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체의 사랑

by 서운인혜

산부인과학에는 '인간 태반 락토겐(human placental lactogen, hPL)'에 대해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체의 유리 지방산(free fatty caid)의 동원 및 사용을 촉진. 말초에서 포도당 흡착 및 사용을 차단함. 태아의 포도당 요구량을 충족하기 위해 모체의 소모량을 최소화함."

태아를 위해 모체가 생리학적 기능을 변화한다는 이 내용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누나의 몸은 날이 갈수록 변화해 갑니다. 금방 숨이 차기도 하고, 한밤중에 쥐가 올라와 잠에서 깨기도 합니다. 평생 느껴본 적 없던 마음과 신체의 변화를 누나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들고 지치는 시간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 변화가 어머니가 아이를 '온몸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하는 첫째 되는 계명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은 '목숨'을 주로 '영혼(soul)'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단어는 '프시케(psyche)'로, 영혼이라는 뜻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주로 목숨이나 생명으로 번역됩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2장 20절에 나오는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에서 '목숨'이라는 단어가 바로 헬라어 프시케의 번역입니다. 아이를 품은 어머니는 참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 전체를 변화시켜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임신은 하나의 생명이 또 다른 생명 안에 깃드는, 생리학적으로 가장 복합적이고 정교한 공존의 형태이다.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순간부터 모체는 기존의 생리적 균형을 포기하고, 전체 신체를 오직 태아의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재조직하기 시작한다. 내분비계, 대사계, 면역계, 순환계, 신경계 등 전신의 체계가 하나의 목표, 곧 아직 자율적 생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인 태아의 유지와 발달을 위해 유기적으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생화학적 반응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모체라는 유기체가 겪는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임신에 수반되는 모체의 생리학적 재편성은 특히 태반에서 뚜렷하게 구현된다. 태반은 모체와 태아 사이의 물질 교환을 매개하는 고도로 특수화된 기관이며, 그중 융합영양막은 모체 혈류와 직접 접촉하는 경계면으로 기능한다. 이 부위에는 포도당 운반체 1형(GLUT1)이 고밀도로 발현되어 있어, 혈중 포도당 농도의 농도 구배에 따라 촉진 확산 방식으로 모체의 포도당을 태아로 전달한다. 그런데 임신 중기 이후 태반에서 분비되는 '인간 태반 락토겐(human placental lactogen, hPL)'은 모체 조직의 인슐린 감수성을 저하시킴으로써 말초 세포에서의 포도당 흡수를 억제하고, 결과적으로 혈중 포도당 농도를 상승시킨다. 이로 인해 모체와 태아 사이에는 지속적인 포도당 농도 기울기가 형성되며, 포도당은 농도 구배에 따라 GLUT1을 통해 태아에게 우선적으로 전달된다. 동시에 hPL은 지방조직에서 호르몬 민감성 리파아제를 활성화하여 유리지방산의 혈중 농도를 높이고, 모체는 포도당 대신 지방산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를 '글루코스 절약(glucose sparing)' 상태라고 하며, 이는 단순한 대사 적응이 아니라 모체 전체의 에너지 전략이 태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구조적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는 피로감이나 저혈당, 나아가 임신성 당뇨병의 위험까지도 유발할 수 있으나, 모체는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해 포도당 대사와 에너지 분배 경로를 정교하게 조절함으로써, 스스로 대사 균형을 재편성하고 태아에게 최적화된 대사 환경을 능동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임신 후반기에 모체는 혈장량이 40~50% 증가하고, 심장의 수축력과 박동수가 함께 증가하여 심박출량이 최대 50%까지 증가한다. 증가된 혈류는 선택적으로 자궁으로 재분배되는데, 자궁의 혈류 증가는 곧 태반으로의 혈류 공급이 증가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임신 말기에는 자궁 혈류량이 임신 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하며, 이는 태반을 통해 이루어지는 산소와 영양소의 교환을 뒷받침하는 생리학적 기반이 된다. 태반은 단순한 물질 교환의 통로를 넘어 태아를 외부 병원체로부터 보호하는 면역학적 장벽으로서도 기능하며, 이러한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 리모델링과 혈관 확장이 모체 심혈관계의 능동적 조절을 통해 정밀하게 수행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혈류의 집중적 재분배와 심박출량의 증가는 그 자체로 모체에게 상당한 생리적 부담을 요구한다. 특히 혈장량의 급격한 증가에 비해 적혈구량의 증가는 상대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혈액 내 적혈구 농도는 희석되고, 이로 인해 산소 운반 능력이 저하되는 생리적 빈혈이 발생한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모체는 심박출량을 더욱 증가시키고, 조직 내 산소 분포를 재조정하려는 생리적 노력을 지속하게 되며, 이 과정은 호흡곤란, 피로감, 부종 등과 같은 다양한 반응을 동반한다. 한편 임신 중에는 산소 운반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철분을 비롯해 칼슘, 마그네슘 등의 필수 무기질에 대한 전신적 수요 역시 동반 상승한다. 이는 단지 모체의 대사 유지뿐 아니라 태아의 골격 형성, 혈액 생성, 신경계 발달 등 생장 전반에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무기질의 필요량이 급증하여 식이 섭취로 충족되기 어려운 경우에 모체는 자신의 간, 비장, 골격 등의 저장소에서 이를 분해하여 태아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은 생리적 적응을 넘어선 존재적 재편성으로,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능동적으로 재조직하는 생물학적 헌신이라 할 수 있다.

모체에서는 면역학적 조정 또한 정교하게 수행된다. 태아는 유전적으로 모체와 절반만 일치하는 유전자 구성을 지니므로, 일반적인 면역 체계에서는 외래 항원으로 인식되어 세포성 면역반응에 의한 거부반응이 유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신이 유지되는 동안 모체의 면역계는 생리학적으로 특이적인 변화를 보인다. 특히, 제1형 보조 T세포(Th1) 중심의 세포성 면역반응은 억제되고, 제2형 보조 T세포(Th2)가 매개하는 체액성 면역반응이 상대적으로 강화된다. 제1형 반응은 인터페론 감마와 인터루킨-2 등의 사이토카인을 통해 세포독성 T세포와 대식세포를 활성화시켜 외부 항원을 제거하는 데 관여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태반과 태아 조직을 공격할 위험이 크다. 반면 제2형 반응은 인터루킨-4, 인터루킨-10 등을 분비하며 항체 생성 및 염증 억제에 기여하고, 전신적인 면역 활성을 완화시킨다. 특히 인터루킨-10과 형질전환 성장인자 베타는 조절 T세포의 분화와 활성을 촉진한다. 이 조절 T세포는 태아에 대한 면역 관용을 유도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태아 조직이 면역계의 표적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작용을 한다. 결과적으로 면역 체계가 스스로 자신의 작동 원리를 수정하여, 유전적으로 이질적인 태아를 예외적으로 수용하는 구조적 재조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생리적 변화가 드러내는 사실은 자명하다. 임신 중 모체는 단지 태아를 자신의 일부로서 수동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위해 능동적으로 구조를 바꾸고, 기능을 수정하며, 자원을 제공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흔히 낙태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태아가 모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전제 위에, 모체가 생명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주장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생리학적 사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오히려 정반대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모체는 태아를 위해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능동적 존재이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가 아니라 모체가 전신을 동원해 보호하고 수용하는 독립된 생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성애란 정서적 정념에 그치지 않고 세포 수준에서부터 이미 구조화된 생물학적 응답이며, 어머니는 자녀가 바깥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온몸으로 그 생명을 향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생리학적 진실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온몸을 다해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데스벨리 국립공원의 슈퍼 블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