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정아,
D의 병이 치유된 지 꼬박 일 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십 년 넘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여름 캠핑을 떠났단다. 그동안 그들과 캠핑을 자주 가긴 했지만 12월 25일 즈음에 떠나는 여름 캠핑은 모임에서 가장 길게 떠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단다. 그래, 넌 매년 12월 25일에 예배를 드렸지만 나는 매년 놀러 다녔단다.
그 해, 그날 그 오후에도 우리는 화창하고 파란 하늘 아래서 초록이 쨍하게 빛나는 잔디밭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그때 불현듯 나는 네가 떠올랐어. 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
“A.K, 교회 가서 좋은 사람들 좀 만나봐.”
내가 여기서 살면서 사람들과 한두 번 부딪친 일을 네게 털어놓으며 속상해할 때마다 넌 내게 말했어.
“A.K, 주위에 어떻게 예수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니? 하나님을 믿을 수 없거든 그냥 교회라도 다녀보면 어때? 거기서 네가 다른 부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 캠핑장에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네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단다.
‘순정아, 교회 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했지? 그런데 어쩌니, 내겐 이미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과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고 이젠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야. 뭐하러 교회로 가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수고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품은 그 순간, 그 좋은 사람들 속에서는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단다.
다음날, 캠핑장을 떠나는 날이었는데 친구가 씩씩대며 내게 다가왔어. 그녀는 자신의 남편, T가 그러는데 내가 모임의 또 다른 멤버와 함께 자기 욕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내가 지었다는 표정까지 흉내 냈어. 그 표정은 정말 비열하고 악한 모습이었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간이 콩알만 해서 남 앞에서 그 사람 흉보는 짓은 감히 할 생각조차 못하잖아. 게다가 무슨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즐겁게 잘 지내던 모임에서 친한 사람 욕을 별안간 내가 왜 하겠어?
순정아, 여기서 그 얘길 자세히 다 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진작에 그를 용서했는데 길게 쓰면 그에게 미안할 일이 될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한 게 뭔 줄 아니? 그게 바로 그 순간이었어. 내가 이 좋은 사람들 이제는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인데 뭐하러 교회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나 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내가 자신의 흉을 보는 환각을 본 거야.
그 일은 겉으로는 매우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어. 모임의 평화를 위해서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우리의 모임과 캠핑 여행은 계속 이어졌어. 하지만 그 일은 다른 사소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면서 나는 모임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됐어.
순정아, 기억나니? 캠핑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네게 말했을 때 너가 말했어.
"A.K, 그 사람이 환상을 본 이유가 있어. 너도 그 이유를 알지?"
물론 지금은 그 이유를 알지만 그때의 나는 그 해프닝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그 일이 있고 난 뒤 몇 달 후 모임에서 T가 지나가는 말로 그때 일을 언급했어. 그때 그 캠핑장에서 너무 이상했대.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고 원래 자기 모습이 아니었대.
그 일 있은 후 나는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어.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개 딸이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고 말해. 사람들이 축하할 일이라고 말하는데 얼굴로는 쓴 미소를 짓고 눈에는 질투가 번쩍여.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런 표정이 슬로모션처럼 느려지고 확대돼서 눈에 들어와. 곧이어 아무개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놓고 대화가 이어지는데 순간 소리가 묵음으로 처리되면서 그들의 생기 있는 표정들이 과장되게 보여. 카메라가 줌 아웃되고 시선이 버드 아이뷰로 되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다른 시작에서 보여.
그래서인지 나는 그즈음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내 안으로 파고들었어. 내가 붙잡은 것은 ‘뉴에이지’였어. 가볍게 오프라 윈프리를 시작으로 웨인 다이어, 루이스 헤이, 에쾃 톨레 등이 쓴 책들을 읽었어. 그런 뉴에이지 사상의 대부분은 ‘mind creates reality(마음 혹은 생각이 실재를 창조한다)’였어. 그들은 ‘네 안에 신이 있다. 네가 신이고 신이 너다. 네 안에 잠자고 있는 신을 깨우면 넌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어. 원하는 것을 이미지로 그리고 긍정적인 말로 미래의 희망을 선포하면 누구나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고 주요 방법으로 명상, 요가, 최면술, 마인드 컨트롤 등을 언급했어.
