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글에서 뿐일지라도, 실제로는 이런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맡기로 한 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편집자의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걸 알려주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 태도 말이다.
[에세이는 편집자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뜻밖의 기적’이 일어날 확률과 가능성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장르라고 나는 믿는다.] --편집자가 할 수 있는 게 많은 책이 과연 좋은 걸까? 그게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막상 내 글에 게으른 편집자가 붙으면, 편집자의 힘이 얼마나 중한지 알게 된다. 영화 지니어스를 보면 작가와 편집자의 합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책을 편집할 때 모든 영역과 순간에서 작가의 마음을 열심히 살핀다. 내가 좋아서 섭외하고 함께 작업한 작가가 나와 함께 만든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하고 오래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책은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전에 우리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인 작가는 그래서 내게 언제나 모든 일의 1 순위다.
지금 내가 만지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 낸 삶이고, 소중히 붙들어 온 기억이고, 때론 용기 내어 꺼낸 상처이기도 하다고. 그 상처가 함부로 다뤄졌다고 느끼지 않도록, 서툰 돌팔이 의사의 수술대에 올라 피 흘리지 않도록 최대한의 성의와 예의와 정중함으로 나는 교정지를 대한다. 이 책이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이라고, 이 책은 그냥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묻혀서는 안 될 책이라고.
에세이 편집자가 디자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태도는 아무 생각도, 의견도, 제안도 없는 것이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색무취한 편집자는 저마다의 삶과 스타일이 녹아 있는 에세이의 겉모습을 무표정하게 만든다. 그런 편집자가 만든 에세이는 전체적인 꼴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딱히 구석구석 뜯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대인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시, 소설, 인문서 등에서 작품의 의의와 가치, 이 책의 중요성과 시의성을 편집자가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이 소소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최대한 살에 와닿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책 작업을 할 때는 철저히 작가가 되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책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와 무게감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투여해 원고 작업을 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