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에 온 사람들

by 김오 작가

이곳 손님들은 작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2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바글바글 할 때가 빈번했다. 테이블이 다 차면 20여 명 정도가 되는데, 주문한 것들을 나르고 손님들이 전부 보이는 주방 앞 단체 테이블(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옆에 위치한 조그만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새삼 이 세계가 낯설게 느껴졌다. 공과대학에 여학생이 거의 없어서 수많은 남자들의 꽃이 된다던데, 어렴풋이 그러한 상황이 이해되기도 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바로 메뉴판을 가지고 가게가 원하는 곳으로 앉도록 스킬을 발휘한다. 메뉴 주문을 받는 데 있어서는 손님이 아무리 작은 소리로 중얼거려도 한 번에 알아듣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음으로 응답한다. 주방에 가서 삼촌에게 메뉴를 말하고 세팅한다. 신주쿠는 술을 주문하면 그 술을 다 마셔도 술병을 치우지 않는다. 그래야 손님이 나갈 때 혹시 내가 술병 계산을 잘못했어도 술병 수를 세어보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저 멀리서도 손님이 부족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채워준다. 부담스럽지 않게, 무심한듯하면서 다정한 나의 서비스에 손님들은 매료되어 간다. 아무리 술주정을 하고 진상을 부려도 나를 화나게 할 수는 없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한 태도로 깔끔하게 일을 해 나간다. 나는 완벽한 신주쿠 인간이다.

나의 귓가를 타고 흘러들어오기 좋은 제일 큰 테이블. 거기에 남자 3, 여자 3이 앉아 있다. 그중 스물한두 살 정도의 여자는 생물학적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동거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성적인 이야기를 희망차게 한다(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당시만 해도 이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도 여자가. 요즘에야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요즘보다 15년도 더 전이었다. 하물며 그 여자가 말하는 남자 친구는 함께 모여있는 무리들이 모두 알고 있는 친구였고, 그 여자가 이야기를 하고 그 무리에 합류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고개를 45도 정도 기울여 발그레한 볼로 웃는다.

신주쿠에 그녀가 있고, 내가 있다.


어느 청량한 새벽이었다. 사장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 폰을 만지는 걸 유난히 싫어했다. 간간히 시답잖게 오는 연락을 뒤로하고 카운터 쪽에 폰을 넣었다. 그걸 이십 대 초반의 한 여자가 봤다. 당시 내 폰은 제일 핫한 폰이었다. 사십만 원이 넘는 고가였으니 눈이 갈 만도 하다. 사장이 얼음을 사 오라고 했다. 근처 크oo 마트에 가서 이천오백 원을 주고 얼음을 샀다. 손님이 가려고 계산을 했다. 손님이 나가고 테이블을 치우려는데 거울이 있다. 서둘러 거울을 쥐고 밖으로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는 손님을 불렀다. 듣고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았다. 불러 세우니 눈빛이 흔들린다. 나는 손님에게 거울을 놓고 갔다며 밝게 인사했다. 손님은 받는 둥 마는 둥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신주쿠에 내 폰도 없었다.


신주쿠 손님 중에는 종종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 냥 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게는 장식해놓은 도자기, 잔이 있었고 크게는 내 폰도 있었다. 남의 것과 내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법 술집. 나는 내 것이었을까, 너의 것이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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