알아, 네가 지금 얼마나 답답한 표정을 지었을지 눈에 선해. 솔직히 그런 책들을 읽으면 당장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희망찬 결심을 하게 되더라.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데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겠니. 나는 내 삶을 180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뜬금없는 희망에 부풀었어.
나도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노트에 써보기로 했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서 언제 내가 가장 행복했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했어. 언니들 덕분에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누런 종이로 된 손바닥만 한 책들이 많았어. 이반제니소비치의 하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죄와 벌 등의 고전 도서들을 읽었는데 재밌어서 읽은 것은 아니었어. 책은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게 해주는 도구였어. 동기가 어떻든 간에 그렇게 내 독서습관이 잡히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과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이 되었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였나 생각해 봤어. 대학 때 행복했던 기억도 많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내가 27살 때, 여의도에 있는 시나리오 학원에 다닐 때였어.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고 허접하지만 처음으로 시나리오라는 걸 써보기도 했어. 그들과 함께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을 놓고, 하늘에 별이 시집살이하고 연결이 되는 신비로운 이야기의 만찬이 너무 좋았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행복했던 그때가 남편은 가장 싫었대.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대나 뭐라나. 결국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시나리오니 글쓰기니 하는 단어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지. 아무튼 그런 추억을 끌어모으다 보니 잊고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어. 초등학교 6학년 학급 발표회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말도 안 되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콩트를 썼고 그걸 반 친구 몇 명이 학급 아이들 앞에서 연극으로 공연했었어. 내가 쓴 대본의 가장 중요한 대사가 남자아이 입에서 나왔을 때 정말 부끄러웠어. 내가 정말 저렇게 유치하게 썼단 말인가 속으로 놀랐고 그래도 포인트 대사인데 반 아이들 모두 빵 터지지 않고 그저 몇 명이 키득거렸다는 사실에 자책했었어.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렇게 해서 내 첫 로맨스 소설 <Falling in love like a Korean drama> 이 탄생하게 된 거야.
어차피 영어로 출판할 생각이어서 한글로 쉽게 써서(그건 변명이고 마음만 급해서 문장을 다듬지도 않았어) 미국에 있는 번역가에게 맡겼고 필명으로 아마존에서 판매를 시작했어. 그 책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쓰고 출판하는 그 모든 과정이 힘들면서도 너무 행복했어. 첫 소설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일 수 있는지 그때는 알지도 못하고 나는 헛꿈을 꾸었어. 책을 세상에 내놓기만 하면 밀리언에어 정도는 아니라도 ‘글 써서 먹고삽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될 거라는 그런 가당찮은 생각을 했었단다. 음식점 개업하면서 사장이 자기 가게가 망할 거라고 장담하며 개업하지 않듯이 나도 책만 내면 그냥 잘 팔릴 줄 알았어. 왜 나는 내가 책을 낸 순간부터 내 인생이 특별하게 변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순정아, 그때는 몰랐던 거야. 인생을 바꾸는 건 명상이나 선포, 긍정적 마음, 비주얼 라이징, 책 한 권 쓰기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그건 마치 의사가 되길 꿈꾸는 청년이 의학서적은 안 보고 마사지사, 약사, 간호사, 생물학자 등 유명 전문가들만 찾아다니면서 꿀팁을 모으는 것과 같은 거였어.
그렇게 뉴에이지 사상이 허망한 것이더라.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이를테면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거나 지적장애로 인해 명상이나 이미지화나 긍정적 마음도 못 먹는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거잖아.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인간이, 그런 마음도 먹을 수 없는 인간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절망뿐인 거잖아. 내가 신이고 신이 곧 나이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거야. 내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신의 은총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 테니까.
네게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실은 그때 나는 19금 소설도 썼어. 그게 꽤 돈이 된다고 들었거든. 이번에는 한국 전자책 시장을 겨냥해서. 실제로 아마존에서 출간한 책 보다 잘 팔리긴 했어. 19금 소설을 내놓을 때는 또 다른 필명을 썼어. ‘19금 소설이 뭐 어때서? 어차피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최선을 다하면서 살 게 돼있어. 19금 소설을 쓰거나 읽는 게 뭐가 나빠?’라고 생각하면서도 필명은 또 다른 이름으로 냈으니 속으로 떳떳하지 못했던 게 확실해. 물론 그 책은 오래전에 판매 중지했어.
