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강연 <빛과 실> 문장을 읽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강연 <빛과 실>"
본격적으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친구들을 초대해 독서 모임을 만들었던 그 해,
한강 작가님이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셨다.
강연을 하시던 그날 밤, 그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유독 내 마음속을 관통한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의 한국 역시 정치적인 혼란 속에 있었다. 세계 곳곳에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가 가득한 유기견 센터마저 늘 일손이 부족하다.
그런데 나는 비교적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따뜻한 문장을 읽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마음은 늘 내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에서 멈췄다. 내 안락함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잔인한 현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기껏해야 몇 푼 안 되는 기부, 가끔 베푸는 작은 친절은 ‘약자의 편에 서고 싶다’는 큰 포부같은 생각과 부딪히며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인간은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강연을 듣고 곧장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는 구역질을 했다. 폭력에 저항하는 이 인간이 이상하게도 오히려 나한테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결국, 내가 붙잡고 있던 질문의 답이 그 안에 있었다.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폭력을 거부하다가 마침내 극단적으로 나무가 되기를 택한다.
결국 우리는 나무가 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거부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폭력에 반대 편에 선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들의 선택과 태도 앞에서 경외심을 느꼈고, 그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아, 사람은 모든 것을 거부할 수는 없어도 반대편에 설 수 있는 용기는 가질 수 있구나.
그만큼 용기 내지 못함에도 이 세상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사랑이구나.
내 마음속에 있던 양가감정도, 가끔씩 이어오던 작은 선행도 그런 것이구나.
작가님이 내게 조용히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것도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