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 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 일 마치고 집 돌아오는 길에 젊은 맹인 남자를 보았다. 맹인 지팡이를 가지고 있기에 유심히 보면서 지나가고 있다가, 내가 그 사람 팔을 빠르게 붙들었다.
비가 많이 오고, 퇴근 시간에 차도 많이 다니니 소리 분간이 어려웠을거다. 인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못 잡고 있기에, 차도로 들어가 버릴까 싶어 그렇게 했다.
작은 차도를 건너 다음 인도 블록까지 팔을 잡은 채 함께 했다. 남자가 편의점을 찾기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갈 길을 갔다.
오늘은 그 맹인이 내게 글의 소재를 주었다.
몇 시간 전에 본 젊은 남자 맹인의 외모는 정리정돈이 된 깔끔한 모습이었다. 면바지에 셔츠에 서류 백팩을 메었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편의점 문 앞에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목소리는 명확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이었다. 얼굴에도 그늘이 져있지 않았고, 안색도 좋았다.
오히려 나보다 얼굴이 밝아보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안전하게 보내고 홀로 사람 뜸한 골목길을 걸어오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는데.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이 맹인이라서 이 글을 볼 수가 없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그 젊은 남자처럼 정돈된 삶을 살 자신이 있는가.
그 남자처럼 그늘이 없는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꿈도 꾸지 못할 삶을, 나는 살고 있다. 여러분들도 그렇다. 이 글을 폰과 컴퓨터를 통해 읽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몇 시간 전의 나는.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문제가 잘 안 풀리고 있다 생각하며 오만상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순간 상당히 쪽팔렸던 것이다.
집 화장실에 들어와 샤워기에 물을 틀어놓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벌거벗은 채로 절레절레를 했다.
다들 알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삶도, 또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의 피곤한 라이프스타일이다. 성공자, 부자, 승리자가 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 삶에 재미 요소는 발버둥 중간중간 태우는 담배 몇 까치가 전부이다. 여자도, 여행도, 명절도, 밤낮도, 주말도, 공휴일도 신경 끈 삶이다.
다른 또래 남자가 보기에도 학을 떼는 고강도의 삶이기에, 또래 보통 여자들은 이해의 범접조차 하지 못한다.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나와 오래 함께한 한 줌의 친구들과, 자수성가해 본 소수의 어른들뿐이다.
물론, 전혀 불만 없다. 내가 원해서 이 삶을 살고 있고, 나는 언제나 내가 100%를 다하고 있는지 의심을 한다.
물리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전혀 없는 삶이라서 감사함을 잊을 때가 자주 있다. 항상 전쟁이라고 생각하며 사니까. 특히 요 며칠간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걸 신이 알고 저 사람을 내 눈앞에 보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일을 더 많이 하고 운동을 더 많이 한다. 말하자면, 짐승이 된다.)
이 글의 말미에는 이런 내용을 쓰겠다.
진정 물리적인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런 불꽃을 가슴에 품고 있는 후발주자라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처절한 갈구성을 동시에 극한으로 추구하는 아주 역설적인 정신 모델을 가져야 한다. 완전히 모순된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취할 수가 없다. 절대로.
간절한 사람 중, 가장 간절한 이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현재에 감사하라는 말만 하는 먹물 노땅들 말을 완전히 무시해라. 미안하지만, 그거 쥐뿔도 모르면서 하는 무책임한 생각 짧은 조언이다.
2024년 저성장 저출산 고세율 대한민국의 조건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이 시대에 지금 청춘의 나이로 직접 뚫고 가고 있어서, 제일 실전적으로 잘 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은 '95년생 에세이'이다.
난 명백한 성공을 이루지 않으면 사는 것에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이기에, 정말로 모든 걸 걸고 있다.
Fatboy Slim - Right Here, Right Now
https://www.youtube.com/watch?v=ub747pprm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