뉴에이지 사상도 책을 쓰는 일도 혼란스러운 나를 구해주지는 못했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나는 혼란스러웠고 외로웠고 그리고 진실을 갈구했어. 그래, 진실 말이야, 진실. 내가 놓치고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것. 나는 세상의 진실을 오랫동안 찾고 있었어. 중학교 때는 절에도 가봤고 더 커서는 성당에서 세례도 받아봤고 뉴에이지 사상에도 빠져봤고. 진실이 아닌 진리를 찾고 있던 것인데 그때는 그 차이도 알지 못했어.
나는 궁금했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또 다른 뭔가가 있어. 그게 무엇이지?’ 실은 내가 그런 의문을 품게 된 최초의 사건이 있었어.
1984년이었어. 당시 집에는 중학교 3학년인 넷째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인 나뿐이었고 TV에는 유리겔라라는 남자가 나와서 손가락 하나만을 수저 모가지에 놓고 살살 문지르기만 하면 수저가 댕강댕강 부러져 나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 언니와 나는 입을 떡 벌리고 그 장면을 보았어. TV 속의 유리겔라가 시청자도 따라 하라며 당장 수저와 고장 난 손목시계를 가져오라고 말했어. 그때 나는 서랍 속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손목시계가 생각났어.
나는 그것을 가져다가 언니에게 주었어. 시계는 유리에 실금도 가 있고 여전히 고장 난 상태였어. 언니와 나는 우선 유리겔라가 시키는 대로 손가락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수저를 구부러뜨리려고 애를 썼어. 언니의 수저는 낫처럼 휘어졌지만 내 수저는 그저 한 30도 정도 기울어졌을 뿐이야. 언니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 다음 순서로 언니는 유리겔라가 시키는 대로 손목시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감쌌어. 나는 그런 언니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어. TV 속 유리겔라는 손목시계 초침이 다시 움직일 것을 확신하며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면서 시계에 집중하라고 말했어. 언니는 눈을 꼭 감고 손목시계를 쥔 손을 꼭 잡았어. 나는 언니의 손위에 내 손을 겹치고 눈을 감았어. 잠시 후 우리는 조심스레 손을 떼고 시계를 보았어. 돌연 시계의 초침이 움직였어. 언니는 화들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고 나는 시계를 주워서 확인했어. 시계의 초침은 째깍째깍 잘도 움직이고 있었어. 언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어.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나는 수시로 시계가 잘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했어. 시계는 2주가량 살아있다가 죽었고 그 후로 우리는 구부러진 수저나 시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어. 물론 나도 나중에 유리겔라라는 초능력자가 사기꾼으로 밝혀졌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언니와 내가 경험한 것까지 모두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었어.
순정아, 때때로 우리의 경험들은 우리가 신념이나 생각을 가지는데 결정적 근거자료가 되잖아.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 겪었던 작은 사건들은 내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어. 하지만 그 의구심을 예수님과 연결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아.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서 작은 누명을 쓴 경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겐 그렇지 않았었던 것 같아. 게다가 그 일이 있었을 때 내 편이라고 생각한 남편은 나를 위로해 주는 대신에 ‘왜 너한테만 그런 일이 일어나?’라고 말했어. 그의 말속에는 은근히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지 않겠냐’라는 비난이 깔려 있었어. 세상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내가 문제다 라고 그렇게 들렸어. 그쪽 부부는 한마음 한편이 돼서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입을 모으는데 남편은 그 일이 ‘우리’에게가 아니라 ‘나’에게만 일어났다고 말하는 거잖아. 그래서인지 나는 내 성격과 행동에 대해 더욱 자신이 없어졌어.
