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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Sep 14. 2021

반 1등도 틈새시장이 있다.

<꿈, 좀 바뀌면 어때>

 내 첫 번째 꿈이었던 테니스를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했다.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가끔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친구 집에서 자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긴 방황의 끝은 결국 집이었다.  

    

 나는 예체능 쪽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기도 했지만,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피도 물려받아서 그런지 공부도 곧 잘하는 편이었다. 중학교 때도 운동과 병행하면서 했던 공부로 반에서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을 받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그렇게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시지 않았다. 억지로 학원을 보내시지도 않았고, 성적이 낮다고 다그치시지도 않았다. 다만 가끔 시험 성적이 형편없을 때, 그 성적표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셔서 내가 들릴 정도의 한숨을 쉬시곤 했는데, 그 한숨 소리를 듣고는 더 열심히 하곤 했다. 아마 그게 어머니 고도의 전략이었을지도.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배치 고사라는 걸 보게 되었는데 열심히 했음에도 성적이 영 좋지 않았다. 한 학년만 600명이 가까이 되었던 학교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밖에 받지 못했다. 그때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솔직히 그 당시에 난 마땅한 목표가 없었다. 대학을 가긴 해야 하니 공부를 하긴 했지만, 정말 나 스스로 원해서 공부를 하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테니스까지 그만두고 떨어진 의욕을 재미가 하나도 없는 공부로 다시 올리긴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어느덧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시험공부의 양과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중학교 때와는 달랐다. 공부 쪽을 원해서 진학한 아이들이 600명이나 있는 이곳에서 웬만한 공부량으로는 그들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운동을 위주로 했던 내가 이미 중학교 때부터 공부만 했던 아이들을 뛰어넘기는 더더욱 이었다. 그러다 시험 당일, 나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한 가지의 사건이 일어났다.    

 

 과목마다 시험이 끝나면 보통 그 과목을 가장 잘하는 친구에게 우르르 달려가 답을 맞추어 보곤 했다. 아무도 정확한 답은 몰랐지만 왠지 그 친구와 답이 겹치면 정답이 맞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수학시험이 끝나고 멋있게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마치 나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마냥 내 앞을 지나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시험지를 들고 달려갔다. 마치 백화점이 오픈 시간에 문이 열리면 에르메스, 구찌, 루이비통 같은 백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 철저하게 무시 받은 다른 이름 없는 브랜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대라도 안 했으면 실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반 1등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들면서도, 큰 깨달음을 주었던 건 그 친구가 반 1등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뇌를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사건 때문이었다. 그 당시 수학시험의 한 문제의 답이 1번이냐 3번이냐로 논쟁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아이들이 1번이라는 주장과 함께 완벽한 풀이를 제시했지만, 이상하게도 반 1등의 풀이로는 3번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와 함께 1번을 외쳤던 아이 중 몇 명이      


 “아... 3번인 것 같은데 ?”


 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답은 1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때 생각했다.      


 ‘내 말에 힘이 없구나’     


 내가 아무리 옆에서 얘기해봐야 결국 말의 힘은 1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수학시험은 다행히 정확한 답이 나와 있기에 옳고 그름을 추후에 판단이라도 할 수 있지만, 살면서 답이 없는 다양한 문제에서 해결책을 주기 위해서는 내 말에 힘이 있어야 하고, 그 증거가 있어야 하는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때부터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반 1등.     


 그래서인지 그때는 다른 꿈을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하고 있던 공부에 대한 목표가 더욱 뚜렷해졌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밤 10시까지 정규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보내고, 추가 신청자에 한하여 11시까지 남을 수 있었던 추가 야간 자율 학습 시간까지 학교에서 보냈다. 그리곤 이후에 독서실에서 2시까지 남아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잠을 자는, 매일이 같은 패턴의 하루를 보냈다. 내가 추가 야간 자율학습까지 했던 이유는 그 시간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인데, 그 친구들에게 좋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을 보면서 더 승부욕을 불태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안 가? 그럼 나도 안 가’라며 혼자서 기 싸움도 벌이곤 했다.     


 사실 성적이 비슷한 그룹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받을 수 있는 자료와 지식도 한계가 있었고, 어느 순간 그 무리에서 내가 상위권이 되면 이 친구들보다는 잘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게 된다. 부산에 있는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과 있다 보면 부산 상위 대학만 가도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인 서울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부산 상위권 학교가 그렇게 높지 않은 곳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도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 높음의 기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주위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게 되면서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고 2년간 정말 죽어라 공부했다. 살면서 공부하다 코피라는 것도 흘려보고, 공부하다 지쳐 쓰러져 자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성적도 상위권에 올라가 있었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던 수학도,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테니스를 할 때도 느꼈다시피 세상엔 너무나 많은 괴물들이 존재했다. 아무리 악을 써도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가 없는 상대가 있다. 나에게 반 1등은 그런 존재였다. 같은 공식을 써도 풀이하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어떻게 저런 생각으로 문제를 풀 수 있고, 어떻게 저렇게 하나하나 모든 지식을 기억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3학년이 될 때까지도 나는 결국 반에서 1등은 꿈도 꾸기 힘든 꿈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3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3학년 기말고사는 입시에 영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모든 아이들이 그 시험이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이 기회야 !’     

 

 다행이었던 건 나는 수시 합격생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수능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았다. 다들 수능 문제에 집중할 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3학년 기말고사에 나는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내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시험에서 반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좋았다. 너무 좋았다. 그 누가 인정하지 않고 얻어걸린 것이라고 말한들 그게 뭐 어떤가. 테니스라는 내 첫 번째 꿈을 버리고 두 번째로 정한 내 꿈을 이루어냈다. 그 과정에서도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과정이었고 결과도 완벽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아무렴 어때. 이뤄보지 않은 사람은 이뤄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이뤄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힘듦을 알 수 없다. 가끔 누군가 그런 말을 한다.      

 

 “ 반 1등? 그런 걸 꿈이라고 할 수 있어 ? ”     


 누구나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 너무 거대하고 창대한 꿈만이 꿈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하루만 푹 쉬는 것이, 누구에겐 억대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일 수 있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도 내가 정하면 그게 꿈이다. 그렇게 난 내 두 번째 꿈을 이루고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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