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신

존재와 부재의 의미

by 글 쓰는 흰둥이

우리는 대체로 ‘신’이라는 존재를 완전무결함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신적인 존재란 결함이 없는 존재이며, 신의 능력이란 만물을 창조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완전한 힘으로 묘사된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전통적 신 개념의 세계관을 조금 더 면밀히 관찰해 보고자 한다.


종교적·고대 철학적 사유에 따르면 신은 우주 만물을 창조한 존재다. 창조된 모든 것은 신의 일부이자 파편이며, 신적 능력의 결과물이다. 피조물은 불완전하지만 신은 완전하기에, 신은 피조물들이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자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 곧 우상이 된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완전무결함을 전제 조건으로 지닌 신은 왜 피조물들을 불완전하고 결함 있는 존재로 탄생시켰을까? 이 질문에서 출발한 또 다른 물음은, 자연스럽게 신의 완전무결함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신은 완전무결한 존재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전통적 종교 세계관에 따르면 신은 완전무결하며 전지전능하다. 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탄생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녔기에, 지금의 나 역시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 안에서 나를 창조한 신 또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결국 인간은 신이 반드시 존재함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인식 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존재를 인식하는 동시에 부재 또한 인식한다. 과거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동물은 한때 나의 인식 세계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던 대상이었다. 그러나 죽음 이후, 지금의 인식 세계에서 그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부재’의 상태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 체계는 존재를 인식함과 동시에 부재의 가능성 역시 인식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면, 신의 부재 가능성 또한 인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신의 존재를 반려동물의 죽음이라는 특수한 경험에 빗대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허나, 신이 죽었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거나 증명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불가능하다.


첫째, 신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의 형상이나 형태가 관측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관측이 가능하다는 어떠한 근거도, 확신도 갖고 있지 않다. 간혹 신의 형상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간절한 기도와 엄격한 율법의 실천 속에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확신하며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신도들보다, 오히려 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이성적으로 논의를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시적 착각이거나 특수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 제한된 신 경험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목격할 수 없는 것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신의 목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한 신’이라는 존재 규명에는 균열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신이 완전무결하지 않다고 단정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극히 낮은 확률로, 우연히 그들에게만 신의 현신이 비추어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신의 죽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역시 불가능하다. 우리는 신이 살아 있든, 죽었든, 혹은 죽어가고 있든 그 어떠한 경우에도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다. 만약 우주와 생명체의 성립 조건이 신의 능력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능력을 발현하는 주체인 신이 죽었을 경우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즉, 신의 죽음과 동시에 우리의 인식과 내·외부적 상호작용 역시 중단되기에, 신의 죽음을 인식하거나 규명하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하나의 예외는 있다. 신은 죽었지만 그 능력은 여전히 존재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우리는 신의 죽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을 잃게 된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도 신의 죽음은 증명될 수 없다. 이는 곧 신이 존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와 같다.


이제 신의 존재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사유해 보자. 존재란 부재의 가능성을 동시에 전제한다. 인간의 인식 체계는 언어적·경험적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존재 개념은 필연적으로 부재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부재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인간은 신의 부재를 상상하거나 증명할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완전무결한 신이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의 가능성까지 지녀야 한다니, 이것은 신성모독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이 내포한 부재 가능성 자체가 신성모독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가 존재와 부재에 대한 인간의 언어적·경험적 인식 방식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이제는 존재와 부재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볼 차례다.


인간은 예로부터 불완전한 삶 속에서 완전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염원해 왔다. 고대 철학과 신화 속에 신들의 세계와 이상향이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염원이 강력했기에, 신은 반드시 순수하고 무결하며 완전한 존재여야 했다. 그리고 그 이상적 신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만약 신의 완전무결함을 나열한 뒤 “사실 그것들은 모두 허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누가 신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신의 완전함’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 완전함 속에 ‘존재함’마저 포함시켜 버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결점이 없어 완전한 상태란 어떠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상태다. 그것은 정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전적 의미의 존재와 부재가 지닌 이미지와 의미를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생명과 우주의 본질은 ‘변화’와 ‘운동’에 있다. 만약 신이 고정된 완전함이라면, 그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죽은 상태, 곧 부재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신이 살아 있고 존재한다면,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운동의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 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완전한 것이 아니라, 존재와 부재, 생성과 소멸이라는 모든 가능성을 그 안에 품고 끊임없이 요동치기에 불완전하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정한 신성의 본질이다.


(해당 글에 삽입된 삽화는 글의 분위기와 테마를 살리기 위한 ai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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