더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남편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었어. T라는 사람이 내게 특별한 관심과 친절과 호의를 받고 있다고 느꼈더라면 그가 그런 환상을 보지는 않았을 거야.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인가 그는 내게 서운한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어. 그의 환상이 완전한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라는, 내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해. 왜냐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건 사람들이 기이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다는 거야. 특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건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본인 책임이 없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서로 반반 책임’이라고 주장할 때는 본인 잘못이 더 많은 경우가 많고. 우리는 그렇게 자기애로 왜곡된 안경을 쓴 채 살아가는 것 같아.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되었고 요즘은 ‘사려 깊고 사랑이 많은 A.K’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으니, 모든 일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인정할 수밖에 없더구나.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상대방에게 맞춰서 대화를 하는 습관이 있었어. 예를 들어 돈에 민감한 사람과 대화할 때 쇼핑 얘기가 나오면 ‘저 그거 OOO에서 샀어요’라고 말한 후 이렇게 덧붙이는 거야. ‘거기가 00보다 30퍼센트 싸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라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그 사람에게만 하는 거야. 지인에게 영화를 추천해 줄 때도 나는 재미없어서 보다가 말았지만 천만 인구가 봤다는 영화를 추천했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봤으니 분명 그녀도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이었어. 남편은 운전할 때 양보는 잘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욕은 안 하지만 반드시 불평을 터트리는 것을 잊지 않아. 나는 운전할 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운전하던 말던 입을 다물고 있는 타입이지만 남편의 옆에서는 나도 같이 투덜대며 한 마디씩 거들어. 속으로는 ‘왜 저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서 운전하지?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싶지만 남편의 스트레스에 동감을 표현하면서 그를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한 마디 거드는 거야. 그런데 이런 나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
몇 년 전에 서울에 갔을 때 순정이 너와 만나는 자리에 K도 있었잖아? 집에 돌아가는 길에 K가 웃으며 말하더라.
“A.K, 너 카멜레온 같더라. 너의 다른 면을 봤어.”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대꾸를 못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순정이 너와 있을 때 우리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나 농담이나 분위기가 K를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던 거야. K는 나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던 거고. 그때 알았어.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태도와 대화 내용을 선택한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수준(?)을 평가하고 그 사람이 이해하고 동감할만한 말을 하는 거야.
남편이 과묵하다 보니 우리의 대화가 뜸하면 그는 내게 말해.
“왜 이렇게 조용해? 얘기 좀 해봐.”
그러면 나는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해. 실제로 내 의견과 반대되는 생각일지라도 재밌겠다 싶은 얘기도 막 하는 거야. 남편은 키득키득거리다가 빵 터지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내 얘기를 듣다가 인상을 쓰더니 말했어.
“어휴,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그의 반응에 놀랐어. ‘이 뉘앙스의 차이를 파악했다고? 그걸 남편이 이해했다고?’
순정아, 이제 알겠지?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광대 같은 짓을 해왔는지? 남편이 내가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왜 내게 ‘그런 일은 왜 너한테만 일어나?’라고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지? 그건 바로 내가 그에게 보여준 나의 말과 행동의 결과였어.
예를 하나 더 들어볼게. 오래전에 부부동반 모임을 갔을 때의 일이야. 엄마들 사이에서 버진 올리브 오일은 고온에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어.
“A.K 는 그거 모를걸요?”
물론 나는 알고 있었지. 비염과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 때문에 누구보다 건강, 음식 관련 책이나 기사를 많이 읽고 공부하는 게 나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남편 앞에서 요리책을 읽거나 레시피 공부하는 것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어. 오히려 나는 남편에게 ‘가사노동의 대부분이 요리와 청소인 줄 알았다면 감히 결혼하지 못했을 거야’, ‘나는 아이가 대학을 가서 집을 떠나면 그때부터 주방 문을 닫을 거야. 일종의 은퇴인 셈이지’, ‘언젠가는 음식을 알약으로 대체하는 날이 올 거야’ 등등의 말들을 해왔어. 그러니 그의 머릿속에 나와 요리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그려졌겠니? A.K는 요리를 싫어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니. 현실의 나는 매끼 새로운 메뉴로 식탁을 차리고 남은 음식을 다음 끼니에 데워먹는 건 생각조차 못 하고 한 식탁에 2, 3개국이 섞인 요리를 30분 안에 차려 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머릿속에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고 버진 올리브 오일과 퓨어 올리브 오일의 차이점을 모르는 여자’라는 인식이 심어있던 거야.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뱉는 말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거나 상대방의 수준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짓을 그만두었어. 상대방에게 맞춰 대화하는 습관은 한편으로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아이가 사람들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도 깨달았거든.
