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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01. 2024

쓸모 or 무쓸모

브런치 체험 3. 연재 독촉의 순간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의 브런치 글쓰기는 '연재'가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들에게 무성의한 글의 중복으로 비추어졌거나 이해되지 않는 스크롤의 번거로움을 주었다. 본의 아니게 무쓸모한 시간을 제공한 꼴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큰 배움을 준 쓸모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은 더욱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나의 연재 계획은 일단 두 권의 책을 위한 것이어서 두 가지 중 하나는 오늘, 일요일이 연재하기로 한 요일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 오늘 일요일이구나. 글을 올려야지.' 생각했다.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다. 딸은 아직 자고 있었지만 아침 식사를 챙겨야 하는 시간이었다. 밥통을 열어보았다. '밥만 안쳐놓고 글을 올리자.' 하며 계획이 수정되었다. 쌀을 씻다 보니 쌀뜨물이 생겼다. 쌀뜨물에 육수를 내어 국을 끓여야 할 것 같았다. '국에 들어갈 재료까지만 썰고 글을 올리자.' 나는 변덕쟁이가 되어 국 끓일 준비를 마치고 주방을 빠져나왔다.

일요일에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글을 쓰는 여유! 왠지 멋지고 근사한 사람이 하는 일 같아 마음에 든다. 이럴 때는 커피가 제격이다. 카페에서 막 받아 든 커다란 텀블러의 커피까지는 연재일 아침엔 사치였다. 그래서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가장 빠르게 커피를 수혈할 수 있는 방법은 한 두 개 남은 드립백 커피였다. 얼른 물을 끓여 따뜻한 공기도 만들고 컵에 간단히 커피를 내려 글을 쓰는 노트북의 공간으로 가려고 했다. 커피 향이 좋았다. 그런데 다른 향이 또 맡고 싶었다. 면세점에서 나를 멈칫하게 했던 사랑스러운 향수 내음이 떠올랐다. 외출 계획도 없어 씻지도 않은 이 몰골에 향수는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 격이니 패스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향 좋은 캔들을 켜기로 했다. 캔들 곁에는 말리고 있던 꽃다발이 있었다. 그리고 '연재일입니다. 글을 올리는 독자와의 소중한 약속을 잊지 말아 주세요.'일 것만 같은 알림음이 여러 차례 울려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축하받을 일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축하받을 일도 거의 없다. 다른 중년도 마찬가지겠지. 어릴 때는 생일뿐 아니라 어린이날이며 믿지도 않는 종교지만 성탄절까지 서로 축하를 주고받는다. 예쁜 빛의 연애시절에도 수많은 축하를 주고받는다.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지만 둘이 좋아 죽고 못 사는 100일, 200일, 300일을 세어가며 사랑을 쌓아간다. 결혼하면서 축하받고 자식을 낳는다면 첫걸음마, 돌잔치며 유치원 졸업, 초등학교 입학 등 많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축하를 해주거나 받을 일이 많은 건 참 괜찮은 인생이다.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축하를 받는 날 나는 꽃다발을 가득 안아 들었다. 색색의 생화들은 너무나 예뻤고 향수와는 또 다른 행복의 내음을 뿜어냈다. 꽃이 말라가더라도 그날의 기분과 사람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또 언제 축하받을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그때 꽃을 다듬고 남겨두는 기준은 예쁜 색깔과 모양을 가졌는지였다. 꽃병에 담길 때부터 잎이 물러지거나 제멋대로 가지나 가시가 남은 꽃들은 제외시켰다. 가만히 두어도 예쁜 꽃을 더 잘난 것과 못난 것으로 구분 지어 골라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한 달 정도 지났다.



글을 올려야 하는 날이지만 거의 마른 꽃을 다시 골라 꽂고 싶었다. 이번에 꽃을 고르는 기준은 생화였을 때와는 달랐다. 분명 그때는 버릴까 고민했던 꽃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활짝 피어버렸거나 색이 어중간하여 눈길이 덜 가던 꽃들이 달라져 있다. 색깔은 짙게 변해있고 커다랗던 모양은 작게 오므라지면서 다소곳해졌다. 우리의 인생과 같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아도 간직하기로 했다. 색과 모양이 변해가며 풍기는 아름다움이 소중했다. 가만히 있어도 반짝이던 젊은 시절과는 또 다른 가치로 마른 꽃이 다가왔다.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으로 살기

일요일 아침 산만한 나의 움직임이 오히려 예정 목차에 없던 소재를 선물했다. 단정히 앉아서 글을 쓰려던 계획과는 달랐지만 합리화해 본다. 어쩌면 억지로 뽑아내어졌을지 모르는 글보다 이 글이 더 좋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무쓸모하다고 생각했던 꽃이, 모든 인생의 쓸모를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아마 이 꽃들은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오늘 더 이상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꽃다발의 철학을 얻었으니 성공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자신의 쓸모를 느껴 자축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 일요일에 쓴 글이지만 '진짜 불혹이 되고 싶어' 연재 요일과 주제에 맞추어 늦게 올립니다. 일요일의 글은 다른 연재 '우리 선생님은 딴생각 ing'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무늬 Moon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brunchbook/indiewrite-moon

#꽃 #아름다움 #꽃다발 #축하 #연재 #노트북 #목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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