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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와 함께하는 여름』읽고

얇고 넓은 독서가 준 영감으로 쓴 짧은 이야기

"가자! 걷기, 집, 사막, 권태, 분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이 시구는 아르튀르의 신조다. 삶은 나의 사막, 권태는 나의 고통, 걷기는 그 치유법, 분노는 그 자극제다. 이것이 도주하는 삶을 안긴다. 죽음을 향해, 말 틈으로, 모래밭을 가로질러, 태양 아래로, 다급히 뒤쫓는 그림자와 함께. <본문 중에서 205p>


아르덴에서 아덴까지, 랭보는 고통과 더불어 길을 걷는다. 고통은 밤을 요구하며 절대 얌전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감각을 교란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질서를 전복하길 바란 이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랭보는 추락에서 즐거움을 맛보았을까? 랭보의 모닥불에(멀리서) 불을 쬐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의문을 품는다. 아르퇴르, 너는 고통을 어떻게 했나? 고통을 좋아했나? 아니면 피하려 애썼나?

고통 없이 쓰인 시는 뭘까? 유행가다. <본문 중에서 229p>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아르튀르 랭보)


여름 방학 시작할 즈음이었다.


아침부터 더위에 지쳐 늘어진 엿가락 같이 선풍기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출근하는 엄마는 방학이 되면 신문 사설을 읽고 요약하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를 내줬다.

뭐 그렇게 강제로 시작된 엄마표 숙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신문을 읽고 있으면 어른의 세계에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숙제를 완벽하게 해 낸(엄마가 보기에) 다음 날은 내 책상 위에 오백 원짜리 지폐가 있었다. 

'딸, 사랑해'와 함께...


용돈벌이로 시작한 신문 읽기는 중학생이 되면서 고상한 취미이자 특기로 자리 잡았다.


벌레처럼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오는 한자는 옥편이 누렇게 되도록 뒤졌다. 덕분에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마치 뉴스 앵커처럼  읽게 됐다. 


낯선 나라 이름이라도 나오도 당황하지 않고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 가면 언제가 그곳을 여행하는 상상을 했다.


아이 답지 않게 사회 문제나 위인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기라도 하면 '오~~~'하는 환호가 주위에서 쏟아졌다. 

"뭐, 이쯤이야." 

별일 아니라는 듯 한 쪽 어깨를 으쓱였다. 


날이 갈수록 신문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아침마다 빳빳한 신문을 펼칠 때면 석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콕 쏘면서 어질어질한 그 냄새가 많이 좋았다. 종종 이른 아침부터 미쳐 마르지 않은 잉크롤 묻히며 신문에 코를 박고 '킁킁' 거렸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내 등짝을 후려치곤 했다.

"저, 저, 뱃속에 회충이 있어 지름 냄새에 환장하는 것 좀 봐!" 


신문 성애자인 나를 재미있어하는 친구가 생겼다. 중학교 첫 짝꿍.

'멋진 오빠들이 많다'는 말에 낚여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 아니 낚인 척했다. 일요일 아침은 유난히 심심했다. 신문이 없는 날.


얼마 지나지 않아 늘 기타를 둘러매고 다니던 교회 오빠를 두고 짝꿍과 어설픈 삼각관계에 휘말렸다. 성적을 곤두박질쳤다. 

엄마는 일요일마다 대문 앞을 지키게 됐고 때문에 교회 오빠를 못 보게 되었고  크리스마스 무렵 오빠의 코트 주머니엔 내 친구의 손이 들어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친구와 여전히 우정을 나눴지만 마음은 지옥을 헤매고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고 그렇지만 그래서 그러므로...


겨울 바다에 둥둥 떠있는 유빙 한가운데서 수영하는 것 같은  겨울 공기 기세에 눌려 방구석에서 꼼짝 않고 뒹굴거렸다.

그날도 휘적휘적 하루를 보냈다. 해 질 녘이 돼서야 멸치 똥냄새가 가득한 신문을 펼쳤다. 대충 읽는 둥 마는 둥 하는 통에 종이 넘기는 소리만 요란했다.


'멋진 오빠'를 닮은  외국 남자 사진이 확 시선을 끌었다. 사진 아래엔 내 한 뼘보가 더 긴 시가 사진의 배경마냥 늘어서 있었다.

....

오 계절이여, 오 성이여!

결점 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


시의 절반도 지나기 전에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두루마리 휴지를 한 통을 쓰도록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우는 거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불고기 반찬 저녁 밥상도 소용이 없었다. 눈물은 대성통곡으로 변했다.

 "밥 안쳐먹고 왜 종일 눈물바람이냐?"

내 통곡소리가 커질수록 외할머니의 등짝 스매싱 강도는 같이 세졌다.


나는 눈물을 달고 살았다. 

심야 라디오에서 다정한 DJ 멘트에 눈물이 주르륵, 드라마 주제곡을 듣다가도 주르륵.

웃기려고 애를 쓰는 무명 코미디언의 몸짓에 코가 찡 했고 자려고 누웠다가 코끝을 시린 황소바람에도 눈물에도 흘렀다.


덕분에 그 해 겨우 내내, 콧방울과 윗입술은 KO패 당한 권투 선수처럼 늘 부었다. 눈꼬리는 상한 귤처럼 짓물렀다. 


방학이 끝나가는 어느 날 선녀님들이 겨우내 모아 뒀던 눈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듯했다. 검은 어둠보다 하얀 눈이 더 많이 보여 마치 백야 같았던 그 밤.

겨울 방학 시작과 함께 갑자기 시작되었던 눈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뭐 하는 거지? 지금"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으려 몸을 일으켰다.


그때,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그려진 방석 위에 선명하고 검붉은 얼룩을 발견했다.

"생리?"


나이가 들고 여자로 살면서 문득문득 그 밤이 떠올랐다.


청춘 그 화려한 날, 사랑 때문에 흘려야 할 눈물이 그 겨울 내내 흘린 눈물의 양만큼 이었구나

더 나이 들어 여자를 벗어던지고 갱년기 불면증으로 날 밤을 새우며 알아차렸다. 아직도 언제라도 흘릴 수 있는 눈물이 한가득이라는 걸.


 오 계절이여, 오 성(性)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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