤 나도 상대가 이러하니 김이 푹 빠진다.


엄마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오늘따라 많이 보챈다. 징징거리는 것이 일상 이것만 남편은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자기야 소리 지르지 마. 나도 아이도 놀라"

놀라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내가 한 한마디에 토라졌는지 남편은 작은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이틀 동안 두문 분출했다.


내가 도대체  그리 잘못했을까. 그동안 남편도 안쓰럽다 여긴  마음조차 가소롭다. 본인은 저렇게 자기 마음에 충실한데 평소 내가 힘들다고 하는 말에는  기울이지 않을까. 이렇게 내가 혼자   거면   결혼했을까.


남자는 동굴이 필요하다고? 그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방문을 걸어 닫고 하루 종일 누워서 힘들다는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혼자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워야 하는 여자에게는 속상함을 풀거나 숨 돌릴 겨를의 시간도 없다.


맞벌이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자신의 기분에 충실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직장, 아이, 가족 다 놓아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나도 속상할 때가 있고, 회사의 업무강도는 똑같이 높으며, 그럼에도 엄마라는 이유로 저녁 모임 하나 맘 편히 잡지 못하는 여자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남편들이여! 긴장하시라!

어느 날 여자들도 예고 없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동굴로 도망갈 수 있으니.


있을 때 잘해~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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