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어원과 의미의 변화
이번에는 '얼굴'이라는 말의 의미와 어원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얼'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얼다'라는 말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어른'이라는 말이 '얼다'에서 파생된 말임을 설명하며 언급했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얼다'는 사물의 물리적 결합은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의미로도 확장되어 쓰였다.
그러면서 '어른'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정리했다.
그럼 '얼다'는 어떻게 나온 말인가?
바로 '얼'과 '-다'가 결합한 말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문법에서는 이런 결합은 비정상적인 결합이다.
비통사적 결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옛날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은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결합된 신념, 사상, 정신, 체계 등을 아우르는 말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고의 체계일 수 있다.
심리학의 '콤플렉스(complex)'와 같은 용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얼'이 담긴 '골격'이 바로 '얼굴(얼골)'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얼'과 '꼴'이 합쳐진 말로도 볼 수 있다.
'얼'은 내면의 정신이고, '꼴'은 외면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얼굴'은 한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다 표현한 말일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이라는 말은 실제로 과거에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얼굴'은 안면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몸 전체의 모양이나 체질을 뜻했다.
고등학교 때 지겹도록 배웠을 '속미인곡'의 일부를 보자.
먼저 위 인용문의 끝을 보면, '물 같은 얼굴'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장은 '물처럼 연약한 체질'로 번역을 한다.
옛말에 '얼굴'은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첫 번째 줄에도 '내 얼굴 이 거동'이라는 말도 나온다.
'내 얼굴의 거동'이라는 말에서 역시 '얼굴'이 '몸'을 뜻하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얼굴의 거동'은 바로 '몸짓'이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과 같은 '안면'의 뜻을 가진 말은 '낯'이었다.
위 인용문의 다섯 번째 줄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반기시는 낯빛이 옛날과 어찌 달라지셨는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낯'과 '얼굴'은 분명 다른 말이었다.
한편, 요즘 사람들은 '낯짝'이라는 말도 쓴다.
이 말은 '낯'과 '짝(쪽)'이라는 비슷한 말이 결합한 합성어다.
'쪽'은 '낯'보다 더 낮추는 말이다. 조금은 비속어에 더 가깝다.
예컨대 '쪽팔리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다.
비슷한 말이 이처럼 반복하여 결합하는 사례는 많다.
'깡통'도 영어 'can+통'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그렇다면 왜 ‘얼굴’의 의미는 왜 몸 전체의 형상, 체질을 뜻하다가 의미가 축소되었을까?
이건 조금 흥미로운 상상의 영역이다.
예전에는 혼인을 앞두고 ‘맞선’을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부모님들은, 당사자에게 '얼굴'을 잘 보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것이다.
옛날에 이 말의 의미는 상대방의 '낯(안면, 낯짝)'만 보고 오라는 말이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의 안면뿐 아니라 건강 상태나 체질, 골격 등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옛날에는 결혼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시대였다.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일은 자신의 일생을 다 거는 일이었다.
자유연애가 없던 시절, 단 한 번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자 운명의 시간이었다.
결혼 후 바로 죽는 남편도 많았고, 출산 중 사망하는 부인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 잘 보고 오라"는 말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살피고 오라는 뜻이었다.
'얼'도 보고 '꼴'도 아주 세밀하게 살펴야 했던 간절함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혼을 해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시대이다.
두 사람의 첫만남도 이전과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한번이 아닌 여러 번의 만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얼굴'을 보고 오는 일은, 이제 상대방의 일부분만 보고 오는 일이 되었다.
첫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낯짝'이 보여주는 첫인상이 되었다.
첫인상이 좋아야 다음 만남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얼굴'은 말 그대로 오늘날의 '얼굴'로 의미가 축소가 되었을 것이다.
언어는 그 시대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