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노인의 빛나던 시절
일요일 아침 계획에 없던 서울 방문을 실행한 아버지는,
생강청을 주러 왔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가지고 올라와 내 방 창 앞에 앉아 삼십분 넘게 한강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 어김없이 서울 올림픽 이야기를 꺼냈다.
88년 여름, 광역시에서 나고자란 삼십 초반의 남자는
체신부의 엘리트로 차출되어 올림픽 화면을 세계로 송출하는 중요한 미션을 수행했다.
잠실과 광진구를 뛰어다니며 성화 봉송부터 개막식,
크고작은 경기들을 중계하고, 폐막식을 끝내며 인생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마친 안도감을 느꼈다.
강렬하고 짧았던 그 한 달이, 육십 해가 넘는 그의 삶에서 유일한 서울살이의 기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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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관계형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상작용을 한다.
아버지의 두뇌에 '서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88년도 여름' 이나 '서른 살의 나'를 리턴값으로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다. 나의 머릿속 뉴욕이 나의 10년 전에 기록되어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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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 10년 차 가장 잘나가던 시절,
모두에게 인정받았던 회사원으로서의 황금기.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며 느꼈던 흥분들.
서른살의 남자가 계획했던 인생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나 그때를 돌아보는 마음.
그런 것들을 나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왠지 틈틈이 꺼내다 보고싶은 것이어서 몰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몇 장이나 찍어서 인화해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창밖에 서서 그의 앞모습도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한번이라도 본 적 있는 얼굴이었을까.