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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온비 Jun 04. 2024

도파민이 당길 땐 재판을 보러 가볼까

낭만적 일상을 사는 방법

며칠 사이 일상이 무료해졌다. 시간은 많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본가나 가야지, 하고는 아침 열 시에 집을 나섰다. 그러곤 본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일곱 시였다. 내비게이션 탓이다. 고작 30분 거리에 위치한 본가였으나 내비게이션이 “법원, 검찰청 방면”으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법원 방면으로 가는 김에 법원 방문이나 해볼까! 하고 호기롭게 차를 틀었다. 그러니 길이 샌 탓을 내비게이션에게 돌려본다.


아침 열 시는 모두가 분주하게 일을 할 시간이다.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와, 송사에 휘말린 사람들까지 말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법원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입구 보안검색대에서 짐을 검사하고 나면, 놀랍게도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여 안내데스크에 재판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냥 조용히 들어가셔서 보고 오시면 됩니다. “라고 한다. 진짜다. 그냥 법원 건물에 들어가서,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면 재판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사건은 폭행이었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잔뜩 움츠러든 아주머니는 억울함이 앞섰는지 “상대가 먼저 난리 쳐서 밀친 것 밖에 없어요”을 반복했고, 판사는 익숙한 듯이 “밀친 게 폭행이에요”라 재차 말했다. 어린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다 보면 자주 보는 장면이다. 아이들 역시 가해자든 피해자든 억울함이 앞서서 울먹거리며 ‘쟤가 먼저 해서 저도 했는데요.’를 말한다. 그 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억울함이 앞선다. 그러나 법정은 아이들의 세계가 아니다. 마음을 읽어줄 어른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친구도, 또다시 생긴  배울 기회도 없다. 법정에서 벌금을 무는 이 순간에도 배우지 못한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해하며 다음 재판이 열리는 방을 기웃거렸다.



 두 번째 사건은 성추행과 사기였다. 지하철에서 젊은 여성의 팔목을 잡아끌어 와락 안은 할아버지는 “여성이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줄 알고 반가워 악수를 한 것”이라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본의 아닌 실수는 무엇일까. 스스로 말하면서 변명이 우습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 것인가. 그러기 위하여 자기 자신까지도 완벽하게 속여버리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빠르게 끝난 재판이라 곧이어 다음 재판이 이어졌다. 옆집에 사실 것만 같은 평범한 가정 주부는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섰다. 아주머니는  피해자 선생님께 최선을 다해 돈을 갚고 있다며 울먹거렸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번쩍 손을 드셨다. 할아버지는 “제가 피해잔데요, 완전 거짓말쟁이입니다!”라 외쳤다. 나는 아주머니의 울먹거림과 바들거림을 믿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모르는 일이다. 재미있게도 재판이 끝나자 사기를 친 아주머니와 피해자이신 할아버지는 함께 법정을 걸어 나가셨다. 한 줄로 나란히, 나란히. 법정에서 만나 서로에게 삿대질을 한 뒤 나란히 나가는 사이는 뭘까, 어떤 인연인 걸까? 그들의 서사가 궁금하다.


세 번째 사건은 살인미수였다. 둘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서 성인이 되어 함께 살 정도로 친했던 친구 사이에서 시작했다. 퉁퉁이같은 가해자와 홀쭉이 같은 피해자였다. 둘 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랬기에 더 끈끈했으리라. 홀쭉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방황을 했다. 그런 홀쭉이에게 퉁퉁이는 “네가 그러니 엄마가 죽지”라며 엄마가 죽은 것은 네 탓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홀쭉이가 퉁퉁이를 칼로 찔렀을까? 아니다. 홀쭉이는 “너도 같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겠어?”라고 하였다. 그리고 퉁퉁이는 이를 “뭐? 우리 엄마가 죽은 게 내 탓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대로 퉁퉁이는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나와 홀쭉이의 목에 쑤셔 넣었다. 그러곤 칼을 길게 빼어 그어내었다. 피가 솟구치며, 홀쭉이는 목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퉁퉁이는 놀라지도, 후회하지도, 울지도, 119에 신고를 하지도 않은 채 무관심해졌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살의로 칼을 찔러 넣은 뒤, 죽지 않은 친구에게 무관심해지는 건 어떤 심리 상태일까? 무관심을 틈타 홀쭉이는 도망쳤다. 그래서 살았다. 죽을지도 몰랐던 사람이 살아 법정에서 증언을 하였다. 둘 다 외국계 혼혈이라 통역이 필요한 재판이었고, 그 때문에 재판은 천천히 진행되었지만 재판은 역동적이었다. 끝내 퉁퉁이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였고, 마지막까지 홀쭉이는 그럼에도 친구를 용서한다고 말하였다. 피해자가 용서하고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는 재판 속에서 한 인간의 저열함과, 다른 인간의 포용심을 보았다. 홀쭉이가 무슨 마음이라고 감히 짐작하지는 못하겠으나,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참 잘 살아남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글을 쓰고 나니 도파민 분출을 위해 재판을 보러 가는 것은 어느 시절 인간동물원을 구경하던 구경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재판은 서사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을 치열하게 서술한다. 일인칭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은 같은 사건을 가지고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의 조각이 합쳐지는 공간이 재판이다. 일인칭으로만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 데 합친 소설을 엿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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