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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an 30. 2024

명품 가방이 많으시네요.

무소유도, 미니멀리즘도 어려운 나에게

직장인 25년 차 여성인데 나는 백화점에 거의 가지 않는다. 어쩐지 맵시 있는 옷을 골라 입고 가야 할 것 같고, 그러자면 높고 불편한 신발이 어울릴 테고 그렇게 몇 시간을 다닐 자신이 없어서다. 게다가 나올 때는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몇 개씩 들고 나와야 할 것만 같아서 나와는 맞지 않는 공간 같다. 아니면 영화, 드라마에 길들여져 그래야만 한다고 세뇌되었거나.



언젠가 책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내용을 읽었다. 사람들의 행태로만 보면 여성들만 자기를 잘 가꾸고 다니면 된단다. 남성들의 관심사는 본능적으로 여성들을 향하고, 여성들은 다른 여성의 패션과 외모를 보며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하기 때문임을 이유로 들었다. 타 지역에 오가며 가끔 기차역이나 터미널과 연결된 백화점을 지나게 될 때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보면 그 책 내용이 떠오르곤 했다.

아무튼 그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끔 눈길이 머무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내가 가지지 못한 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모델처럼 당당한 걸음걸이, 화려한 옷차림이 이유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더 오래 마음을 빼앗는 사람들은 조금 결이 다르다.

화장기가 없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곱고 건강한 피부를 가졌고 차분한 색감의 톤온톤 옷차림에 낮은 신발을 신은 중년 여성들이다. 주로 살집이 없으며 나이에 비해 허리가 꼿꼿하여 고상함마저 느껴진다. 때로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경우도 많은데 저렇게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물론 그런 아우라와 몸의 선을 가지기 위해 오히려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수수한 색의 옷 역시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명품일 수 있음과 내 키 때문에 이미 이번 생에서는 글렀다는 것도. 하하하!


백화점에 가는 삶 대신 나는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녔다. 온갖 주제의 연수와 대학원뿐만 아니라 강연, 전시회, 미술관에 갔다. 캘리그래피 이전에 유행했던, 아이돌 그룹 이름 같은 P.O.P에서부터 십자수, 가죽공예, 목공예, 재봉틀과 도자기, 요가 수업을 들었다. 온라인 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이런 것들은 배우는 동안 나만의 작품들이 많아진다는 매력을 갖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키홀더, 의자와 소파 테이블은 아주 유용하고 도자기 그릇도 거의 매일 식탁에 오른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희열을 이기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자랑도 한다.

하나 뿐인 동생과 나의 리미티드 에디션

최근 목공예 수업을 받으러 다녔는데 줄자, 장갑, 마스크, 앞치마 등의 준비물이 필요했다. 첫 수업에 가져갔던 갈색 뜨개 가방(동생의 작품)은 준비물을 담기에 작았다. 다음 수업 때 가져간 하얗고 사랑스러운 꽃 그림의 가방은 목공예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수업 때는 재봉틀로 만들었던 가방이 훨씬 더 크길래 거기에 담아 갔다. 구성원들과 친해지기 전 아직 낯가림이 있던 나에게 누군가 말했다.

명품 그녀와 함께 만든 목공품들

"명품 가방이 많으시네요.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 같은데 맞아요? 여러 가지 많이 배우시나 보다."

조그마한 체구에 고운 피부도, 꼿꼿한 자세도, 고상한 은빛 머리카락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충분히 멋졌다. 장점을 알아보는 안목,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친절한 말들이 한 땀 한 땀 엮여서 그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명품 인성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어렵고 훌륭한 경지임을 알 수 있었다. 작으면서 커다란 이가 또 하나의 커다란 인생가르쳐 준 날이다.


#명품 #가방 #백화점 #미니멀리즘 #리미티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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