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합니다.

by 언더독

왜 어떤 사람은 백수가 되고, 왜 어떤 사람은 성공자가 될까. 수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외부의 조건 말고, 개인의 원인 요소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외부의 조건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은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설득하는 글이 아니다. 과거에는 어떠한 성공론 또는 그 과정에 있어서의 어느 논리에 대해 맞는 것은 맞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주장했었다.


얼마전 '불가지론'이라는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유형 또는 무형의 어떤 것을 접하고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모두 달라서, 그것의 실체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빨강색 그림을 보고 누구는 붉다 누구는 뻘겋다 누구는 빨갛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그것의 실체 색깔을 정확히 캐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논리적인 내용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더라도, 남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냥 내용을 던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 하겠지 싶은 것이다.


이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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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체에 등장하는 자수성가 인물들을 보면, 모두 과거 아주 큰 고통을 겪었다. 큰 빛이나 돈을 다루며 스트레스를 견뎠다. 또는 다른 인간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여러번의 실패를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좌우지간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공한 인물이 되어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뻔한 내용을 읊는 이유를 잘 풀어내보려 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과거에 가난 등의 처참한 환경, 사악한 인간으로부터 큰 데미지를 겪었다. 데이터가 그렇다.


이것이 가장 실제적인 개인의 성공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원인이겠다는 것이다. 나는 성공을 염원하는 청년으로, 나또한 그러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동기부여 또는 긍정이니 끌어당김을 한다느니 미라클 모닝이니 하는 것들은 돈 벌려고 하는 마케팅이라고 본다. 전혀 핵심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일정한 자극에 적응되면, 그것보다 더 큰 자극이 들어와야 기별을 느끼게 되는 생명체의 특성을 '역치'라고 한다. 역치는 좋은 방향 그리고 나쁜 방향 가리지 않고 모두 적용된다. 쾌락, 고통 두가지 모두 역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성공한 사람, 크게 실패한 사람 두쪽 다 역치의 절대값이 크다. 전자는 보통 고통의 역치가 크다. 후자는 보통 쾌락의 역치가 크다.



쾌락의 역치가 큰 것보다는 아예 역치가 작은 사람이, 역치가 작은 사람보다는 고통의 역치가 큰 사람이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역치값을 키우려고 자학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정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이게 실현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논리적으로 맞는 내용이 현실에서는 대체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성공자들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핵심적인 역치값 상향은 모두 강제적인 고통에 의해서 올라갔다. 개개인이 바라건 바라지않건, 뭔가가 덮쳐왔거나 뭔가가 나를 뺑소니 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걸 자학해서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어떤 보통의 사람이 이런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겠는가. 다만, 이렇게 큰 고통을 통해 임계점을 벗어나버린 역치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데미지가 회복되는 시점부터 폭주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모기가 물려 가려운 곳을 자꾸 손톱으로 찍어누르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설명해야할까. 더 큰 역치값을 찾는 것이 성공에 다다르는 길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뒤, 실제로 더 큰 역치값을 자신의 삶 앞에 가져다 놓으려고 기를 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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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구체적으로 분리해서 설명해보고 싶다. 고통은 종류가 있다. 리스크, 스트레스, 분노이다.


나는 갈수록 더 큰 리스크를 감내하려고 고민하고 계산해보고 따져보고 대비하고 계획한다. 나보다 더 큰 리스크를 감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둔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들을 해낼 수 있으며, 성공적으로 진행된 표본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그들 주변에서 집적거리며 귀찮게 만들게 된다. 실제로 나는 자산 9할 이상이 투자에 편향되어 있으며, 그게 성에 안차서 남은 1할로 사업을 계속 시도한다. 대부분의 큰 성공자들은 여기에 레버리지까지 쓴다. 이것이 리스크 역치이다. 계속해서 애를 쓰게 되는 섹터이다. 그릇을 강제로 늘린 뒤 버티고, 단단해지면 또 강제로 늘리고 버텨본다.


스트레스는 조금 다르다. 의도적이지 않다. 언젠가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무언가 머리 아픈 것에 대단히 몰두하고 있지 않으면 지루함에 자폭하는 기질이 생겼다. 그래서 남는 자투리 시간을 견디지 못하며,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중요한 문제거리가 아닌 것에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정신이 괴롭다. 중장기 투자를 해오는 나에게는 투자가 스트레스 역치값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 사업을 성공시켜보려고 덤벼대는 것 같다. 사업은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고, 모든 생명력을 다해 싸워야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듯 더 큰 스트레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되려고 특별히 애쓰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분노. '분노 역치'는 특별하다. 이건 변하지가 않는 것 같다. 타고난 기질 그대로 죽을 때까지 가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분노하게되는 기준선은 일정하다. 다만, '스트레스 역치'에 의해 이것이 까먹어질 경우가 많다. 이게 참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예를 들자면, 사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생명력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소모된다. 모든 에너지는 이미 불타버렸기에, 더이상 분노할 연료가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성격이 더러운 것을 잘 알고 있는데, 그런 나조차도 사업을 할 때에는 이성 놓고 크게 분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격이 온화해진 것이 아니라, 화낼 만한 기력이 남아있지가 않아서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람이 노상 차분하게 된다. 이성을 계속 지니게 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격수양과 종교의 힘, 명상, 마음공부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위의 3가지 역치가 높아질수록 두번타는 귀뚜라미 보일러 마냥 효율적인 연쇄 선순환을 일으켜, 더욱 성공에 빨리 다다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의 슈퍼차저, 터보차저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의 역치가 낮은 사람보다는, 고통의 역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리고 걸리는 속도 또한 크게 차이가 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끼리끼리 모이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역치값 상향에 관성이 붙기 때문이다. 그게 2차함수인지 몇 차함수인지는 모르겠으나, 대강 느껴봐서는 그렇다. 갈수록 더해진다. 이게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려우나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본다.


스물아홉의 끝물인 나의 상태는 이러하다. 나는 진정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기 위해 술, 여자, 병원, 항우울제, 파티, 여행을 택하지 않았고, 철학과 성공 그리고 명예를 택한 청년이다. 스토이시즘과 실존주의를 채택했고, 투자와 사업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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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떠한가.


그리고 여러분은 안녕한가.


혼란스러움에 고통스러워 하는 2030은 이쯤되면 차분하게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여러분들과 같은 시기를 살고 있는 또다른 2030이다.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 서적이나 컨텐츠에 나오는 주류 내용들은 사실 큰 쓸모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이든 구체적일수록, 논리정연할수록, 실제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일수록, 주관이 아니라 객관일 수록, 실용적일수록 좋아라하는, 아주 보수적인 경향의 캐릭터이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젊은 꼰대'라고 표현하는데,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실제 효용에 대해 확실히 따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말이 되면 말이 된다고 말하며 좋아하고,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면 말이 안된다고 싫어한다. 그런 사람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성공론과 스트레스, 분노, 리스크 등의 각종 고통에 대하여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이것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실용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혼란스러움을 진정 잠재우는 요소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이러한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가까운 과거 그리고 오늘날의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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