순정아,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얘길 해줄게. 그때 셋째 언니와 형부를 만났는데 명예퇴직을 앞둔 형부는 그즈음 이런저런 생각들로 고민이 많으시더라. 형부는 하루에 17시간씩 30여 년을 일하면서 회사에 영과 혼과 육체를 다 갖다 바쳤어. 언니 역시 일하면서 애 키우고 동시에 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에 서울 외곽에 주택 한 채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이제 형부가 은퇴 후 어떤 삶을 준비하나 궁금해서 물어봤어.
“형부, 퇴직하면 뭐 하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형부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어.
“응, 찾았어. 사기 치면서 살 거야.”
난 내 귀를 의심했어.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형부가 덧붙였어. 그는 마치 세상을 강타할 획기적인 발명품을 혼자 개발하다가 백만장자 투자자가 만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어.
“사기 말이야 사기. 원래 다들 사기 치면서 살고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글쎄 여태 나만 몰랐더라고. 나도 퇴사하면 사기 치면서 떵떵거리며 살 거야.”
나중에 들었는데 오래된 주택을 산 형부는 주택 수리업자에게 집수리를 맡겼고 불행히도 그 사람은 형부의 돈을 몇 차로 뜯어낸 후 잠적해 버렸대. 그나마 가지고 있던 현금을 형부는 그렇게 날렸더라고. 걱정 마, 순정아. 형부는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퇴사 후 자영업을 해볼까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더라. 그 옆에서 언니는 이 사람이 이제 더 크게 당하는 거 아닌가 마음을 졸이고 있고.
사기꾼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우리 여섯 자매는 숫자가 많은 만큼 정말 다종 다양한 형태의 사기꾼들을 만나왔단다. 그중에는 허접한 책 두어 권을 손에 들고 다니며 서울대생 흉내를 내서 여자의 마음과 돈을 훔쳐 9시 뉴스에 등장한 로맨스 사기꾼도 있고, 쓸모없고 비싼 쓰레기를 팔아먹은 피라미드 사기꾼도 있고, 선을 본 후 두세 번째 만남에서 물건을 팔아먹은 소개팅 사기꾼도 있고,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어느 날 찾아와 투자 운운하며 아파트 한 채 값을 가지고 사라진 혈연 사기꾼도 있단다.
우리 자매들이 특별히 세상 물정에 서툴러서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만큼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찬 것이지. 언제나 악이 문제지 선이 문제겠니. 엄마는 오래전 달아난 사기꾼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 머리채를 잡기는커녕 시장하겠다고 밥을 해 먹이려 해서 아빠의 속을 뒤집어 놓았대. 20년도 넘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빠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저렇게 사기를 당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나는 화가 나기는커녕 슬그머니 미소가 새어 나와. 내가 사기를 치는 가정의 일원이 아니라 당하는 쪽의 가족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순정아,
그동안 나는 나의 이성과 감정에 의지하여 세상을 살려고 노력했어. 넌 진작에 오류와 한계를 지닌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인지하고 ‘절대 진리’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어. 세상을 믿지 못하겠으니 더욱 속으로 외로움이 깊어갔어. 한국에 가서 내 탄생부터 내 존재를 지켜보고 내 존재 그대로 나를 인정해 주는 가족들 옆에서 살고 싶었지만 아이 학교와 남편 직장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환경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서 옆 나라 호주로라도 떠나고 싶었는데 성실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남편은 거기나 여기나 사람 사는데 똑같다며 꿈쩍도 하지 않고. 나는 숲 속에 들어가 혼자 자급자족하면서 동물들을 키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내게 사랑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아내와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감마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포기란 모르는 분이시더라. 그 많은 싸인들과 경이로움과 기적에도 내가 꿈쩍을 안 하는데 ‘이런 미련 곰탱이를 내가 뭐에다 쓰겠다고. 관두자 관둬’ 이러지 않으셨어. 이번에는 좀 더 강력한 것으로 날 끌어당기셨어. 도저히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것으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